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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초등학교가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작은 초등학교가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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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초등학교가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학교폭력 문제 때문이다. 오랫동안 놀림과 따돌림을 받아온 아이의 부모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에 가해 학생을 신고하면서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피해자, 가해자뿐만 아니라 반 전체 아이들이 모두 관련자로 학폭위의 조사를 받게 되었고 파장은 더 커졌다. 학폭위에 불려가게 된 아이들은 불안증세와 두려움을 보였다. 이 상황에 대처해야 할 학부모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아이들 간의 갈등 문제는 대체로 단순하지 않다.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의 기저에 있는 아이의 내면을 헤아리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처벌받아야 마땅한 중대한 범죄행위가 아니라면 학교폭력 문제, 특히 초등학교 학교폭력 문제는 아이들이 또래집단에서 겪는 복잡하고도 다양한 갈등의 한 과정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성장통' 같은 게 아닐까. 대단히 격렬하게 표출될 수도 있고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 나름대로는 다 이유가 있을 게다.

필요한 것은 어른들의 인내심이다. 더디더라도 아이가 겪는 문제를 아이 스스로 힘으로 해결하고 극복해나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지지하고 도와야 한다. 부모로서 안타까운 나머지 아이의 어려움을 대신 해결해주고 싶은 섣부른 욕망을 자제해야 한다. 혼자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교사, 학부모와 소통하고 의논해가면서 학교공동체 안에서 더불어 길을 찾아가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학폭위'가 열리면 갈등을 조절하고 화해를 시도하는 다양한 노력들은 진행하기 어렵게 된다. 아이들은 학폭위의 작동 매커니즘하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정체성으로 규정된다. 관계망의 가운데 위치해 있던 아이들의 존재 대신 '모월 모일 모시'에 벌어졌던 '사건'만이 부각된다. 부딪침과 물러섬, 소통과 접근, 극복과 치유 등 갈등 해결의 동학은 사라지고 '학폭위'라는 절차의 블랙홀에 삽시간에 빨려들어간다.

학교폭력의 실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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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학교는 무사했다> 표지 .
ⓒ 교육공동체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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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예방법'에서 규정하는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책 <그리고 학교는 무사했다>에서 정용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은 학교폭력을 주제로 학생, 교사, 학부모들을 각각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은 학교폭력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긴 시간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지내면서 학생들은 서로에 대한 정보를 모은다. 그들이 모으는 정보에는 누가 공부를 못하는지, 누구의 옷차림이 어떠한지, 부모님이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누가 힘이 센지, 내가 이길 수 있는 아이인지, 아버지의 직업이 어떻고 어떤 집에 사는지 등 수많은 정보가 포함된다. 이러한 정보들이 재배열되거나 고착화되면서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만약 어떤 학생에게 지지해 줄 친구가 없거나 그가 권력을 가질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 판단되면 이러한 학생들은 권력을 가진 아이들에게 괴롭히기 적절한 대상이 된다. 문제는 교사들이 이러한 학생들의 생태계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는 무사했다' 95쪽)


저자는 "관계성의 범주에서 보면 폭력은 지극히 문화적인 것, 사회적인 체계의 산물이 된다. 그러나 최근 학교폭력을 진단하고 대책과 처방을 내놓는 모든 사고 속에는 학교폭력은 '사건'으로 인식된다"며 "학교폭력을 관계가 아닌 사건으로 보면 단지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별짓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치중하게 되어 학교가 개인 간의 폭력적 권력관계를 어떻게 재생산하는 공간인지에 대해선 간과하게 된다"(107쪽)고 지적한다.

2017년 '숭의초 집단폭행사건'은 학교폭력에 계급관계와 권력관계가 작동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당시 피해자가 집단폭행 가해자로 지목한 학생 4명 중 재벌가와 유명 연예인의 자녀가 포함돼 있었는데, 학교 측이 이들에게 특혜를 주고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 피해 학생이 심각한 외상과 정신적 충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간의 경미한 다툼 정도로 규정한 것에 대한 비난이다. 똑같이 학교폭력에 연루되어도 금수저냐 흙수저냐에 따라 대응과 처벌의 수위가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씁쓸한 지적도 나왔다. 어른들이 만들어낸 세상이 이러하니 아이들 사이의 관계도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재력에 따라 서열이 매겨진다. 또래집단 안에서 서열과 권력 관계의 형성은 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최적화 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학교폭력의 안으로 깊숙이 접근하려면 툭 불거진 사건의 단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원인과 본질, 폭력이 생산되는 관계와 구조에 천착해야 한다. 상당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폭력을 잉태한 구조와 환경에 관해 사유하고 아이들 사이에 형성되는 서열과 권력관계로부터 비롯된 혐오의 논리, 차별의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 이는 가해자 몇 명을 솎아낸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손을 맞잡은 협동적 연대의 힘으로 대안을 찾아 나가는 학교공동체의 성찰력과 회복력이 문제를 풀 방법이다.

불신과 냉소의 대상이 된 학폭위

학폭위는 학교폭력 예방과 대책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학교별로 설치되며, 학교폭력 분쟁에 대한 조정과 가해학생에 대한 징계를 결정할 권한을 가진다.

