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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안 되는 초등학생 때의 기억이다. 하교하고 나면 후문에는 새끼 병아리를 파는 아저씨가 오곤 했다. 우리끼리는 그를 '병아리 아저씨'라고 불렀다. 병아리 아저씨가 가져온 상자 속에는 그닥 건강해보이지 않는, 그래서 언제 명을 달리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많은 병아리들이 헐값에 팔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사달라'고 조르면 부모들은 병아리를 '사줬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장면들이 참 기괴하게 느껴졌다. 너무 쉽게 팔리는 생명들.

최근 SNS에서 병아리의 털을 염색을 해서 알록달록하게 만들어서 파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맙소사. 그 조그만 동물에게 유해했으면 유해했지 안전하지 않을 색소로 범벅을 시킨다니. 아마 그 병아리는 빨리 죽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식의 이야기들은 감상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동물단체 활동가인 하재영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물고기들이 다 죽어 있어서... 어떡하니, 불쌍해서...."
(중략) 한 아이가 옆에 있는 친구의 등짝을 마구 두들기며 말했다.
"물고기가 불쌍하대, 생선이 불쌍하대!"
나 또한 선생님의 연민을 비웃던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 열여덟살의 나는 물고기를 가여워하하는 것은 감상적인 나약함이라고 여기는 사람, 나약함은 무시되거나 조롱당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생명은 쉽게 버려진다,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책 표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책 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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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은 저자 하재영이 동물단체 '팅커벨 프로젝트'에서 2013년부터 활동하면서 본, '버려진 개'들에 대한 르포르타주다. 저자는 개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나라에서 개는 가장 나은 처지인 반려동물이자 최악의 처지일 수밖에 없는 식용동물'이라고.

정말 그렇다. '반려동물'이라고 하면 바로 첫 번째로 생각나는 동물이 개인데, 분명 우리사회 곳곳에서는 학대받는 개들이 많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17년 낸 통계를 찾아보니 2016년 한 해 동안 구조된 유기동물은 8만9732마리고, 그 중 개는 70.9%인 약 6만3천마리다. 유기된 동물도 많고, 그 중에 개가 제일 많은 것이다.

사실, 어떤 종류의 동물이든 직접 키워보지 않는 사람은 동물학대의 문제에 무감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저자 역시 유기견인 '피피'를 거둬들이고 나서부터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동물 학대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인간이란 존재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얼마든지 눈을 돌려도 될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개들은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강아지 공장'에서 강제로 교배된다. 케이지는 오물로 가득 차 암모니아 냄새가 진동하고, 거기서 배출된 가스 때문에 눈물까지 날 지경이다.

가정에서 반려견으로 사는 개들의 수명은 15년 정도인 반면에 번식장에서는 길어봤자 8년 정도라고 하니 '동물복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소위 말하는 '공장식 축산'의 현실이다. 애견 미용사 김명진씨의 인터뷰에서는 번식장의 개가 실려 와서 실습의 대상이 되는 현장을 경험하며 느꼈던 자괴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개를 번식장에서 빼내는 게 저한테는 구조지만 번식업자한테는 재산을 넘기는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애초에 그건 안 되는 일이었던 거예요. 그 말티즈처럼 숨만 붙어 있어도 데리고 있는 건 돈이 되기 때문이겠죠? 그럼 그런 개도 교배를 시키고 번식을 시키는 걸까요? 그날 말티즈를 보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네가 한번 더 여기에 올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말티즈는 다시 오지 않았어요. 죽었겠죠. 번식장에서."


유기동물을 신고하면 가게 되는 위탁 보호소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이름만 들으면 적어도 '개공장'보다는 개들이 행복하게 살 것만 같다. 하지만 보호소는 법적 운영 기준이 불명확해 관리 수준은 소장 개인의 인식에 달려있다고 한다. 특히 보호소의 현황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자주 접하는 자연사, 안락사, 입양 같은 단어들은 현실을 종종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에 가서는 보호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충격을 금할 길이 없다.

보호소에 들어간 동물의 '자연사'란 신체가 노쇠하여 자연스럽게 죽음에 이르는 상태를 뜻하는 언어가 아니다. 그저 '안락사가 아닌 죽음'을 의미하는 언어다. 이것은 교통사고나 급성질환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동물을 죽을 때 까지 방치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일부 부도덕한 보호소들이 이런 행위를 하는 이유는 보조금의 지급 방식과 관련이 있다. 유기동물이 공고 기간 10일이 끝나기 전에 원 소유자에게 돌아가거나 폐사하면 실제 보호기간에 대한 보조금만 지급한다.


분열된 개의 위치에서 시작하기

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기 위해 저자는 개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기 위해 저자는 개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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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어진 존재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개농장과 개시장, 그리고 도살장.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들은 죽기 직전까지 학대받는다. 먹을 수 없는 부패한 음식물 쓰레기를 먹이면서 개들은 죽어간다. 죽일 때 몽둥이질을 하는 건 '옛날 방법'이라면서 전기봉으로 한 방에 가게 한다는 말을 마치 제품의 효율성을 광고하는 것처럼 하는 30년 경력의 개농장 주인 김씨의 말은 섬뜩하다.

동물보호단체 '행강'의 박운선 대표는 개고기는 유통 경로가 확인이 되지 않기 때문에 거래를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모두 '현금 박치기'로 거래된다고 말한다. 이득을 취할 부분은 취하면서 아무런 자료를 남기지 않기 때문에 규제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게 전기봉으로 감전사시키는 것은 관행인데, 가끔 이런 일도 일어난다. 책은 전기봉으로 개 30마리를 죽인 개농장 주인이 기소된 사례를 소개한다. 하지만 2017년 1심과 2심 모두 법원은 피고인 개농장 주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왜냐면 "한국의 동물보호법은 소유자가 동물을 죽이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란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소유자는 '소유물'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으니까. 개들이, 더 나아가 많은 동물들이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가는건 그들이 어떤 이가 소유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아니 더 나아가 개에게 가해지는 야만적인 학대를 접하고 나면, 도대체 반려동물로 개를 대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인 건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저자는 학대받는 동물 중에 개에 대해 이야기 하기로 한 이유가 개가 가지고 있는 이런 '분열적인' 정체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는 한 가지 종에 대해, 그것도 개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편협해질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개의 분열된 위치가 만들어내는 여러 서사 때문이었다. (중략) 동종의 동물을 가족이자 음식으로 바라보는 상반된 관점이 대립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우리가 어디까지 연민을 확장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 싶었다. 


저자나 우리나, 이런 복잡한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래서 개를 향한 학대만 멈추면 끝날 수 있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개의 분열된 위치'를 이야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했던 작가는 "앞으로 개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개에 관해서'만' 이야기했음을 강조한다. 불편한 진실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아지는 책이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

하재영 지음, 창비(2018)


태그:##동물권, ##아무도미워하지않는,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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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읽고 보고 쓰고 있습니다. 활동가이면서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입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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