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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인근에서 다음 카페 여성 단체 '불편한 용기' 주최로 열린 '불법촬영 편파 수사 2차 규탄 시위'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몰래카메라) 사건'에 대한 경찰의 성(性)차별 편파 수사를 비판하며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인근에서 다음 카페 여성 단체 '불편한 용기' 주최로 열린 '불법촬영 편파 수사 2차 규탄 시위'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몰래카메라) 사건'에 대한 경찰의 성(性)차별 편파 수사를 비판하며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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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토요일 오후 두 시. 빨간 티셔츠를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혜화역으로 가는 4호선 지하철 안, 빨간색 아이템을 장착한 여성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앞에 앉은 한 여성은 'Girl Power' 문구가 적힌 티셔츠에 빨간 손수건을 하고, 마스크에 팔토시까지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모두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가는 길이었다. 지난달, 홍대 미대의 한 수업에서 남성 모델의 나체를 불법촬영한 여성이 구속됐고, 포토라인에 섰다. 여성이 피해자였던 무수한 이전 사건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속한 수사였다.

이에 반발해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한 청와대 국민청원은 일주일 만에 40만 명이 서명했고, 지난 5월 19일 혜화에서 열린 첫 번째 규탄시위에는 주최 측 추산 1만 2000명의 여성들이 모였다. 지난 9일은 그 두 번째 시위가 있는 날이었다.

혜화를 뒤덮은 수만 명의 빨간 물결

세 시가 조금 넘은 시간, 혜화역에 도착했다. 역사 안은 이미 빨간 옷에 피켓을 든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무대가 있는 2번 출구로 나가자 반대 방향인 1번 출구 방면으로 줄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줄을 서 차례를 기다렸다.

줄 선 지 40여 분째. 겨우 1번 출구 뒤편에서 2번 출구까지 이동했다. 참가 인원 집계를 보기 전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왔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멀리서 구호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누군가가 말했다. "여기서 그냥 가만히 서 있기 아까우니까, 우리도 구호할까요?" 여기저기서 좋다고 응답했고, 선창이 이어졌다.

"우리는 편파수사를 규탄한다" "규탄한다, 규탄한다"
"여성유죄 남성무죄 성차별 수사 중단하라" "중단하라, 중단하라"

2번 출구를 지나 무대 초입에 다다르자 참가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끝이 어디인지 한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인파였다. 거기서부터도 30여 분을 더 기다려서야 무대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앉을 수 있었다. 네 시 반. 도착한 지 한 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11일 주최 측이 새롭게 밝힌 집계에 따르면, 이날 참가자는 4만5000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2만3000명. *초반에 알려진 인원은 주최 측 추산 2만2000명, 경찰 추산 1만5000여 명.)이라고 했다. 실제 현장에서 시위에 참여한 인파가 이화사거리까지 4차선 도로를 모두 메웠다. 1차에 비해 거의 서너 배가량 늘어난 규모다.

 혜화역 화장실 입구에 불법촬영 관련 스티커들이 붙여져 있다.
 혜화역 화장실 입구에 불법촬영 관련 스티커들이 붙여져 있다.
ⓒ 이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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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지 마!" 시위 현장에서도 계속된 '몰카'

"저...혹시 마스크 하나 더 있으세요?"

옆자리에 앉은 분이 물었다. 나도 도착해서 산 입장이라 여분이 없었는데, 다행히 뒤에 앉은 다른 분이 새 마스크를 건넸다. 다들 마스크는 기본이었고 모자, 선글라스를 쓰거나 가면을 쓴 사람도 있었다. 이 순간에도 어디서 어떻게 찍힐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번 시위는 개인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돼 있었다. 그러나 시위 내내, 실제로 몰래 촬영을 시도하는 남성들이 심심찮게 발각됐다. 건너편 길거리에서, 2층 카페에서, 심지어는 건물 옥상에서도 촬영했고, 생중계로 인터넷 방송을 진행한 사람도 있었다.

