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두 드라마가 이번 주 첫 방송을 했다. 독특한 소재, 인기 웹툰 원작 등으로 방영 전부터 관심을 모았던 KBS2 <너도 인간이니?>와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그 주인공이다.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사랑을 담은 <너도 인간이니>와 재벌 2세와 비서의 연애담인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언뜻 보면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두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의 내면을 들여다보니 묘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두 주인공 모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존재'라는 점이다. 또한 매우 비현실적인 캐릭터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현실적인 메시지들을 전하고 있었다.

 '너도 인간이니?'의 남신(서강준)은 엄마의 욕구가 그대로 투사돼 엄마의 뜻대로만 움직이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너도 인간이니?'의 남신(서강준)은 엄마의 욕구가 그대로 투사돼 엄마의 뜻대로만 움직이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 KBS


<너도 인간이니>의 남신(서강준)은 아들을 뺏긴 로봇공학자 오로라(김성령)가 만들어낸 인공지능 로봇이다. 재벌그룹의 며느리기도 한 오로라는 알 수 없는 음모로 남편을 잃고, 아들마저 시아버지 남건호(박영규) 회장에게 빼앗긴다. 슬픔에 젖은 채 체코에 숨어 살던 오로라는 자신의 아들 남신을 닮은 인공지능 로봇을 만든다.

오로라는 로봇 남신이 처음 탄생한 날 눈물을 흘리며 "신아 엄마가 보고 싶었어"라고 말한다. 이에 남신은 "울면 안아주는 게 원칙"이라며 엄마를 안아준다. 이후 오로라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아들, 늘 자신의 곁에 있어주며 정서적으로 위안을 주는 아들 남신을 만들어 간다. 로봇 남신은 완전한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그의 모든 행동과 감정은 엄마가 주입한 대로다. 엄마를 위해서라면 자신과는 영 다른 캐릭터인 사람 남신의 역할도 감쪽같이 해낸다. 즉, 엄마의 바람이 그대로 투사된 아들인 것이다.

이는 인공지능 로봇이라는 드라마 속 설정 덕에 가능한 것일 테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부모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학교와 학원 스케줄 등을 모두 관리 받으며 자라는 한국의 아이들은 어쩌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왜 공부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해보지도 못한 채 오직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혹은 부모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하며 자라나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엄마의 바람대로 행동하는 인공지능 로봇 남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 오로라의 진짜 아들인 '사람' 남신은 할아버지와 함께 살지만 늘 삐딱한 행동으로 그룹관계자들을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스스로 몰카 자작극을 벌이는 등 남신은 자신의 이미지를 깎아 내려서라도 할아버지의 기업에 생채기를 내려한다. 이는 어머니의 사랑을 박탈한 할아버지에 대한 복수다. 사람 남신은 자신의 다른 욕구들은 돌보지 않은 채 오직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할아버지에 대한 미움만으로 자신의 내면을 가득 채운다. 이는 매우 극적인 설정이지만 동시에 청소년들의 비행이 대부분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라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자신을 너무 사랑해 '나'를 잃은 캐릭터 이영준

 '김비서가 왜그럴까'의 이영준(박서준)은 거울 속의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진정한 나르시스트이다.

'김비서가 왜그럴까'의 이영준(박서준)은 거울 속의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진정한 나르시스트이다. ⓒ tvN


이처럼 <너도 인간이니?>의 남신은 엄마의 욕구를 그대로 투사한 로봇 또는 부모의 사랑이 박탈된 것에 대한 분노로 인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자아를 잃어버린 존재다. 반대로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이영준(박서준)은 자신을 너무 사랑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인물이다.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유명그룹 부회장 이영준은 타인의 실수를 조금도 용납하지 못한다. 스펙, 돈, 외모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그는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다른 이들을 사랑할 여유가 없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에게 반하는 그의 모습은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죽음까지 맞이한 나르키소스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찾고 싶어 일을 그만두겠다는 김미소(박민영)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일방적으로 미소에게 청혼하고 거절당하자 "설마 나를 거절하는 그런 사람이 있겠어"라며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미소를 곁에 두려는 이유도 "내가 불편해서"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모든 정보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는 것. 전형적인 자기애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다.

이런 자기애적 성격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드라마 2회에서 이영준이 꾸는 악몽은 그에게 과거의 상처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정신분석에서는 어릴 적 자신의 나약함에 공감 받지 못할 경우, 이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웅대한 자기상을 형성하게 되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웅대한 자기상에 맞는 정보만 받아들임으로써 자기애적 성격이 형성된다고 이야기한다. 겉으로는 자신을 매우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이들은 진짜 자기 자신을 맞닥뜨리는 게 두려워 과대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드라마 속 이영준의 경우 이런 자기애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남에게 피해를 줄 만큼 병리적인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자기애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들이 권력을 갖게 될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자기애적 성향의 사람들은 다양한 평가 중 자신의 웅대한 자아상에 맞는 것들만 받아들이고, 과대평가된 자신을 '진짜 나'라고 착각한다. 나아가 권력과 힘을 이용해 자신의 자기애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타인을 자신의 웅대한 자기상을 유지하는 데 이용한다. 아랫사람을 함부로 이용해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도 이를 당연하게 여기며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하지 못하는 캐릭터. 우리가 익숙히 봐온 몇몇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모습이다.

잃어버린 나를 찾는 여정에 함께하는 여성 캐릭터

 tvN 새 수목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서 김미소 역할을 맡은 배우 박민영

tvN 새 수목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서 김미소 역할을 맡은 배우 박민영 ⓒ tvN


한편, 이 두 남자 주인공 곁에는 모두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강한 여자 주인공이 함께 한다. <너도 인간이니?>의 강소봉(공승연)은 가진 것은 없지만, 자신에게 당당하고 기죽지 않는 캐릭터다. 강소봉을 통해 남신은 자신이 인간이 아님을, 진정한 마음이 없음을 깨달아 갈 것이다. 또한 할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역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삐딱하게 살아온 진짜 남신 역시 자신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게 될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자기 자신임을 잊지 말구요"라고 주변에 조언해 주는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김미소 역시 심리적으로 매우 건강한 캐릭터다. 김미소는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지만, 가족들을 위해 9년간 힘든 직장 생활을 해내며 헌신할 줄도 아는 건강한 자기애를 가지고 있다. 진정한 자기애와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기에 모든 사람들이 눈치를 보는 이영준에게도 "남을 배려하지 않는다"며 충고해줄 수 있다. 이영준이 김미소에게 끌리는 것은 그녀가 자신의 웅대한 자기상을 지원해주지 않고, 진짜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경험을 통해 이영준은 서서히 변해갈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 두 드라마가 앞으로 주인공들이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을 제대로 그려갈 수 있을까? 어쩌면 남녀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전개될지도 모른다. 돈과 권력, 지식을 겸비한 백마 탄 왕자님 같은 남성 캐릭터와 가진 것 없지만 건강한 캔디형 여성 캐릭터와의 사랑 이야기는 어쩌면 진부하고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포인트를 바꾸어 시청해보자. 두 남자 주인공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심리적 과정과 건강한 여성 주인공들이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어떨까? 아마도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꽤 경쾌하게 성찰해 볼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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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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