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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나 성적 행위를 배워서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키스를 포함한 대개의 성적 행위들은 흐르는 물처럼 스스로 그러합니다. 알려주지 않고 배우지 않지만 때가 되면 스스로 알게 되고 저절로 행하게 되는 원초적 본능입니다. 그러함에도 키스를 하는 게 뉴스 거리가 되고 단속 대상이 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아주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100년도 안 된 근대 이야기입니다.

키스는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나누는 사랑의 표현이자 애정의 발로입니다. 따라서 돈을 주고 키스를 하고, 돈을 받고 키스를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돈을 주고 키스를 하고, 돈을 받고 키스를 하는, 키스가 돈벌이 수단이 되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인간들이 하는 키스는 다 비슷할 것 같지만 생식기능이 퇴화된 민족일수록 키스가 발달되는 경향이 있고, 중국인이나 야만인은 후각 중심의 키스를 하고 서구인들은 촉각 중심의 키스를 한다는 발표도 있었습니다.

"연애를 파는 시장"이라는 당대의 언급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새로운 유흥 공간은 학생, 샐러리맨, 지식인 문사, 영화업 종사자, 은행업자, 광산업자 같은 다양한 계층의 남성들이 여급을 대상으로 자유연애를 실험하는 일종의 "청춘의 위안지"로 여겨졌다. 따라서 남성들은 카페에서 술값을 수속비로 삼고 팁을 가격으로 치르면서 "밥보다 더 비싼 연애"를 구매했다. - <조선의 퀴어>, 95쪽


근대의 틈새에 숨은 변태들의 초상 '조선 퀴어'

‘조선의 퀴어’  / 지은이 박차민정 / 펴낸곳 현실문화연구 / 2018년 6월 15일 / 값 16,000원
 ‘조선의 퀴어’ / 지은이 박차민정 / 펴낸곳 현실문화연구 / 2018년 6월 15일 / 값 16,000원
ⓒ 현실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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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퀴어>(지은이 박차민정, 펴낸곳 현실문화연구)는 한국사회 퀴어(Queer)의 역사를 탐구하려는 목적에서 쓰인 책입니다.

세종대왕의 맏아들인 문종의 둘째 부인이었던 봉씨가 동성애자였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퀴어의 역사는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오래 된,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생태적 역사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퀴어와 관련한 내용은 1920~1930년대의 신문과 잡지 속 글들 중에서 발굴한 것이므로 시대와 공간적 배경 역시 같은 연대의 식민지 조선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이 시기가 되어서야 '변태성욕', '반음양', '여장남자', '동성애'와 같은 새로운 분류와 이것을 뒷받침하는 지식적 체계들이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조선의 퀴어 역사를 담고 있는 동시에, '정상적인' 여성과 '정상적인' 남성의 역사를 다루기도 합니다. 전체 5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1장 근대의 경성, '에로 그로', 2장 변태성욕자의 시대, 3장 '단속되는 몸', 4장 '욕망의 통치', 5장 '경계를 위협하는 여성들의 욕망'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S언니', 'S동생'은 동성애 관계라는 뜻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들을 두지 못하면 양자라도 들여 대를 이어가는 게 당연하던 시대였습니다. 족보는 물론 호적까지 정리하던 양자와는 달리 수양부모를 삼아 수양자식 노릇을 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던 시대였습니다.

부모자식만 삼는 게 아니라 그때는 동네나 학교 선후배 중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사람 간, 특히 친하게 지내는 여성 선후배간에 시영언니와 시영동생을 삼는 것도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사용 한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친자매만큼이나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자칭하던 용어는 수양(시영)언니와 수양(시영)동생이었습니다.

그러던 호칭, 수양(시영)언니와 수양(시영)동생이라는 호칭이 언제부터인가 S언니와 S동생으로 불렸고, 지금도 남달리 친하게 지내는 일부 여학생들 사이에는 별다른 의심 없이 S언니와 S동생으로 호칭되고 있을지 모릅니다.

'아이의 명이 길어진다고 하여 남남끼리 형식상으로 관계를 맺는' 수양(收養)과 동성간 사람을 뜻하는 '동성애'는 의미와 뜻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친한 선후배간 관계'를 동성애를 뜻하는 'S'관계로 지칭하였거나 지칭하고 있다는 건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배와 후배 여학생들 사이에서 혹은 여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었던 이 로맨틱한 열정은 미국에서는 스매싱smashing 혹은 크러쉬crash(현대의 '걸크러쉬'의 어원)로, 영국에서는 레이브raves로, 남아프리카 레소토에서는 마미mommy와 베이비baby로, 그리고 일본과 조선에서는 'S'로 불렸다.

"여류명사와 동성연애기"는 기사기획에 맞추어 일관되게 '동성연애'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당시의 여학생들이 자신들의 관계를 지칭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명칭은 'S'(S언니/S동생)였다.' - <조선의 퀴어>, 233쪽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 성적 소수자들을 통틀어 이르는 '퀴어queer'는 현대화나 산업사회가 낳은 사회적 문제도 아니고, 질시나 경멸의 대상이 될 이유나 까닭 또한 없는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관계, 인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많고 많은 관계와 현상 중 하나라 생각됩니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뉴스거리가 되고 단속대상이 되던 키스가 사회적으로 더 이상 이상한 게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듯, 퀴어들 또한 시대적 가치가 변함에 따라 더 이상 지금의 퀴어가 아닌 시대를 맞게 될 거라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조선의 퀴어’ / 지은이 박차민정 / 펴낸곳 현실문화연구 / 2018년 6월 15일 / 값 16,000원



조선의 퀴어 - 근대의 틈새에 숨은 변태들의 초상

박차민정 지음, 현실문화(2018)


태그:#조선의 퀴어, #박차민정, # 현실문화연구 , #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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