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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의 고즈넉한 역사도시, 아를(Arles). 아를에는 걸어서 10분 안에 아를의 핵심여행지와 모두 연결되는 중심광장, 레퓌블리크 광장(Place de la Republic)이 있다. 이 광장 북쪽으로는 아를의 시청사(Hotel de Ville)가 있고, 광장 동쪽에는 생 트로핌 성당(Cathédrale Saint-Trophime), 광장 서쪽에는 생 안느 교회(Chapelle Saint Anne)가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아를 구시가 역사지구 속의 레퓌블리크 광장은 고풍스럽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레퓌블리크 광장. 아를의 주요한 여행지와 연결되는 중심광장이다.
▲ 레퓌블리크 광장. 아를의 주요한 여행지와 연결되는 중심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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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한 중앙에는 20m 높이의 오벨리스크가 당당하게 서 있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와 똑같이 보이지만 이 낡은 사암의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에서 약탈해온 작품은 아니고 아를에서 직접 만든 것이다. 이 우뚝 선 오벨리스크 아래에는 분수 물을 토해는 청동의 인면 조각상이 입을 한껏 벌리고 있었다.

오벨리스크 분수대. 오벨리스크 아래에 청동인면상과 사자상이 조각된 분수대가 있다.
▲ 오벨리스크 분수대. 오벨리스크 아래에 청동인면상과 사자상이 조각된 분수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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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한가운데의 분수대도 크고 광장 크기도 도시 규모에 비해 아주 넓은 편이다. 이곳은 원래 로마시대의 정치의 중심인 포럼(forum)이 있었던 곳이다. 로마시대 당시 이곳에는 열주의 기둥이 이어진 공공건축물들이 모여 있었고, 건축물 앞에는 시민들이 모이는 집회소와 시장이 있었다. 지금도 이 광장에는 아를 시민과 여행자들이 모여들고 있으니, 레퓌블리크 광장은 로마시대부터 지금까지 아를의 중심인 것이다.

아를 시청. 시계탑이 있는 아를의 시청사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 아를 시청. 시계탑이 있는 아를의 시청사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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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 뒤편에 시계탑이 있는 건물은 시청으로, 1657년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단아하게 세워졌다. 아를 시청 안으로 들어가보니 프랑스에 대한 테러공격으로 숨진 이들을 추모하는 꽃다발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테러와의 전쟁에 고심하는 프랑스의 아픔이 확연하게 드러나 보였다. 탄탄해 보이는 3층의 아를 시청사 앞에는 푸른색과 빨간색이 어울린 프랑스 국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단순히 2가지 색의 조합이지만 색상이 세련된 국기이다.

내가 궁금해서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은 레퓌블리크 광장 근처에 있다는 고대로마 포럼의 지하비밀통로, 크립토포르티쿠스(Cryptoportiques du Forum)였다. 2천년도 전에 지어진 로마 시대의 지하비밀통로라는 신비함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지하에 있다는 고대 회랑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크립토포르티쿠스. 로마시대의 비밀 지하통로가 어둠 속에서 끝도 없이 이어진다.
▲ 크립토포르티쿠스. 로마시대의 비밀 지하통로가 어둠 속에서 끝도 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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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지도를 보며 크립토포르티쿠스 위치를 여러 번 확인하고 찾아갔는데도 나는 계속 같은 위치만 맴돌았다. GPS와 연결된 지도 속의 나의 위치는 분명히 크립토포르티쿠스 주변을 가리키고 있는데, 크립토포르티쿠스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아를 시청사의 벽 앞에 계속 서 있었다.

핸드폰 지도 속의 크립토포르티쿠스는 계속 시청 부근을 가리키고 있었다. 크립토포르티쿠스는 어디에 숨어있는 것인가? 나는 결국 길 가던 나이 지긋한 신사에게 크립토포르티쿠스 위치가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크립토포르티쿠스 위치가 어디에요? 이 사진과 같이 지하에 있는 로마 유적지인데요. 분명 이 근처인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찾을 수가 없네요."

그는 나를 한번 힐끗 보더니 빙긋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이 골목길에서는 크립토포르티쿠스 찾기가 좀 힘들어요. 나를 따라와보세요. 여기 시청건물 보이죠? 이 시청 건물 지하에 있어요. 이쪽으로 와 보세요. 저기 1층에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가 보이죠?"

놀랍게도 육중한 아를의 시청사 건물 아래에 크립토포르티쿠스가 있었다. 이 지하통로에 가기 위해서는 시청사 내부의 1층으로 들어와서 입장권을 사고 지하로 내려가야 했다. 로마의 지하통로 위에 근대 시청건물을 만들었는데도 두 구조물이 훼손되지 않고 여전히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2천년 넘는 역사의 지하회랑은 얼마나 튼튼하게 지어졌으면 지금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을까?

