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한 솔로 > 포스터

영화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 포스터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의 흥행 부진이 심각하다. 개봉 첫 주 8400만불(한화 약 900억 원) 수익으로 <스타워즈 에피소드2-클론의 습격>(2002) 이래로 최악의 출발을 보이더니 2주 차엔 무려 65%의 좌석 점유 하락률을 보이며 시리즈 역사상 최악의 기록을 남겼다. 프리퀄 격 영화라고는 하나 2억5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자한 대작인데, 같은 시기 개봉한 <데드풀2>에 완벽히 밀렸다. 루카스필름의 새 주인 디즈니는 믿을 수 없는 성적에 특별 회의 팀을 꾸려 부진 원인을 찾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 엉뚱한 곳에 불똥이 튀었다. 몇몇 올드 스타워즈 팬들이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 출연한 베트남계 배우 켈리 마리 트란의 SNS에 각종 폭언과 욕설, 인종차별적 메시지를 남긴 것. 이들은 켈리가 맡은 캐릭터 '로즈 티코'가 스타워즈 시리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한 솔로>의 부진 역시 로즈 티코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잇따른 사이버 테러에 결국 켈리 마리 트란은 SNS 계정을 닫았다.

 영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 '로즈 티코' 역을 맡은 배우 켈리 마리 트란. 최근 악성 댓글로 인해 SNS 게시물을 모두 삭제했다.

영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서 '로즈 티코' 역을 맡은 배우 켈리 마리 트란. 최근 악성 댓글로 인해 SNS 게시물을 모두 삭제했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당초 <라스트 제다이>의 로즈 티코에 대해 개연성 없는 캐릭터라는 평이 많았다. 전멸 위기에 놓인 저항군을 구원하려는 비밀 작전의 핵심 인물인 로즈 티코는 극중에서 꽤 높은 비중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과도한 캐릭터 배경 설명이 전체 영화 테마와 엇박자를 이뤘다는 의견과 마지막 전투 신에서 로즈 티코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지적하는 반응이 많았다.

이로 인해 로즈 티코는 <스타워즈: 에피소드1-보이지 않는 위험>의 악명 높은 캐릭터 자자 빙크스 만큼이나 팬들에게 미움받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그 비판은 점점 도를 넘었다. 스타워즈만을 다루는 위키백과 '우키피디아(Wookipedia)'에선 한 때 로즈 티코의 이름이 동양인을 멸시하는 '칭총(Ching Chong)'으로 표기됐고, 개인 SNS엔 캐릭터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아시아 배우를 멸시하는 인종차별적인 메시지와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차별적인 태도를 보이는 댓글이 매일 달렸다.

이런 사이버 폭력에 맞서 할리우드와 미국 연예계의 연대가 이어지고 있다. 당장 스타워즈의 상징, 루크 스카이워커 역의 배우 마크 해밀이 켈리 마리 트란과 함께 찍은 사진을 포스팅하며 '일상을 챙겨, 너드들아(#GetALifeNerds)'라는 태그를 달았다. 영국 영화감독 에드가 라이트와 아시아계 배우 올리비아 문 등 많은 이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며 영화와 실제 삶을 구분하지 못하는 편견 어린 시선을 비판하고 있다.

 켈리 마리 트란을 공격하는 올드 팬들을 조롱한 CBS 토크쇼 <더 레이트 쇼(The Late Show)>.

켈리 마리 트란을 공격하는 올드 팬들을 조롱한 CBS 토크쇼 <더 레이트 쇼(The Late Show)>. ⓒ The Late Show


하이라이트는 미국 CBS 심야 토크쇼 <더 레이트 쇼(The Late Show)>가 내보낸 2019년 스타워즈의 가상 트레일러다. '인스타그램에 악플을 다는 인종차별주의 팬들을 화나게 할 심산'으로 만들었다는 이 영상에선 로즈 티코를 아예 메인 캐릭터로 상정하며, 카일로 렌(아담 드라이버 분)과 포 다메론(오스카 아이작 분) 같은 남자 캐릭터들은 새로운 여자 제다이 기사 레이(데이지 리들리 분)에게 거세 당해 사라진다. 다소 극단적인 패러디이긴 하지만 마지막 장면의 대사가 핵심이다.

"비뚤어진 샌님들, 입 다무세요."

혹자는 최근의 영화계가 정치적 올바름(PC)에 매몰되어 의도적으로 다양한 인종의 여성 캐릭터를 억지로 만든다며 볼멘 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러나 영화 속 개연성 없는 캐릭터에 대한 비판은 영화 내부와 그 틀을 짠 감독, 각본가에게 돌아가야지 그 역을 맡은 배우를 비난할 일도, 배우의 인종이나 성별을 문제 삼을 일도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대를 맞는 구(舊) 시리즈의 불가피한 혁신 과정으로 봐야 한다.

 루크 스카이워커 역의 배우 마크 해밀은 SNS에 켈리 마리 트란과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하며 악플러들에게 일침을 날렸다.

루크 스카이워커 역의 배우 마크 해밀은 SNS에 켈리 마리 트란과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하며 악플러들에게 일침을 날렸다. ⓒ 마크 해밀 트위터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에서는 흑인 배우인 존 보예가(핀 역)가 핵심 캐릭터를 맡았으며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서는 중국 배우 견자단이 출연해 새로운 느낌을 불어넣기도 했다. 오리지널 시리즈부터 내려온 인물 란도 칼리시안은 이번 <한 솔로>에서 '범성애'라는 성적 지향이 추가돼 논란에 휩싸였지만, 정작 영화 속에선 그런 성적 편견을 비웃는 설정으로 묘사됐다. 당장 다양한 출신, 취향, 성적 지향의 사람들과 공존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인종, 성별을 문제삼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스타워즈 팬으로서 로즈 티코가 미울 수는 있다. 그러나 켈리 마리 트란을 비난해선 안 된다. 더구나 그 미워하는 이유가 '아시아계 여성'이라면, 팬들이 그토록 아끼는 '마지막 제다이' 루크 스카이워커의 뼈 있는 한 마디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일상을 챙겨, 너드들아."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도헌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https://brunch.co.kr/@zenerkrepresent/191)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스타워즈 로즈 티코 켈리 마리 트란 영화 인종차별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중음악평론가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2013-2021)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편집장 (2019-2021) 메일 : zener1218@gmail.com 더 많은 글 : brunch.co.kr/@zenerkrepresent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