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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석추모사업회는 권문석 5주기를 맞아 그의 생애를 그린 "알바생이 아니라 알바노동자입니다"라는 책을 출판하였고, 저자 오준호와 함께 6월 2일 북콘서트를 진행한다 .
▲ 권문석 5주기 권문석추모사업회는 권문석 5주기를 맞아 그의 생애를 그린 "알바생이 아니라 알바노동자입니다"라는 책을 출판하였고, 저자 오준호와 함께 6월 2일 북콘서트를 진행한다 .
ⓒ 권문석추모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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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은 최저임금 1만 원을 최초로 외쳤던 권문석이 사망한 지 5년째 되는 날이다. 그가 최저임금 1만 원을 외친 2013년 1월 1일은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초기였고, 그가 떠난 것도 2013년 6월이었으니,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의 역사와 박근혜 정부에 투쟁했던 역사, 그리고 그를 기억하는 시간이 공교롭게도 일치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주 과거를 망각한다. 

박근혜의 꿈을 더불어민주당이 통과시키다

박근혜 대통령에 저항한 최초의 촛불은 노동 개악에 맞선 민주노총의 투쟁이었다. 이 사건으로 당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됐다 출소했고, 이영주 사무총장은 아직 감옥에 있다. 노동 개악의 대표적인 내용이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의 완화였다. 많은 사람들은 미르재단과 K재단 등을 통해 재벌들에게 기부금을 받고 그 대가로 이 노동개악을 밀어 붙였을 거라 의심한다. 이후 촛불투쟁을 통해 이 지침은 폐기된다.

그런데, 지난 5월 28일 박근혜의 꿈이 통과됐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 정권에서, 그것도 최저임금을 불리하게 바꾸는 내용이다. 절망적이게도 국회 입법을 통해서 법률로 만들어버렸다. 박근혜 대통령도 감히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박근혜 정권은 2016년 1월 22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의 행정지침 발표를 통해 노동개악을 시도했을 뿐이다.

식대 등의 복리후생비와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산입하기 위해서는 취업규칙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의 취업규칙 변경을 단행할 때는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법 개정으로 노동자들의 동의는 필요가 없게 됐다. 동의 대신 의견청취면 된다. 법적으로 의견청취란 노동자의 의사를 반영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반대의견이든 찬성의견이든 들으면 그만이라는 의미다. 즉 무시해도 된다.

물론, 지금도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제대로 하지는 않는다. 보통의 경우 직장상사가 서류를 보여주면, 노동자들은 그냥 싸인해 버리고 만다. 물론, 정당한 절차로 볼 수 없지만, 그 장면에서 갑자기 '이의 있습니다.' 손을 들면, 그대로 손들고 회사 밖을 나가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한 명쯤은 용기를 내기 마련이다. 이럴 경우 문제가 된다. 또, 노조가 있다면 더 쉽지 않다.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10%, 이 10%의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고, 용기를 낼 단 한명의 가능성마저 없애버리기 위해서 국회가 나서 최저임금법을 통과시켜버린거다. 실제로 이번에 최저임금법이 통과되기 전에도 기타수당과 상여금을 줄이는 온갖 꼼수들이 판을 쳤고 이에 대한 용기 있는 폭로와 고발이 이어졌다. 국회는 이를 보고 사업주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을 합법으로 만들어 버렸다. 박근혜식 최저임금법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직해져야 한다

최저임금제도는 상대적으로 힘이 강한 사장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근로계약을 맺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법안이다. 사장님들은 다른 노동자를 구하면 그만이지만 노동자는 지금 일자리를 구하지 않으면 소득이 없어 생존의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법은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지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 법의 취지에 맞는 일이다. 오죽했으면 헌법 제32조 1항에 최저임금 조항을 넣었겠나.우리나라 대통령은 변호사다. 게다가 오랫동안 민변 회원으로, 인권변호사로 일해 오면서 노동법의 정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을 깎지 말라고 제정한 법률에 최저임금을 깎으라고 보장하는 조항을 넣는 것을 거부해야 하는 이유도 분명히 알거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을 통과시키려고 한다면, 적어도 박근혜처럼 솔직해야 한다. 대통령으로서 최저임금 인상이 부담된다고 판단된다면 상여금 25%, 복리후생비 7% 같은 예외조항을 만들어서 최저임금제도 자체를 누더기로 만들게 아니라, 차라리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하겠다고 말하는 게 맞다. 지금 연봉 2500만 원 이하 노동자는 피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노동자들 사이의 분열을 조장할 뿐이며 국민들을 속이는 것뿐이다. 2024년에는 조건조항도 없어진다. 최저임금제도가 한 번 훼손되면 주휴수당, 업종별 지역별 차등적용 등 다른 내용들도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 차례 '숙의민주주의'를 강조한 바 있다. 이것이 통치의 수단이 아니라면, 그리고 최저임금 논쟁을 이상한 숫자논쟁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명쾌한 토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지금의 최저임금제도 개정안은 박근혜의 400원 인상보다 나쁘다. 그때는 모두가 고작 400원 올리냐고 박근혜 정부를 비판했고, 최저임금 인상의 논리를 가지고 정권과 재계와 싸웠다. 그래서 차라리 이번 최저임금법은 거부권을 행사하고, 어차피 청와대에서 임명하는 공익위원들을 통해서 동결이나 늘 하던 대로 500원 인상을 추진하는 게 맞다. 물론,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자신의 최저임금 1만원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올해 동결이 되면 지난해 1060원 인상도 무력화된다. 1년에 500원 오른 거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늘 올랐던 대로 올해 500원 정도 올려 8030원이 된다 하더라도, 1년에 780원 오른 거에 불과하다. 박근혜가 연임했어도 크게 다르지 않을 인상 속도다. 국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평가를 받으면 될 일이다.

박근혜의 최저임금과 권문석의 최저임금

마침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법 통과 이후인 5월 29일,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노동시간 단축법이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감당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과 노동시간단축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만,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거꾸로 적용시킨 것에 있다. 최저임금이 높아져 기본급 비율이 높아지면, 짧은 시간 일할 유인이 생긴다. 대신 기본급을 낮추면 연장수당과 야간근로를 통해 추가소득을 확보해야 하는 강제가 생긴다. 주5일제가 도입되기 전 경제가 망하다고 그 난리를 치던 기업들이 이 나라의 노동자들을 세계에서 가장 길게 일을 시킨 비법도 바로 낮은 최저임금에 있다.

최저임금 1만 원을 외친 권문석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저임금 1만원과 노동시간단축을 하나의 정책으로 생각했다. 또 하나 그가 최저임금 1만원과 함께 이야기한 대안이 있다. 바로 기본소득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영세자영업자들과 저임금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에 대한 부작용을 증세를 통한 보편적 복지의 확대와 사회안전망 구축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권문석은 이것을 최저임금 1만원의 트라이앵글이라 불렀다. 이 길은 부자들의 저항이 극심한 어려운 길이다. 국회가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건드린 이유도 부자들의 저항보다는 노동자들의 저항이 견디기 쉬울 거라고 생각해서였을 거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최저임금 1만 원이 2020년까지 달성되기 어렵다고 말을 보탰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만들고 싶은 나라가 박근혜의 꿈이 이루어진 나라는 아닐 거라 믿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의 최저임금이 아니라, 권문석의 최저임금 1만 원의 길을 걸어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박정훈 기자는 맥도날드 라이더입니다.



태그:#문재인, #최저임금, #권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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