크립토포르티쿠스는 마치 심연의 바다와 같이 어둠 속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꽤 깊은 땅 속으로 계단은 이어지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 지하구조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나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치형 지하통로의 일정한 거리마다 조명등이 켜져는 있었지만 땅 속은 불안하게 어두웠다. 어둠 속의 길을 혼자 걸으려니 긴장되었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들리는 소리는 나의 발자국 소리 밖에 없었고,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면서 적잖은 공포를 느꼈다. 나는 내 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계속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아무래도 땅속이다 보니 지상보다 훨씬 서늘한 공기가 지하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땅속 깊은 곳의 지하수로 인해 지하통로에는 습기가 가득 차 있었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 고여 있는 곳도 있었다. 이 공간 안에는 아무 설명문도 없었고 아치형 지하공간만이 눈 앞으로 무한정 펼쳐지고 있었다. 중도에서 돌아갈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크립토포르티쿠스의 석재조각. 무려 2천년 전의 역사가 이렇게 구석구석 쌓여 있다.
▲ 크립토포르티쿠스의 석재조각. 무려 2천년 전의 역사가 이렇게 구석구석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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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속에서 무너진 지하회랑 기둥의 석재들은 한곳에 모여 있었다. 기원전 1세기의 유적이니 이정도 보존된 것만 해도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지하의 천장을 이루는 석재 아치는 2천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지상의 하중을 견디며 신비롭게 서 있었다.

이 비밀스러운 통로는 왜 만들어졌을까? 날씨에 관계 없이 편하게 이동하기 위한 로마 귀족들의 지하회랑인가? 귀족들이 시민들 몰래 비밀스러운 회합을 가지기 위해서 만들어 둔 공간일까? 아니면 외적의 침입해 대비해 만들어 놓은 로마인들의 은신처인가? 알 수 없는 목적의 비밀공간은 현재 로마시대의 건축기술을 알려주는 훌륭한 보물창고가 되어 있다.

크립토포르티쿠스 미로. 아무도 없는 고대 로마로의 답사길이 계속 진행되었다.
▲ 크립토포르티쿠스 미로. 아무도 없는 고대 로마로의 답사길이 계속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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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둠 속의 길을 혼자 계속 걸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로마 속으로 혼자 들어온 것 같은 묘한 감상을 느끼게 한다. 나는 지하 비밀통로의 가장 끝까지 걸어갔다가 같은 길을 걸어서 다시 돌아 나왔다. 어둠의 끝까지 걸어가서 돌아 나온다는 사실에서 묘한 안도감이 느껴진다.

높은 계단을 올라 시청 밖으로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밝은 지상세계가 나를 반겼다. 시청 앞으로 조금 내려오자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생안느 교회가 서 있고 그 맞은편에 아를 천주교의 중심지 생트로핌 성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역사적 건축물들은 아를의 역사를 알려주려는 듯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며 기다리고 있었다.

생트로핌 성당은 5세기경에 건축된 생테티엔 성당(Cathédrale Saint-Etienne)을 12세기에 다시 지은 것이다. 아를의 첫 주교였던 생트로핌의 무덤을 이곳 성당으로 옮기면서 그를 기리기 위해 이름을 바꾸었고 생 트로핌의 유물들을 성당에 모셔두었다.

12세기에 시작된 성당 건립공사가 14세기까지 이어질 정도로 생트로핌 성당은 아를의 모든 힘을 모아 건설된 아를의 주요 프로젝트였다. 성당을 짓는 데에 고대 로마극장의 석재들을 떼어내 건축자재로 사용할 정도였다고 한다.

생 트로핌 성당. 12세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예쁜 성당이다.
▲ 생 트로핌 성당. 12세기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예쁜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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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당은 건립 당시에 유행하던 프로방스 지역 로마네스크 양식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전체적으로 간결하면서도 웅장한 외관을 지니고 있다. 생트로핌 성당은 로마네스크 미술의 견본으로 불릴 정도로 건축사적으로도 대표적인 외관을 가지고 있으며 누가 보아도 로마네스크 건물 같이 생겼다. 현재도 생트로핌 성당은 프로방스에서 제일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건축물로 꼽히고 있다.

성당이 지어지던 당시의 아를 왕국은 신성로마제국의 영토였지만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었고, 생트로핌 성당은 아를 왕국의 중심성당이었다. 생트로핌 성당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레데리크 1세(Frederick I)가 부르고뉴 왕 즉위식을 겸한 대관식을 올렸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세시대에는 스페인 북서부의 유명한 순례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찾아가는 순례자들이 많이 방문하였던 역사적인 성당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중요성 때문에 생트로핌 성당은 아를의 다른 로마시대 유적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생트로핌 성당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성당의 유구한 역사성과 함께 섬세하고 정교한 정문의 조각장식 때문이다. 현관으로 들어가는 정문에는 성자들과 사도들의 장식이 조화롭게 새겨져 있다. 정문의 기둥 사이사이마다에는 성인 조각상이 가득 채워져 있고, 기둥 끝에는 성서 장면이 새겨져 있다. 건물 곳곳이 종교적 메시지가 담긴 조각들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이 부조 작품들은 아를에 온 여행자라면 꼭 보아야 하는 작품들이다.

