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허스토리>의 한 장면

영화 <허스토리>의 한 장면 ⓒ (주)NEW


평균 나이만 해도 환갑을 넘긴 여성 배우들이 한 목소리로 "그 아픔을 느낄 수 없어 모든 걸 내려놓고 임하려 했다"고 고백한 영화 <허스토리>. 일본군 성노예 및 정신대 피해자를 다룬 여러 영화와 이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피해자가 아닌 보통의 사람으로 각 인물들을 묘사했다는 점이다.

오는 27일 개봉에 앞서 7일 언론에 먼저 공개된 <허스토리>는 기본적으로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의 변화를 순차적으로 제시하는 구성을 택했다. 시작은 김학순 할머니의 고백이었다. 1991년 최초로 위안부 피해자임을 증언한 그의 모습이 화면에 제시되면서 당시 부산 지역에서 꿈틀거리고 있던 고백과 연대의 움직임부터 포착했다.

연대와 좌절

이야기를 이끄는 핵심 축은 당시 부산여성경제인연합회 소속으로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던 문정숙(김희애)이다. 당시 일본 거래처와 기생 관광 상품을 만들어 파는 등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그는 형식적으로 시작한 근로정신대 및 위안부 신고 센터 운영일에 점점 마음을 두게 된다. 각각 생각과 처지가 달랐던 피해자들을 설득하고 자신이 해야 할 진짜 일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허스토리>의 한 축이다.

또 다른 축은 자신의 아픈 과거를 고백해야 했던 할머니들의 변화다. 배정길(김해숙), 박순녀(예수정), 서귀순(문숙), 이옥주(이용녀) 등의 피해자들은 저마다 처지와 상황이 다르다. 영화는 애써 치부를 드러내려는 이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주저하지 않는 당시 정서를 제시하며 이들이 상처입고 갈등하거나, 스스로 각성하는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모든 연대가 끈끈하고 아름다운 법은 아니다. 대부분 생활고에 시달리며 비참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기에 누구는 보상금만 타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누구는 애써 잊고 살고 있었다. <허스토리>는 이런 온도 차를 그대로 묘사하면서 이들이 그렇게 고백해야 했던 당위성을 확보해 나간다.

 영화 <허스토리> 포스터

영화 <허스토리> 포스터 ⓒ (주)NEW


그 당위성은 거창한 게 아니다. 사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이 지금까지 일관되게 외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역사적 과오에 대한 일본의 사과와 반성. 하지만 실제 역사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이 주장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 자체가 피해자 입장에선 고통이었다. 영화는 그 요구가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겨우 내뱉은 것임을 암시한다. 이 역시 그간 성노예 피해자를 다룬 극 영화와는 다른 결이다.

피해자의 비극성을 강조하거나 거시적 차원에서 외침을 증폭해왔던 몇몇 영화와 달리 <허스토리>에는 인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 물론 영화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말을 바꾸고 종종 거짓말도 하는 등장인물은 관객에 따라 몰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과감한 선택

<허스토리>는 영화적 세련됨보단 진실성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관부재판 원고단을 이끈 모델인 김문숙 이사장 등 주요 인물이 극화됐지만, 주요한 맥락을 바꾸거나 역사적 사실을 가리진 않았다. 관객을 임의적으로 자극 시킬 요소를 최대한 피해가면서 인물 자체가 갖고 있는 진실성에 집중한 과감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관부재판, 즉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피해자들이 참석한 재판 이야기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기도 하다. 출연 배우들 또한 영화에 참여하며 알게 됐다고 말한 바 있을 정도다. 1심 법원에서 일본 정부의 도의적 책임을 일부나마 인정해, 성노예 및 정신대 관련 재판에선 유일한 승리로 언급된 역사가 제대로 영화화 되지 않았다는 점은 특기할 일이다.

연출을 맡은 민규동 감독은 언론 시사 직후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사는 게 부끄러워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담백하지만 자기반성이 담긴 말이다. 그간 성노예 피해자 관련 영화를 수차례 준비했다가 접었던 그 역시 관부재판의 존재를 자료 조사 중에 알게 됐다고 한다.

<허스토리>는 언제든 나올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사실 한국 관객이라면 영화 곳곳에서 눈물을 참기 어렵다. 신파 요소가 있어서가 아니라 각 인물들이 품고 있는 아픔이 느껴져서다. 출연 배우들은 "그 아픔을 이해해보려 했으나 제대로 알 수가 없어 괴로웠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그 괴로움이 이 영화를 피해야 할 이유는 될 수 없다. 다행스러운 건 <허스토리>는 마냥 무겁고 진중하게만은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삶 자체가 눈물만으로 가득하지 않은 법. 다양한 인간군상이 한 영화 안에서 진실 되게 웃고 우는 것만으로도 관객 입장에선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허스토리>의 한 장면.

영화 <허스토리>의 한 장면. ⓒ NEW



한 줄 평 : 쉽게 피할 수 없는 이야기, 피해서는 안 될 영화
평점 : ★★★★(4/5)

영화 <허스토리> 관련 정보
연출 : 민규동
출연 : 김희애,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김선영, 김준한, 이유영
제작 : 수필름
제공 및 배급 : NEW
러닝타임 : 121분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 2018년 6월 27일


허스토리 위안부 일본 김해숙 김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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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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