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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위한 의미있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계간지 <딴짓>의 발행인인 프로딴짓러가 소소하고 쓸데없는 딴짓의 세계를 보여드립니다. "쫄지 말고 딴짓해!" 밥벌이에 지친 당신을 응원합니다. [편집자말]
"밥벌이만 하지 말고 딴짓 좀 하고 살자!"라고 외칠 때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은 이것이다.

"돈이 없어요." 
"먹고 살기도 바빠요." 
"배부른 소리네."

밥벌이에만 치이지 말고 스스로를 위한 의미 있는 무엇을 하자는 이야기를 담은 잡지 <딴짓>을 만든 게 벌써 3년이다. 이제 아홉 번째 잡지를 준비하고 있다.

<딴짓> 매거진은 낮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밤에는 소설을 쓰자고 제안한다. 평일에는 보험판매원이더라도 주말에는 연극배우가 되어보자고 옆구리를 찌른다. 돈은 회사에서 벌어도 누가 직업이 무엇이냐 물으면 댄서라고 말하면 어떻겠냐고 꼬신다. 정말 네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직업이 아니라 딴짓이 되어도 좋으니 조금만 그것을 하며 살면 안 되겠느냐고 묻는다.

누군가는 <딴짓> 매거진의 응원에 으쌰으쌰 힘을 내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럴만한 형편이 안 된다며 한숨짓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힘이 될 때는 덩달아 기운을 얻지만 딴짓할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같이 땅이 꺼지는 것 같다.

돈이 없으면 딴짓도 못 하는 걸까? 밥벌이와 상관없이 우리가 하고 싶은 무엇을 할 날은 영영 오지 않는 걸까? 딴짓을 하면서 돈을 벌 수는 없는 걸까?

딴짓 하며 돈벌기 쉽지는 않습니다만

돈이 있어야 밥도 먹지
 돈이 있어야 밥도 먹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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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 좀 하자고 말할 때 돈이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에게 깊게 공감한다. 사실 <딴짓> 매거진을 만들 때도 문제는 늘 돈이었다. <딴짓>을 만들기 위한 인쇄비, 잡지를 사람들에게 보내기 위한 배송비를 버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잡지값은 1만2000원. 제작비에 약 6000원이 든다. 서점에 수수료를 약 3천~4천 원 남짓 떼어주고 나면 권당 약 2000원이 남는다. 광고를 받지 않는 <딴짓> 매거진의 특성상 순수하게 잡지를 판 돈만으로 다음 잡지를 찍어내는 것이 기적이었다. 우리의 통장잔고는 다음 권을 찍을 인쇄비를 마련할 때까지 조금씩 차오르다가 훅 꺼지곤 했다. 늘 다음 호의 발행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딴짓> 매거진을 통해서는 생활비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매거진을 만드는 일은 전적으로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그 좋아서 하는 일을 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월세를 내고,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에서 조금이나마 성의를 표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서 먹고 산다고 해서 주변 사람에게 폐 끼치며 살기는 싫었다. 사람들 말 틀린 것 없었다. 딴짓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돈이 없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이 문장을 위해 내가 강구한 방법은 이것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다양하게 조금씩 해서 돈을 벌자. 굳이 이름 붙이자면 멀티잡(Multi Job)족이랄까.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하는 일에 대해 나름대로 원칙을 정했다. 첫 번째, 사회에 해가 되지 않는 일이어야 한다. 두 번째, 즐거운 일이어야 한다. 세 번째, 최적생계비(최저가 아니다)를 벌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

이 원칙에 따라 다양하게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려 애를 썼다. 물론 쉬울 리가 없었다. 정규직이 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안정성 같은 건 언감생심이었다. 주로 글을 써서 돈을 벌었다. 예술가들을 인터뷰해 에세이를 쓰는 일을 맡았다. 대학생들의 기사를 손봐주기도 했다. 마케팅 회사의 카드뉴스 스토리를 썼다. '글쓰기' 외에도 하고 싶은 딴짓은 많았다.

축제가 좋아 한동안 축제기획을 해보기도 했다. 지금도 스타트업 거리 축제를 기획하고 있다. 1인 출판을 원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출판 워크숍도 열었다. 책이 좋아 북스테이를 한동안 운영하기도 했다. 지금은 성산동에 '낮섬'이라는 책 읽는 술집을 열었다. 책을 읽으며 술을 마실 수 있는 조용한 바(Bar)다.