성당 내부.  아를 주교의 석관 등 아를의 옛 역사가 그대로 쌓여 있다.
▲ 성당 내부. 아를 주교의 석관 등 아를의 옛 역사가 그대로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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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당 입구의 오른쪽으로 난 작은 문을 통해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밖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성당 내부는 꽤 넓고 웅장했다. 성당 내부는 옛 모습 그대로 역사의 무게가 내려앉아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예배당은 전체적으로 장식을 절제하여 소박한 모습이다. 예배당 한 쪽에는 아를의 주교였던 생 오노레(Saint Honoré)의 유해가 담긴 석관이 아를의 천주교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성당 내부를 걷다가 또 다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만나게 되었다. 생트로핌 성당은 성당 내부의 태피스트리(tapestry)로도 대단한 유명세를 가지고 있는데, 성당의 커다란 태피스트리의 방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태피스트리 방의 벽면에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행적을 주제로 한 대형 태피스트리가 5점이나 걸려 있었다. 실로 직조된 작품이라 오랜 세월 동안 당연히 변색하였지만 아직도 푸른 빛만은 참 오래 남아있었다.

오뷔송 태피스트리. 색은 많이 바랬지만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명작이다.
▲ 오뷔송 태피스트리. 색은 많이 바랬지만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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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트로핌 성당의 오뷔송 태피스트리(Aubusson tapestry)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명품이다. 그림을 직접 직조하는 공정을 사용하는 오뷔송 태피스트리는 프랑스 오뷔송 지역에서 만들어져서 오뷔송 태피스트리라고 불린다.

오뷔송 태피스트리는 수평으로 놓인 직기 위에 디자이너가 그린 종이 도안 밑그림을 놓고 직조작업을 한다. 가정에서 손으로 염색한 실을 사용하고 밑그림을 직조하는 공정을 이용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수작업 공예품인 것이다.

성당 옆의 회랑과 수도원까지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니 성당 앞에 여행자들이 잔뜩 모여서 무언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좌우에 작은 문을 거느린 성당 정문 위에는 지붕 모양이 장식되어 있고, 지붕 아래 삼각형 부분에 아치 모양으로 둘러싸인 장식인 팀파눔(tympanum)이 조각되어 있었다.

팀파눔 윗부분 한 중앙에는 왼손에 복음서를 든 그리스도가 최후의 심판을 내리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스도 주변에는 그리스도교 네 복음서의 저자를 상징하는 천사, 사자, 황소, 독수리가 둘러싸고 있다. 천사는 마태, 사자는 마가, 황소는 누가, 독수리는 요한을 상징하고 있는데 모두 손과 발에 복음서를 잡고 있다. 그 아래에는 12사도들이 얌전히 좌정해 있다. 사도들은 마치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가장 인상적인 조각은 12사도의 옆에 조각된 수많은 인물 조각상들이다. 성당 정문을 바라봤을 때 왼쪽에 보이는 인물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향하여 서 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영원한 기쁨에 차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천국에 올라가는 사람들이다.

반면, 성당 정문을 봤을 때 그리스도 오른쪽으로는 그리스도를 등지고 있는 모습의 인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이들은 그리스도에 등을 돌린 사람들, 즉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에 등을 돌린 이들은 사슬에 매여 지옥으로 끌려가는 죄인들의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한마디로 이 인물상 조각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선택 받은 자와 버림 받은 자를 표현한 것이다.

성당 정문 조각상. 그리스도 오른쪽으로는 그를 믿지 않았던 죄인들이 끌려가고 있다.
▲ 성당 정문 조각상. 그리스도 오른쪽으로는 그를 믿지 않았던 죄인들이 끌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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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자유가 없던 중세시대,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죄인이 되어 끌려가고 있었다. 암흑의 중세 시대에 글을 모르던 민중들에게 그리스도교의 핵심교리를 이렇게 자극적으로 가르쳤던 것이다.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을 당시 사람들에게 거대한 조각으로 보여줌으로써 당시 사람들의 두 눈에 시각적 효과를 확실하게 각인시켰을 것이다.

일반지식이 보편화된 현대사회에서 나는 종교의 자유를 가지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정말이지 다시 한번 고맙게 느끼게 된다. 편견과 고정관념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사회가 얼마나 성숙한 사회인가를 중세 암흑시기의 인물조각들을 보면서 새삼 느끼게 된다.

누가 오른쪽으로 가든, 왼쪽으로 가든, 어느 방향을 보든, 믿음을 강요할 수는 없는 법. 생트로핌 성당의 지옥에 끌려가는 인물상들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유심히 보니, 한 사람만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다보고 있었다.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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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