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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사람은 상식보다 탐욕이 크다. 탐욕스러운 사람, 세상을 모르는 사람, 세상을 너무 잘 아는 사람, 모두 다 우리를 만날 수 있다. 사기는 테크닉이 아니다. 심리전이다.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그 사람이 뭘 두려워하는지 알면, 게임 끝이다."

영화 <범죄의 재구성>(2004년 개봉)에서 등장하는 마지막 대사다. 이 대사는 사람들이 왜 사기를 당할 수밖에 없는지 사기꾼들의 시각에서 그 이유와 원인을 간단명료하게 보여준다. 이 대사에서 가장 주요한 키워드는 두 개, '두려움'과 '갈망'이다.

'두려움'과 '갈망'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은 사기꾼들의 심리 트릭에 반드시 속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대사가 전달하려는 핵심 메시지다. 그리고 이 책 <뒤통수의 심리학>이 주장하려는 핵심 내용도 이와 같은 전제에서 시작한다.

진화 관련 학문이나 뇌 과학에서도 주장하듯이, 인간은 불안정한 상황이나 불분명한 처지에 놓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로부터 확실히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무엇인가를 "원한다". 그 무엇인가는 실로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철학이나 과학처럼 이성적으로 납득 가능한 일련의 이론들일 수도 있고, 종교나 카리스마 넘치는 영적 지도자처럼 이해를 초월하여 마냥 추앙하고 싶은 미지의 대상일 수도 있다. 혹은 그저 객관적으로는 하등 쓸모없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임의대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모종의 대상들일 수도 있다.

상식보다 탐욕이 클 때 사기꾼이 잠입한다

책 표지
▲ 뒤통수의 심리학 책 표지
ⓒ 프런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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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든 인간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갖가지 결핍이나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부족함이나 역경을 어떤 식으로든 극복하려 애쓴다. 원하는 바를 얻어내거나 난관을 해결해야만, 비로소 마음이 평온해져 삶을 즐겁고 희망차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절대 불안감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 그를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하려고 애쓴다. 그것이 인간의 뇌 구조이고, 심리 메커니즘이다. 인류는 진화하는 동안 그렇게 자신을 프로그래밍 해온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인간이 불안감을 해소하고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추구할 때 꼭 합리적인 방식만을 취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간혹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기괴하거나 특이한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무조건적으로 그 방식을 믿고 따르는 경우가 있다. 또는 응당 한번쯤은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할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설마 거짓말이겠어?' 하고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너무 쉽게 신뢰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사람들이 가끔 이렇게 비합리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현재 겪고 있는 결핍을 얼른 해결하고 싶은 욕망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사기꾼들은 마치 맹수가 먹잇감을 노리듯 이러한 심리 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교묘하고도 철저하게 농락한다는 것이다.

고통을 최대한 쉽고 빠르게 벗어나길 원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그래서 얼른 이 구렁텅이 같은 현실이 밝고 희망찬 삶으로 변하길 갈구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이 사기꾼에게 뒤통수를 당할 확률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비례한다는 얘기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사기꾼들은 사람들의 차갑고 습한 심리 뒤에 숨어서 그들의 어두운 속내를 먹고 사는 존재, 즉 이끼 같은 존재다.

"이 책은 사기의 역사를 상술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온갖 사기 유형을 빠짐없이 총망라하는 것도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이 책은 아주 간단한 속임수든 가장 복잡한 사기극이든 모든 사기의 저변에 깔려 있는 심리적 원리를 탐구하고자 한다. 사기극이 구상되고 계획되는 순간부터 그것이 실행돼 모종의 결과와 여파가 발생하기까지 작동하는 심리적 원칙들을 파헤쳐볼 생각이다."(41p)

범죄 활극으로 알려주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리 원칙

phishing
▲ 피싱 사기 phishing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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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러한 이끼들이 뭇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서식지를 찾아내고 무전 취식을 하며 세를 불려나가는지, 한 챕터 한 챕터씩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매 챕터마다 그 챕터의 주제의식에 딱 들어맞는 실제 사기극 사례들이 여럿 등장해서 흡사 범죄 실록을 읽는 것마냥 긴장감도 느낄 수 있다.

사례들을 분석한 내용이 너무도 생생하면서도 상세한 탓에, 이 책을 꼼꼼히 정독한 사람들은 아마도 이 이후에 어떤 식으로든 사기꾼들을 만난다면 그들의 수법을 쉽게 간파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한편 역설적이게도 이 책의 독자가 온갖 사기 수법들을 본의 아니게 독학한 나머지 되레 범죄자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우려되기도 한다).

그러나 안심하는 행위는 금물이다. 저자 마리아 코니코바는 누구나 언제든 욕망의 포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영화 <범죄의 재구성>의 대사도 그리 경고했듯이, 뒤통수를 당하는 자들은 허영심이 가득하거나 세상물정을 모르는 천치들만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 이치에 통달했다고 자만하는 자들도 바로 그 '자만심' 때문에 뒤통수를 당할 수 있다.

인간이 '믿고 싶어 하는 것'이든 '믿고 있는 것'이든, 모든 사기 행각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하거나 현재 갖고 있는 그 '믿음'을 이용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 저자 마리아 코니코바의 결론이다.

자신의 믿음을 너무 믿지 말라

"믿음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계속해서 의심을 품고, 신뢰를 주는 데 인색하고, 세상의 가능성을 받아들이길 끊임없이 거부하면, 우리는 절망 속에 살아가게 된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려면 어떤 형태의 믿음이든 기꺼이 가지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사기가 태곳적부터 존재해온 이유이자 세상 모든 직업이 사라져도 꿋꿋하게 건재할 마지막 직업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406p)

믿음은 세상살이를 하는 인간에게 일종의 의미를 부여해준다. 그래서 믿음은 소중하다. 예를 들어 우정을 믿는 자들은 우정 때문에 살맛이 나고, 사랑을 믿는 자들은 사랑 덕에 살맛이 생긴다. 공부를 하면 앞으로 내 삶이 더 윤택해질 것이라 믿는 사람들은 공부를 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고,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면 내 영혼이 충만해질 것이라 믿는 자들은 종교심을 키워가면서 삶의 의미를 찾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갑자기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일명 의심병이 도질지도 모른다. "혹시 나는 누군가로부터 내 믿음을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현재 나의 믿음 역시 누군가가 나를 세뇌시킨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의심들 말이다.

당신은 현재 무엇을 믿고 사는가. 또 무엇을 믿으며 살고 싶은가. 그리고 당신은 그 믿음을 얼마만큼 '믿고' 있는가. 긴장하라. 당신의 그 믿음에 들러붙으려는 이끼들이 당신 주위를 기웃거리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을지도 모를 테니까.


뒤통수의 심리학 - 속이는 자와 속지 않으려는 자의 심리 게임

마리아 코니코바 지음, 이수경 옮김, 한국경제신문(2018)


태그:#뒤통수의심리학, #서평, #책리뷰, #심리학책,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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