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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보기 좋은 몸을 유지하는 일은 어렵다. 많은 이들이 작은 성공과 큰 실패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어간다. 그럼에도 이 고통스런 쳇바퀴에서 내려오기란 쉽지 않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새로운 다이어트 비법들 때문이다.

하지만 언뜻 그럴 듯해 보이는 비법들도 막상 부딪혀 보면 늘 어딘가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마치 조각을 잃어버린 퍼즐처럼 한 곳(또는 여러 곳)이 비어 있었다. 그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아내지 못하면 우리는 앞으로도 영영 쳇바퀴에서 내려올 수 없을지 모른다.

여기 그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아 나선 책이 있다. 저자는 한때는 잘 나가던 지상파 환경 다큐멘터리 전문 PD였다. 그러나 그도 40대에 접어들면서 비만을 피해갈 수 없었다. 과식을 멈출 수가 없어 "위장이 아플 때까지 먹었다"는 그는 대체 왜 과식을 멈출 수 없는지 알고 싶어졌다.

"전문가들은 비만의 원인을 과식이라고 말하면서도 과식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해 주지 않았다. 그 이유를 알면 건강은 물론 이미 거대한 사회문제가 된 비만 현상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그렇게 5년 만에 답을 찾은 그가 책을 냈다. <맛의 배신>(2018, 바틀비)이다.

'과식의 원인'이라는 잃어버린 퍼즐을 찾아서

<맛의 배신> 표지
 <맛의 배신> 표지
ⓒ 바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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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낯익은 실험으로 시작한다. 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일반 사료를, 다른 그룹에는 베이컨, 치즈케이크, 소시지 등 고칼로리 음식들을 제공하는 실험. 결과도 예상대로다.

일반 사료를 먹은 첫 번째 그룹의 쥐들은 체중이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고칼로리 음식을 먹은 두 번째 그룹은 두 배로 불었다. 두 번째 그룹에선 기분을 좋게 하는 뇌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 수용체가 줄어드는 전형적 '중독' 증상이 나타난 것. 점점 더 많은 자극(더 많은 도파민 분비)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두 그룹에게 전기 충격을 주어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살폈다. 첫 번째 그룹은 전기 충격을 피하려 애를 썼으나, 뚱뚱해진 두 번째 그룹은 고통을 "그냥 겪었다". 역시 중독의 전형적 증상이다. 자포자기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그룹) 쥐들은 처음에 느꼈던 행복감을 얻으려고 더 많이 먹었지만 행복감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쥐들은 뚱뚱해졌고 불행했다."


사실 여기까지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다. 설탕과 밀가루, 나쁜 기름으로 범벅된 정크 푸드가 중독과 비만을 일으킨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대개 결론은 이렇다. '그 달짝지근하고 짭조름하면서 느끼한 '맛'이야말로 과식을 부추기는 악마의 손짓이니, 어떻게든 그 '맛'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당신이 배가 터지도록 무언가를 먹는 이유는 그 음식이 맛이 없기 때문이다.' 맛이 없어서 탐하게 된다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동물에겐 왜 비만이 없을까

2005년, 미국의 생태학자 프레드 프로벤자(Fred Provenza) 교수는 양의 위장에 테르펜이라는 파이토케미컬(phytochemical)을 주입한 뒤 먹는 양에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살피는 실험을 했다. 파이토케미컬이란 식물의 뿌리나 잎에서 만들어지는 화학물질로 미생물이나 해충으로부터 식물을 보호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테르펜을 주입한 양들은 다른 양들과 달리 사료를 먹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먹이통에서 물러났다. 위장에 들어간 테르펜이 그만 먹으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블루베리 엑기스를 먹인 쥐들도 같은 반응을 보였는데, 이들은 다른 쥐들보다 사료를 덜 먹었고 실험이 끝날 무렵 몸무게가 다른 쥐들보다 덜 나가게 되었다.

그러니까 자연 상태의 동물들은 소화관으로 파이토케미컬과 같은 어떤 성분들을 감지함으로써 자연스레 먹는 양을 조절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자연 상태의 동물들은 비만이 되는 일이 없다. 그렇다면 사람도 파이토케미컬에 반응할까. 물론이다. 우리는 이런 성분을 '향미'로 느낀다. 흔히 우리는 '맛'을 혀로 느낀다고 알고 있지만 여기에 비강(코 안의 빈 곳)으로 맡는 향이 더해져야 한다.

음식을 입에 넣으면, 입안에서 공기가 위쪽으로 밀려 비강으로 올라가는데, 이곳에 자리한 후각 수용기들이 수천 가지의 휘발성 화합물들을 감지한다. 혀에서 오는 미각 신호에 이렇게 얻은 감각이 더해져 비로소 '향미'라는 음식의 '맛'이 완성되는 것이다.

