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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지난 10일 오후 싱가포르 세인트 리지스 호텔에서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김정은 위원장과 리셴룽 총리의 면담에 동행하기 위해 차에 탑승하고 있다.
▲ 호텔 나서는 김여정 북미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지난 10일 오후 싱가포르 세인트 리지스 호텔에서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김정은 위원장과 리셴룽 총리의 면담에 동행하기 위해 차에 탑승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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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북한은 싱가포르 현지에서 미국 측과 막판 실무협상에 나서고 있다. 북미간 실무협상이 열리는 리츠칼튼 호텔과 북한 대표단 숙소인 세인트리지스 호텔 안팎에선 리용호 북한 외무상,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최선희 외무성 부상,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최강일 외무성 미국국장 대행 등이 현지 언론에 포착됐다. 

북미정상회담 성사 과정에선 유독 여성들의 역할이 눈에 띈다. 김여정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은 오빠인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다른 비행기로 지난 10일(현지시각)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김 부부장은 오빠보다 약 1시간 늦게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 남매가 같은 비행기로 이동하지 않은 것을 두고 김 위원장이 탄 항공기가 불의의 사고가 났을 경우 김 부부장이 공석을 대신할 북한의 실질적 2인자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 부부장은 두 차례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을 보좌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비서실장 역할을 넘어 정치적 동반자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11년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치료한 프랑스 의료진에 의하면 김정일 위원장은 사망 전 자신을 치료한 의사에게 "자식들 중 딸과 아들이 정치에 관심이 있다"며 "둘 중 하나에게 자리를 물려줄 것"이라고 발언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김여정도 정치적 야심이 뚜렷한 것으로 보인다.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오전 싱가포르 리츠칼튼 호텔에서 최강일 외무성 국장 대행(왼쪽)과 김성혜 통일전선책략부장이 성 김 주 필리핀 미국 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의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최종조율 위해 회담장에 도착한 최강일-김성혜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오전 싱가포르 리츠칼튼 호텔에서 최강일 외무성 국장 대행(왼쪽)과 김성혜 통일전선책략부장이 성 김 주 필리핀 미국 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의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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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싱가포르 현지에서 미국과의 실무협상을 주도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1964년생으로 내각총리 최용림의 수양딸이다. 중국, 오스트리아, 말타 등 해외에서 수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부상은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주요 협상에서 통역 업무를 전담하고, 요직을 맡아왔다. 1990년대 말부터 북미회담과 6자회담에서 통역을 했고, 2009년 8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도 통역을 담당했다. 올해 초까지 외무성 북아메리카 국장으로 일하다가 차관급인 부상으로 승진하며 북미정상회담을 이끌 것으로 전망됐다.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도 싱가포르 행에 동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성혜 실장은 '대남일꾼'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북한의 대표적인 한국통이다. 그는 1965년생으로, 김일성대 출신으로 알려졌다. 평소엔 유한 성격이지만 북측 입장을 설명할 땐 자기 주장이 매우 확실하며 "똑똑한 달변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실장은 최근 김영철 당부위원장의 백악관 방문 등 미국 방문을 수행했다. 사실상 통일전선부의 모든 정책과 전략을 실질적으로 기획 총괄하는 책략가로 평가받는다.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때도 김여정 부부장을 밀착 보좌했다. 당시 그가 007 가방을 김여정 부부장과 번갈아 드는 모습이 포착됐는데, 가방 안엔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친서가 들어 있었던 것으로 후에 밝혀졌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도 지난 10일 김정은 위원장 숙소인 세인트리지스 호텔에 도착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같은 날 회담 준비에 관여한 미국 측 관계자를 인용해 "북한의 관현악단과 체조선수들이 미국에서 공연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로 볼 때 양국간 문화교류를 현 단장이 주도적으로 이끌 것으로 관측되고, 회담이 끝난 뒤 간단한 공연이 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성들 사회진출 늘었지만.... "90%가 가정폭력 경험"

여성들이 북한의 대외 외교 무대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김정은 시대 들어 관찰되는 변화상 가운데 하나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동안 아버지·조부 시대와는 확연히 달라진 여러 모습을 국제사회에 보여왔다. 