과연 학폭위가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있을까? 벌어진 학교폭력 사건을 능숙하게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을까? 피해자, 가해자의 화해와 치유, 회복을 지원할 수 있을까? 학교폭력 문제를 야기한 환경과 구조에 대해 성찰할 수 있을까? 나는 현행 학폭위 제도로는 이러한 과제들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오랜시간 언어폭력과 따돌림을 당해 온 피해학생의 부모가 학폭위에 가해학생 신고를 결심하자 동료 학부모들은 이구동성으로 말렸다. 학폭위가 열리게 되면 해결은 고사하고 아이의 상처만 더 커질게 뻔하다는 것이 대다수 학부모들의 의견이었다. 그만큼 학폭위에 대한 불신이 컸다.

피해자와 가해자뿐만 아니라 또래집단 아이들이 모두 관련 여부를 조사당하고 학폭위원들 앞에 불려 나가 진술을 해야 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심리적인 압박과 스트레스가 될 수밖에 없다. 학폭위의 절차를 따라가다 보면 과연 이런 방법으로밖에 사안을 해결할 수 없는 것인가 심각한 의문이 든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해결한다는 학폭위의 진행 절차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폭력으로 받아들여 졌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후 가해학생은 자발적으로 전학을 결정했고 남은 아이들은 2회에 걸친 네 시간 상담치료를 받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두 번의 상담으로 아이들의 상처가 치유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아이들은 상담교사 앞에서 다시 한번 이야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려워했다.

상담 말고는 딱히 다른 치유책을 찾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때문에 후유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이들은 지금도 학폭위의 조사와 심의과정이 왜 그렇게 진행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학부모들도 흔쾌하지 않다.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냉소적인 평가만이 남았다.

학폭위의 자치적 기능은 무엇일까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르면 학폭위는 '자치위원회'다. 학교폭력의 예방 및 대책 수립을 위한 학교 체제의 구축,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에 대한 선도 및 징계,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분쟁 조정 등의 기능을 하도록 되어 있다. 학폭위의 전체 위원의 과반수는 학부모 전체회의에서 직접 선출된 학부모 대표로 위촉해야 한다. 학부모 임원진 회의에서 선출하는 것은 안 된다. 반드시 학부모 전체회의에서 학부모위원을 선출해야 한다. 그만큼 대표성과 책임을 부여받는 자리가 학폭위원이다.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선출된 위원으로 학폭위를 구성하는 것 자체가 '자치위원회'로서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문제는 학교폭력의 예방 및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전반에 학폭위의 자치적 기능은 거의 발현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단 학교폭력이 신고되면 교감과 책임교사, 보건교사 등으로 구성된 '전담기구'에서 사건을 조사한다. 전담기구가 관련학생들을 조사한 결과를 학폭위에 심의 안건으로 올리면 학폭위원들은 가,피해 여부를 가리고 가해학생에 대한 징계수위를 결정하는 심의를 진행한다. 사건 심의 권한이 학폭위원들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는 '전담기구'에서 진행하므로 학폭위원들은 전담기구의 조사내용에 전적으로 의존해 논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때문에 심의는 가,피해 사실에 대한 확인과 징계 논의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징계는 가장 낮은 수위인 제 1호 서면사과에서부터 가장 높은 수위인 제 9호 퇴학까지 결정할 수 있다.

학폭위의 성격을 '자치위원회'로 규정한 것은 학교폭력 문제를 교육적인 관점에서 학교 구성원들의 자발적이고 협력적인 노력으로 풀자는 취지이다. 그러나 현실은 가해자에 대한 양형 수위를 결정하는 기구로 제한적인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다. 가해자를 징벌하는 것 이외에 학교폭력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학교공동체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과 대책 마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치위원회'다운 기능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사법 전문가나 학교폭력 문제 전문가도 아닌 선출된 학부모 위원들이 학생생활기록부에 표기되는 징계 양형의 수위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늘 따라다닌다. 학교폭력 문제를 학교 구성원들의 자치를 통해 풀려고 했던 입법 취지와 달리, 학교 현장에서는 학폭위의 절차적 정당성과 징계의 합리성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가해학생을 선도하는 것도, 피해학생의 치유와 회복을 돕는 것도, 폭력적인 학교 문화와 환경을 바꿔나가는 노력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것이 학폭위의 현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상처를 입는 것은 결국 아이들이다.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어른들의 조처들이 아이들에게 또다는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학부모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번 일을 겪으면서 교사들이나 교육청 관계자들과도 수차례 이야기를 나눴지만 누구하나 속 시원한 답을 주지 않았다. 모두들 '현행 학폭위 규정과 절차가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답답했지만 성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학폭위를 둘러싼 갈등과 진통의 과정은 학부모들에게 결과적으로 '학습효과'를 주었다. 이번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다양한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되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할 텐데 그럴 때마다 학폭위를 열 수는 없지 않겠는가. 부모로서 아이들이 관계를 맺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어떻게 지지하고 응원할 것인가 공부하고 토론했다. 무엇보다 문제가 생겼을 때 덜컥 제도에 모든 것을 내맡겨버리는 것이 아니라, 동료 학부모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함께 방법을 찾아가 보자고 했다.

학교폭력 문제를 학교 현장에서 '자치적으로' 푼다는 것은 무엇일까? 현행 학폭위가 입법 취지대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 물음에 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치적으로 성찰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학교 구성원들의 협력적인 노력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학교폭력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공부하는 엄마가 교육을 바꾼다' 연재는 교사나 학자가 아닌 학부모의 시각으로 쓰는 교육에 관한 칼럼입니다.



태그:#학교폭력예방법, #학폭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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