"(향미는) 인간을 정의하는 핵심 요소로서 음식의 향미를 느끼는 감각은 시각과 청각이나 심지어 섹스보다도 더 중요하다... 그것은 인간과 문화의 탄생에 도움을 준 새로운 형태의 자각이었다. 향미 각감은 인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향미 감각은 더 이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먹는 먹거리들이 점점 향미를 잃어가기 때문이다. 파이토케미컬과 미량원소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인류의 먹거리는 종자ㆍ품종 개량이란 이름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가령, 토마토는 지난 30년간 수확량이 무려 세 배나 늘었지만, 그 사이 칼슘, 비타민A, 비타민C 등이 크게 줄었다. 1999년의 토마토는 1950년의 토마토보다 칼슘은 57%, 철분은 29%, 비타민 C는 21%가 줄었다. 생산량과 색, 모양, 질병 저항에만 초점을 맞춘 종자 개량으로 이렇듯 향미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문제는 향미가 영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데 있다. 가령, 토마토에 들어있는 400여 개의 향미 화합물 가운데 우리를 유혹했던 20개는 모두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들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향미가 좋은 음식, 즉 맛있는 음식이 영양소도 풍부한 음식이다. 음식이 영양소를 잃으면 자연스레 향미도 사라지고 더 이상 포만감도 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정크 푸드가 돼버린 닭고기

프라이드 치킨
 프라이드 치킨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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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는 더 심각하다. 닭은 지속적인 개량으로 1940년대보다 성장 속도가 무려 두 배나 빨라졌다. 요즘 우리가 먹는 닭은 태어난 지 35일이면 도축 되어 팔려나간다. 그 덕에 향미가 약해졌다. 향미가 근육에 축적되려면 풀과 풀벌레를 먹어가며 충분한 성장 시간을 거쳐야 하는데 겨우 한 달간 옥수수와 콩으로 만든 사료를 먹을 뿐이니 풀에서 얻어야 할 영양소와 파이토케미컬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다보니 맛도 없을 뿐더러 포만감도 주지 못한다. 포만감은 칼로리 뿐 아니라 음식의 질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량영양소, 파이토케미컬 등이 포만감을 구성하는 주요 요인이다. 앞서 양을 먹이통에서 물러나게 했던 테르펜처럼 말이다.

"식물의 이차화합물은 깊은 포만감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향미가 진한 음식에 식물의 이차화합물이 더 많이 들어있으므로 진향 향미가 있는 식품이 일반적으로 포만감이 더 높다."


어쩌면 닭이 맛이 없다는 말에 동의하지 못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닭은 생닭에 온갖 첨가물을 더해 소금물에 절이고, 향신료가 잔뜩 들어간 튀김가루를 묻혀 튀겨낸 뒤 여기에 다시 향신료와 MSG, 설탕을 섞은 양념소스를 바른 것이다. 첫 실험에서 두 번째 그룹의 쥐들을 중독에 빠뜨렸던 그 정크 푸드에 다름 아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음식이 그렇다.

저자의 노력에 박사 학위라도 주고 싶은 마음

과식의 원인을 밝히려는 이 책의 굵직한 흐름을 따라가 봤다. 물론 이게 다가 아니다. 혀로 느끼는 여섯 가지 맛으로 음식의 깊고 풍부한 향미를 모두 설명할 수 없듯 이 책의 진정한 가치도 몇몇 사례만으로 온전히 옮길 수 없다.

이 책은 흔한 다이어트 안내서들과는 다르다. 인간의 건강과 음식 문화 사이의 길고도 복잡한 관계를 역사적ㆍ과학적으로 명쾌하게 규명해낸 책이다. 기원 전 2000년 경 인도에서 설탕이 처음 만들어진 뒤로, 이 달콤한 가루가 고대 인도와 이집트 그리고 중세와 근대 유럽을 거쳐 전 세계로 퍼지는 사이 인류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또 20세기 초 아프리카 원주민과 북해 인근의 이누이트가 유럽식 식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되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도저히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저자는 이 책을 쓰려고 지난 5년간 무려 100여 편의 외국 논문을 읽었고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눈물겨운 임상실험도 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저자에게 박사학위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다.

"음식은 수천 수만 가지 화합물로 구성된 소우주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과 몇 가지 비타민을 영양의 모든 것으로 파악했던 근대 영양학은 그 복잡성의 발끝도 이해하지 못했다."


책을 읽고 나면 날마다 마주하게 되는 삼시세끼가 정말로 하나의 소우주로 보이게 된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온갖 지식과 정보들이 얼마나 얄팍하고 위험한 것이었는지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아마도 나와 내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당장 무엇부터 바꿔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부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잃고 더 이상 맛으로부터 배신 당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맛의 배신 - 우리는 언제부터 단짠단짠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유진규 지음, 바틀비(2018)


태그:#맛의 배신, #건강, #음식,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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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2월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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