그때마다 누군가 발견해 "저기 있다!"고 소리치면 스태프와 경찰이 쫓아가 확인하고, "찍지 마! 찍지 마!"를 소리치는 광경이 반복됐다. 시위가 끝날 때까지 내가 앉아있던 구역에서만 적어도 열 번은 넘게 일어난 일이었다. 불법촬영을 규탄하는 시위에서조차 '몰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니. 여성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 순간이었다.

시위가 끝나고 나서도 언론에 모자이크 안 된 사진이 공개돼 신상이 털리거나, SNS 게시물로 일베, 남초 커뮤니티 등에서 공격을 받았다는 후기들이 이어졌다.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번 시위, 무엇이 달랐나

이번 시위는 운동의 주체도, 방식도 과거와는 달랐다. 개개인의 자발적인 의지들이 모여 만들어 낸 자리였다. 시위를 주최한 온라인 카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불편한 용기)' 측도 시작할 때부터 특정 정당 및 단체와 연대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차별적인 불법촬영 수사에 반발하고, 모든 불법촬영이 제대로 수사돼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수만 명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SNS를 중심으로 모인 만큼 10대, 20대가 가장 많았지만 40~50대 이상의 여성들도 중간중간 보였는데, 이들은 현장에서 큰 환호를 받았다. 또, 지역적으로도 서울뿐 아니라 대구, 울산, 광주, 대전, 천안,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버스를 대절해 참석했다. 이슈의 심각성에 공감하는 여성들의 범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시위는 이번이 두 번째라는 게 놀라울 정도로 체계적으로 진행됐다. 2차 시위를 앞두고 일주일 동안 무려 3천만 원의 후원금이 모였고, 이 후원금으로 무대와 음향을 설치하고, 피켓과 스티커, 얼음물, 간식 등을 참가자들에게 나눠줬다.

온라인에서 모집한 100명이 훌쩍 넘는 스태프들도 촬영팀, 부스팀, 물품팀, 안내팀, 보도팀, 진행팀, 안전팀으로 나뉘어 역할에 따라 분주히 움직였다. 그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참석했지만 현장이 크게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2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의 피켓 문구
 2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의 피켓 문구
ⓒ 이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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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혜화에 머물렀던 네 시간 내내, 나는 꽤 여러 번 울컥했다. 새로운 무리들이 줄지어 입장할 때마다 앉아있던 여성들이 큰 소리로 환호하며 따스히 맞이해주는 순간, 너도나도 자처해 구호 선창을 하는 순간, 반대편 차로의 버스 창문에서 피켓을 흔들어주던 순간, 양옆에서 챙겨 온 간식들을 넘치게 주고받던 순간, 서로의 멋진 피켓 문구들을 마주하는 순간.

그 날, 우리는 그렇게 수많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혼자 싸우고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했다. 일상에서 늘 보이지 않는 익명의 위협들을 견뎌야 했던 우리들이 서로를 보호하고 지키며, 오롯이 우리만의 목소리로 혜화를 가득 채운 시간이었다.

"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
"볼 때는 꼴리고, 찍히니 쫄리냐?"

몰카를 찍고, 올리고, 보는 남성들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다.

"동일범죄, 동일처벌"
"못한 게 아니고 안 한 거였네?"
"여자가 찍히면 유작, 남자가 찍히면 범죄"
"여성인 나에게 조국은 없다"

불법촬영한 범죄자를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어주고, '몰카' 판매도 제대로 규제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압박이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계란이 아니며, 너희도 바위가 아니다"
"울지마, 지워줄게. 죽지마, 지켜줄게. 우리가 싸워줄게"
"목이 터져라 소리치자. 우리의 자매들이 숨죽여 울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서로를 향한 위로이자, 더 이상 가만있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외침이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미투에 이어 불법촬영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그저 이 땅에서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당연하고도 소박한 바람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부는 이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심각하고 엄중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 날, 우리의 구호처럼 불편한 용기는 끝내 세상을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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