성산동 책 읽는 술집 <낮섬>
 성산동 책 읽는 술집 <낮섬>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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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일에는 감수해야 할 점도 많다. 일이 삶이고 삶이 일이라 '퇴근 후 쉬는 시간' 같은 건 없었다. 회사 다닐 때보다 시간 투자는 더 많았다. 회사에서는 일을 못 하면 상사에게 혼나거나 승진을 못 하는 것뿐이지만 프리랜서가 일을 못 하면 바로 다음 주라도 일감이 끊길 수 있다.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하다 보니 준비 시간도 부족했다. 사실 같은 돈을 벌더라도 여러 가지 일로 돈을 벌면 시간은 훨씬 더 많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이 삶의 방식이 잘 맞는 편이다. 좋아하는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는 일이 그대로 내 커리어가 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안정성보다는 지금의 행복에 무게추를 두고 사는 탓도 있었다.

내일의 불안을 호주머니에 구겨 넣는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이가 들고 건강이 나빠지면 더 어려워질 것 같다. 어쩌면 의외로 잘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멀티잡족들이 많아지는 세상에서 먼저 그렇게 살아본 사람으로서 할 말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회사를 그만두고 3년. 지금까지는 다양한 일로 돈을 버는 프로딴짓러로서의 삶이 버틸만하다. 앞으로도 세 가지 원칙 아래서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요즘은 그 세 가지 원칙에 '몸을 쓰는 일과 머리를 쓰는 일의 균형'이 추가되었다. 몸을 쓰는 일로 돈을 버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해볼 작정이다.

"돈이 없어서 딴짓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만 그렇게 인정해버리는 건 슬프다. 끊임없이 돌을 굴리는 시시포스가 된 기분이다. 요즘엔 돈이 없어도 딴짓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중이다.

<딴짓> 매거진을 같이 만드는 두 명의 여자 중 3호(딴짓 편집자들은 각자를 1호, 2호, 3호라고 부른다)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한다. 생계 때문에 회사를 다니긴 하지만 그녀는 늘 딴짓할 궁리에 여념이 없다. 제대로 딴짓을 하려면 목돈이 필요한데 덜컥 대출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3호가 고안한 방법은 이것이었다. 바로 투자설명회다.

3호의 투자설명회 일부
 3호의 투자설명회 일부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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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이나 중견기업들이 할 것 같은 투자설명회. 3호는 소소한 투자설명회로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이것에서 어떻게 수익을 낼 것인지, 낸 수익은 투자자들에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했다. 투자금액도 소소하고 설명회를 듣는 지인들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 재밌는 프로젝트는 아직 진행 중이다. 3호가 딴짓의 꿈을 꼭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다.

"금수저 아닌가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 위해 버둥거리지만 남들 눈에는 그저 금수저로 비춰질 때도 많다. 그러나 나를 비롯해 딴짓 매거진을 만드는 2호와 3호 역시 금수저와는 한참 거리가 있다.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께 금전적으로 받는 지원 역시 제로다. 이것도 큰 축복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살아도 큰 무엇이 되겠다거나 딴짓하는 사람들의 롤모델이 되겠다는 포부는 없다. 그냥 이렇게 살다 보면 딴짓하며 살았던 것이 삶이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 딴짓을 만들었듯 우리가 100호까지 딴짓을 내게 되면 우리는 분명히, 명백히 '딴짓하는 사람들'로 명명될 수 있으리라.

한때 반짝했던 야구선수보다 평생 일주일에 한 번씩 빠지지 않고 야구를 즐긴 사람이야말로 진짜 야구선수라고, 베스트셀러 한 권 내지 못했지만 매일 글을 썼던 사람이야말로 진짜 소설가라고,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지만 늘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던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사랑꾼이라고 믿으니까. 우리 삶은 '누군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무엇을 하는 것'으로 이루어져있으니까.

그런 믿음에 기대어 내일의 불안을 호주머니에 구겨 넣는다. 딴짓하는 사람들을 은근히 응원하며 꾸역꾸역 딴짓하며 산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딴짓 사무실을 '헥헥'거리며 올라간다.


태그:#딴짓, #프리랜서, #회사, #퇴사, #멀티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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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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