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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기에 벌어졌던 '사법 농단'과 '재판 거래' 사태가 국민들을 분노와 좌절감에 빠트리고 있다.

당시 대법원은 지금 전모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듯이 상고법원 설치에 올인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네이버나 다음 등의 포털사이트에서 '대법원'을 검색하면 상단에 자동으로 '상고법원' 광고가 노출되도록 하였다. 심지어 전주지법은 전주 시내버스 정류장에 상고법원 홍보사진을 게시하기도 했다. 아직 설치되지도 않은,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설치가 불확실한 상고법원을 위하여 국가예산이 지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 당시 춘천지법 원장과 판사·직원들은 동해안 자전거길 116㎞를 완주했다. 행사명은 '상고법원 설치 기원 및 지역민과의 소통을 위한 라이딩 대장정'이었다. 참가자들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사법서비스! 상고법원이 만들어갑니다'란 현수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상고법원 홍보 활동을 벌였다.

국회에는 이미 과반수가 넘는 의원들이 서명한 상고법원 설치 법안이 발의되어 있던 상태였다. 국회를 비롯하여 학계와 법조계에서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심포지엄과 토론회가 잇달아 개최되었고, 주요 일간지에는 상고법원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법조계 인사들의 기고문이 지속적으로 게재되었다. 상고법원 설치로 엄청난 비용절감 효과가 발생한다는 요지의 법학교수의 보고서가 발표되기도 했다.

상고법원은 왜 실패했을까?

그렇다면 그토록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욕심을 냈고 대법원을 비롯한 고위 법관들이 총력을 기울였던 상고법원은 왜 무위로 돌아갔는가? 양승태의 '정치 거래'가 실패한 것일까?
'재판 거래' 사태의 발단이 된 상고법원이 왜 실패했을까라는 점에 대해서는 정작 현재 어느 언론도 짚지 않고 있다.

실제 당시 상고법원 설치를 반대하는 각계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 중에서 특히 변협의 대응이 돋보였다. 변협은 '상고법원 대응 TF'를 구성하여 "상고법원 반대 10문 10답"이라는 대중적 팸플릿을 공개적으로 배포하는 등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대응하였다. 법원행정처 문건에 별도로 변협 대응 문건까지 작성되어 있었던 것은 변협의 활동을 역설적으로 입증해주고 있다. 시민단체로서는 경실련이 상고법원 반대 토론회를 개최하고 각종 홍보활동을 벌이는 등 적극적인 반대활동을 전개하였다.

또 양심적이고 선각자적 의지를 지닌 법학자들이 당시 '테러방지법'과 블랙리스트로 상징되는 박근혜 정부의 '유사 긴급조치'라는 위압적 통치 분위기의 국면에서도 기고나 토론회 등을 통하여 상고법원 설치 반대 활동에 과감한 실천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법원 내부에서도 용기 있고 양심적인 소수의 판사가 내부자의 위치에서 어렵지만 치열한 반대활동을 수행하였다.

국민이 아니라 오직 고위 법관들의 이익을 위한 상고법원

상고법원 설치를 반대하는 이들 논리는 상고법원 설치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위헌론 제기와 상고법원 설치가 3심제를 부정하는 4심제라는 논리가 주된 근거였다. 무엇보다도 상고법원 설치는 그 목적이 국민이 아니라 오직 대법관을 비롯한 기득권 고위법관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서 국민의 권리구제에 오히려 반한다는 것이 반대론의 근본적 취지였다. 

국회 법사위원회에서는 서기호 전의원이 적극적으로 반대 활동을 하였다. 국민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국회도 비록 이미 과반수 의원이 서명을 마친 법안이기는 했지만 쉽사리 통과시킬 수는 없었다. 위헌론 등의 반대 논리 및 여론에 대한 부담 때문에 그에 맞서 강행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주체적인 실천과 운동이 역사를 진전시킨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재판 거래'까지 서슴지 않았던 양승태 대법원이 강행했던 상고법원은 결국 실패하고 좌절했다. 그러나 그 실패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생각했듯 단지 '정치적 거래'에 의한 것이 아니었으며, 또한 저절로 발생한 것이 결코 아니다. 상고법원을 좌절시키는 데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의 헌신적 활동이 있었다.

여기에서도 다시 증명되듯, 역사의 진보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들의 주체적인 실천과 희생적 행동이 존재했기 때문에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태그:#양승태, #상고법원, #박근혜, #재판거래, #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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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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