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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진보할수록 세상은 진보한다. 기술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은 벌써부터 수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자율 주행 자동차는 상용화를 앞두고 있으며, 사물인터넷은 미래사회의 중심에 설 것이란 예견이 많다.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달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줄 것이란 기대까지 말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이다. 경제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히려 이러한 세계관을 정면 반박한다. <엔트로피>는 1989년에 발표된 책이다. 긴 시간이 흐른 과거의 예견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는 '엔트로피' 법칙을 들어 사회 전반에 걸친 기계론적 세계관을 비판한다.

엔트로피는 열역학 제 1법칙과 제 2법칙에 등장하는 용어이다. 열역학 제 1법칙은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 생성되거나 소멸하지 않고 형태만 바뀐다는 에너지 보존 법칙이다. 제 2법칙은 자연현상의 변화는 항상 일정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법칙이다. 엔트로피란 이 과정에서 자연물질이 변형되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무용한 에너지를 일컫는다.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관점의 세계관은 그의 저서<3차 산업혁명>에 다시 등장한다. <3차 산업혁명>에서 제러미 리프킨은 모든 건물이 태양광, 지열, 바람, 하수 등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생성하는 미니 발전소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엔트로피>를 읽고 나서 <3차 산업혁명>은 엔트로피의 보충이자 구체적인 방법을 담은 책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책을 읽고 제러미 리프킨의 <3차 산업혁명>을 읽는다면 에너지 변화가 가져올 사회 전반의 변화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리프킨에 따르면,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세계는 점차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는 오히려 세상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완벽하기는 하지만 영원하지는 못하며, 창조된 순간부터 쇠락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그리스인들의 세계관을 지지한다. 그리스인들의 세계관이야말로 엔트로피 법칙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엔트로피>-표지
▲ 엔트로피 <엔트로피>-표지
ⓒ 세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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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기계론적 세계관에 강한 신뢰를 보낸다. 더 많은 생산과 효율을 통해 시간을 절약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그러나 리프킨에 따르면 계몽시대 이래 개인의 생존 의미와 목표는 오직 생산과 소비로 전락해버렸다. 인간의 필요와 열망, 꿈과 소망은 모두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울타리 안에 갇혀버렸다는 것이다.

또 그는 오히려 기술이 발전할수록 엔트로피는 더욱 늘어났으며,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의 수렵채집은 단순한 노동력으로 원하는 음식을 얻을 수 있었지만, 이제 어떤 음식이 내 식탁 앞에 오기까지 생산과 교환 과정은 점점 복잡해지고, 더 많은 에너지 소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무한동력이 발명되는 시대가 곧 올 것으로 생각하지만, 리프킨에 따르면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에너지는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형태만 변할 뿐이기 때문이다. 열역학 법칙에 따라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므로, 새로운 에너지의 창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믿고 있는 기술에 대한 환상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증기기관의 발명은 인간의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하게 만들었지만,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많은 부품과 더 많은 과정과 에너지가 소비된다. 결국 에너지의 양은 정해져 있고, 오히려 에너지를 더욱 빠른 속도로 소비하고 있으므로 엔트로피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생산성의 개념을 잠시 생각해보라. 우리가 인간 또는 기계의 노동을 통해 에너지나 일을 증가시키는 엔트로피는 감소하고 상품의 가치는 상승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환경의 다른 곳 어딘가에 더욱 큰 무질서가 창조된다고 엔트로피 법칙은 가르친다. 그러므로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것은 에너지 흐름이 커지고 궁극적으로 사회가 비용을 지불해야 할 무질서도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175~176쪽)


이뿐만이 아니다. 가공식품과 편의식품은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을 줄여줄지는 모르지만, 가공식품을 살 돈을 벌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근로시간(인간의 에너지)가 더 크다고 말한다. 농업 역시 기술발전에 따라 대량으로 수확할 수 있게 되었지만, 비료와 농약 등 화학물질 사용으로 토양이 침식되고 피폐해지며 매년 40억 톤의 표토가 강물로 쓸려내려 간다는 것이다.

자동차, 도시 건설, 국방무기, 교육, 보건 등 기계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사회 전반의 모든 것들이 엔트로피를 더욱 빠르게 증가시킨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엔트로피 변화는 환경과 긴밀한 관계를 지닌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생산량은 더욱 늘어나고 겉으로 보이는 풍요를 얻었을지 모르지만, 환경은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엔트로피의 증가로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즉, 더 빠른 속도로 파멸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사회가 기계론적 세계관을 버릴 수 있을까? 하루아침에 현 세계를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엔트로피 증가 속도를 늦추자고 이야기한다. 저엔트로피 시대가 열려야 한다고 말이다. 또 기계론적 세계관이 아닌 엔트로피 세계관이 밑바탕이 된다면 세상은 큰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엔트로피>가 발표된 지 3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의 주장은 유효하다. 가장 큰 핵심은 에너지 변화에 관한 이야기다. <엔트로피>를 읽다 보면 에너지가 얼마나 세계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원유 가격이 상승하면 세계경제가 요동친다. 세계는 에너지 없이는 살 수 없고,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지탱된다.

정치, 사회, 경제 모든 것이 에너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에너지 변화야말로 가장 커다란 사회변혁을 예고한다. 엔트로피 증가 속도를 늦추기 위해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 시대를 넘어 재생 가능한 에너지 시대로 이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늘날 더욱 큰 힘을 얻는다.

물론, 그가 말하는 저엔트로피 시대로의 이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술발전을 거부하고 저엔트로피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또 제러미 리프킨은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물리법칙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이 아니다. 엔트로피 개념을 사회현상에 적용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완벽한 법칙이 될 수 없다.

다만, 모든 자원을 빠른 속도로 소비하고 엄청난 쓰레기를 양산해내고, 과소비와 기나긴 노동시간과 바쁨만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있어 리프킨의 경고는 암울한 미래사회의 모습을 암시한다.

개발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고 화석연료는 피크오일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으며, 석유파동이 일어나면 세계경제는 요동친다. 우리 세계가 얼마나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만일,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가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전환되는 시대가 온다면, 리프킨이 예견한 것처럼 정치, 경제, 사회, 심지어 우리의 삶조차 새로운 가치관 속에서 커다란 변화를 맞이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3차 산업혁명>에서 언급되는 내용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엔트로피가 기계론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이자 저엔트로피 시대의 필요성을 역설한다면, <3차 산업혁명>은 그 방안과 재생 가능한 에너지 시대가 되었을 때 정치, 경제, 사회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를 예견한다. 인간은 에너지 없이는 살 수 없고 에너지 없는 생산과 교환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인간에게 에너지는 절대적이다.

이 두 책을 읽는다면 에너지 흐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수평적이고 탈권위적인 시대가 에너지 변화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소비가 미덕인 현대에 던지는 엔트로피 세계관은 다가올 미래의 생존을 위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기술은 결코 에너지를 창조하지 않는다. 단지 기존의 유용한 에너지를 소비할 뿐이다."


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창희 옮김, 세종연구원(2015)


태그:#엔트로피, #제러미리프킨,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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