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시의원', '35세에 민주당 하원의원 당선', '7선 의원'.

이 화려한 타이틀을 가진 '앤서니 위너(Anthony Weiner)'는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던 미국의 주목받는 정치인이었다. 공화당이 법인세 인상을 막기 위해 9.11 테러 구조요원 의료지원법 통과에 반대하자 "왜 영웅을 지키는 덴 관심 없고, 당신네 당원들만 싸고 도냐"며 "부끄러운 줄 알라"고 호통을 치는, 이 시원하고 거침없는 화법은 단숨에 그를 의회의 스타로 만들었다.

대중의 인기를 업고 정치인으로 탄탄대로만 걸을 것 같던 그 때, 위너의 발목을 잡은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성적인 문자와 사진을 주고받는 일명 '섹스팅(Sexting)'이 발각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해킹 의혹을 제기하며 변명에 급급하던 그는 거짓말이 탄로나자 2011년 6월, 결국 의원직을 사임한다. 

그의 정치생명이 이렇게 끝났다면, 아마도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임한 지 2년이 지난 2013년, 위너는 제23대 뉴욕시장 선거에 출마하기로 한다. <앤서니 위너: 선거 이야기(Weiner)>는 이렇게 위너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를 따라가는 다큐인 줄 알았다. 선거 도중 '두 번째 스캔들'이 터지기 전까지는.

성 스캔들에 대처하는 정치인의 자세

 스캔들이 터진 후 위너에게 몰려든 취재진. <앤서니 위너: 선거 이야기>의 한 장면

스캔들이 터진 후 위너에게 몰려든 취재진. <앤서니 위너: 선거 이야기>의 한 장면 ⓒ EIDF


섹스팅 파문으로 물러난 그가 2년 만에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물론 처음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언론에서는 정책보다 스캔들을 더 추궁했고, 대중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특유의 언변과 의료복지 제공 등 민심을 끌어당기는 정책으로 선거 두 달 전 여론조사 1위로 부상하면서 그의 복귀는 성공적으로 시작하는 듯했다.  

그러던 중, 두 번째 스캔들이 터졌다. 또 다른 여성에게 더욱 노골적인 음란 메시지를 전송한 것이 밝혀졌고, 더군다나 시기도 의원직 사임 이후인 불과 일 년 전으로 드러나면서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다큐는 스캔들 이후 위너가 이를 어떻게 대응하는지 따라간다. 가장 놀라웠던 건 그의 '뻔뻔함'이었다. 72시간만 지나면 머리기사에서 빠질 거라며 생사가 걸린 일도 아닌데 차분해지자고 오히려 선거본부를 다독이는(?) 그에게 진심어린 반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솔직하고 분명하게 해명하기보다 과거 인터뷰 답변과 비교하며 말이 '다르지 않은지' 우려하고, 어떤 답변이 더 '문제가 없을지' 고심하는 장면은 자신을 둘러싼 문제에 대응하는 정치인의 자세를 생각하게 했다. 그에게는 지금 당장의 비난을 피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해보였다.

위너의 아내는 선거에 이용된 '들러리'였다

다큐에서 위너 못지않게 주목하는 인물은 아내 '후마 애버딘'이다. 오랜 기간 힐러리 클린턴을 보좌해 온 그는 능력 있는 보좌관으로 당시 차기 미국 대선에서도 힐러리 진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위너는 부부 사이가 여전히 좋다는 걸 보여주는 것으로 자신의 스캔들을 덮기 위해 선거기간 내내 유세현장에 아내를 데리고 다니며 '이용'했다. 대표적으로 두 번째 섹스팅이 밝혀진 직후, 기자회견장에 위너와 함께 등장한 후마는 기자들 앞에서 "전적으로 우리 부부의 문제"라며, "남편을 이미 용서했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언론은 후마의 행보가 남편을 향한 진심인지, 남편을 시장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인지를 끊임없이 의심했다. 스캔들의 장본인도, 선거에 출마한 것도 모두 위너인데 후마는 그의 아내라는 이유로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선거 후반부에 다다르면서 후마는 남편의 전략에 이용되기를 끝내 거부한다. 유세 현장이나 선거 광고영상 촬영에 같이 가지 않았고, 선거 당일에도 투표장에 동행하지 않겠다고 했다. 위너는 "평범한 후보 부인처럼만 행동하면 된다"며 협조하지 않는 아내에게 불만을 표했지만, 사실 그에게는 그렇게 말할 권리가 없었다.

"누가 날 판단하죠?"... 유권자가 심판한다

 기자회견장에서 위너와 아내 후마. <앤서니 위너: 선거 이야기>의 한 장면

기자회견장에서 위너와 아내 후마. <앤서니 위너: 선거 이야기>의 한 장면 ⓒ EIDF


거리유세 도중 위너가 한 시민과 설전을 벌이는 장면은 다큐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시민이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다닐 배짱이 있냐고 비아냥거리자 위너는 "누가 날 판단하냐?"고 되물으면서 '선거'로, '표'로 판단하자고 으스댄다.

이 지점에서 다큐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정치인의 자질은 무엇이고, 이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선거기간 동안 위너는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억울함을 계속 피력한다. 스캔들은 철저히 사생활의 영역이고, 그 실수만으로 공적 영역의 '정치인'과 '정책'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선거 한 달 전, 유권자의 53%가 출마 철회를 주장하고 비호감 지수가 80%에 달했지만 그는 끝내 선거를 포기하지 않았다. 

결과는 본인이 그토록 부르짖었던 '표'로 명확하게 나타났다. 4.93%의 득표율로 5명 중 5위 기록. 뉴욕시의 대다수 유권자는 그를 시장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심판'했다. 다큐가 공개된 2016년 이후 위너의 삶은 더 파란만장하다. 또 다른 스캔들이 터져 결국 아내와도 이혼했고, 지난해에는 미성년자와의 섹스팅으로 징역 21개월을 선고받았다.

6.13 지방선거, 우리의 선택은?

앤서니 위너를 보며 '미투' 이후 지방선거를 앞둔 한국 정치인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증언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치계의 미투는 이번 지방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안희정, 정봉주 등 유력 정치인들이 일찌감치 물러났고, 민주당 유행렬 청주시장 예비후보와 안병호 함평군수가 성폭력 의혹으로 출마를 포기했다. 반면 성폭력 의혹에 휩싸이고도 출마를 선언하고 공천까지 받은 후보들도 있다.

각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해당 후보들에 대한 공천 철회를 주장했지만, 정당들은 후보를 확정했다. 이는 비단 한 정치인 개인에 대한 허용이 아니라, 정치판이 '미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다. 이제 유권자의 선택만이 남았다.

덧붙이는 글 <앤서니 위너: 선거 이야기>는 2016년 선댄스 영화제 미국 다큐멘터리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이자 2016년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상영작으로 http://www.eidf.co.kr/dbox/movie/view/257에서 다시보기가 가능합니다.
선거 앤서니위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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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화는 우리네 일상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 파도 앞에서 조개를 줍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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