1945년 북한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음해 '성평등법'이 선포됐으나 현재의 북한은 극단적인 가부장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표준국어대사전>에 해당하는 북한의 <조선말 국어대사전>엔 여성 차별 실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속담이 등재돼 있다. 사전에서 "딸은 기왓장을 들며 놀고 아들은 방석에 모신다" "구박받은 딸이 떡지게 지고 부모를 찾아온다" 같은 속담을 찾아볼 수 있다.

또 북한 법에선 여성들의 바지 착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자전거를 탈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법들은 점차로 '사문화'됐고 현재 북한 여성들은 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탈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여성들의 지위가 낮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북한 여성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김석향 이화여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장마당에 나가서 돈을 벌어도 가정폭력이 줄지 않았다"며 "인민반(20~40가구로 묶어 감시·관리하는 북한의 최소 단위) 기준으로 가정폭력이 있는 경우를 조사하면 90% 정도는 맞고 사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전했다.

또 김석향 교수는 "학교나 직장에서 여성이 남성을 제치는 경우는 별로 없다"면서 "북한에서 여성이 높은 지위에 있으면 북한 사람들은 여성이 자기 힘으로 그 지위에 올라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누구냐' '남편이 누구냐' 묻곤 한다. 실제로 아버지나 남편의 지위에 여자가 편승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학 연구자들은 1990년대 중반 대기근 시대(일명 고난의 행군)를 북한에서 여성 지위와 역할에 변화가 생긴 시기로 본다. 이때 계획경제와 배급제가 붕괴되고 수많은 아사자가 생기면서 북한 전역에 자연발생적으로 '시장'이 생겼다.

가장인 남편은 공식적으로 '국영기업'에 속해 있고 기업소가 가동되지 않아도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의 생계는 고스란히 여성의 몫이 됐다. 이때부터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장마당에 나가서 장사를 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시작했다. 이전엔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는 달리 북한 여성들은 가정주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김석향 교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밥상에 뭔가를 올리는 것이 여자의 책임이다. 남편은 사회주의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똑똑한 여자가 있는 집은 안 굶어 죽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여자가 부족하면 그 집안은 굶어 죽게 된다는 거다. 생계를 지키는 것은 여자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이어 김 교수는 "그러면 여성의 권리가 신장됐냐 하면 그건 아니다"라며 "'여자는 남자의 반값이다' '남자는 밥벌이, 여자는 죽벌이'라는 말로 여자를 비하한다"고 설명했다.

이혼 신청도 증가... "예전처럼 비난하지 않아"

이러한 북한의 오래된 여성차별 실태로 볼 때,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여성들이 전면에 나서 두드러진 역할을 해온 것이 나름대로 북한사회의 큰 변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이목을 잘 인식한 듯 북한은 유엔(UN)에 제출한 여성차별철폐협약 이행에 대한 보고서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공적 영역의 여성간부 비율을 증가시켰으며 여성 재판관 비율이 10%, 외무성 직원의 15%가 여성"이라고 밝혔다.

장마당이 확대되면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도 꾸준히 늘었다. 돈을 버는 등 경제활동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성의 이혼 신청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김석향 교수는 "북한은 모든 통계를 비공개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수치를 확인할 순 없지만 결혼 연령이 늦춰졌다거나 여성이 먼저 이혼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이혼하겠다고 하면 예전처럼 온 동네가 나서서 비난하진 않는다"고 귀띔했다.

'아래로부터의' 변화와 '시장화'를 주도할 주체로 신흥부유층(돈주), 젊은 학생그룹과 함께 여성을 꼽는 전문가가 많다. 북한의 변화는 기본적으로 엘리트 공권력 지식인이 주도해야 하지만 신흥부유층과 장마당 여성 등 변경의 변화도 '주요 변수'라는 것. 여성이 남성보다 사회변화에 수용성이 높고 더 적극적인 면도 있다. 북한 사경제의 발원지이자 사회경제적 변화의 주요 공간으로 지목되고 있는 시장, 그곳의 구성자 중 4분 3 이상이 여성이라는 것은 큰 시사점을 안팎에 던져준다.



태그:#김여정, #최선희, #싱가포르, #북한 여성, #장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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