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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직접 촬영한 초등학교 교실
▲ 교실 필자가 직접 촬영한 초등학교 교실
ⓒ 대구인권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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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시절은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이었다. 나는 보수적 색채가 강한 동네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내 인권감수성으로는 마주하기에 버거웠던 기억으로 남는다. 대구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들도 그 시대는 그랬을 것이다. 보통의 선생님들은 예쁘고 부잣집 아이들을 예뻐하셨다. 아니면 공부를 아주 특출나게 잘해야 했다. 엄마는 어머니회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한 달에 한 번은 출석을 해야 했다. 아니면, 선생님이 지목하는 학급 환경을 위한 물품을 잘 가지고 와야 해야 했다.

5학년 때, 어느 아이에게 그런 물품 중에 하나로 각 티슈가 배정되었다. 그 아이는 통닭집을 했다. 그래서 000통닭이라고 인쇄된 각 티슈(시중에 판매하는 모0리0 각티슈의 절반만 한)를 가지고 왔다. 선생님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너네 집에 이런거 밖에 없니?' 물었다. 이 친구는 뭐가 문제냐는 듯한 표정으로 '그거밖에 없어요'라고 대답했는데, 선생님한테 뺨을 맞았다. 스승의 날이 되면 선생님 책상에는 쇼핑백들이 가득 쌓였다. 백화점 로고가 찍혀 있지 않거나, 선물이 미약하다고 느껴지면 괜시리 죄송하고 움츠러들었다. 전학을 갔을 때 엄마는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봉투에 돈을 넣어 등교 첫날 전학생인 나와 함께 교무실에 들어갔다. 그랬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6학년이 되어 만난 담임선생님은 이제껏 만난 선생님들과는 다른 세계에서 온 선생님 같았다. 우선, 스승의 날 선물은 편지와 꽃만 주어도 좋다 하셨다. 개별 선물을 금지시키셨다. 아이들은 처음으로 엄마가 사서 들려 보낸 선물이 아니라 용돈을 모아 친구들과 함께 선물을 마련했다. 방학 때는 선생님이 먼저 손글씨로 편지를 써서 보내주셨다. 장애를 가진 친구를 비장애 친구들과 같이 활동하게 하셨다. 체벌하지 않으셨다. 부잣집 아이들, 공부 잘하는 아이가 아닌 재미있는 친구가 반장이 되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랬다. 그 기억들도 구체적이지는 않다. 언뜻 그러셨던 것 같았는데, 그 기억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신기하고 새로운 것이다.

세월이 30년 가까이 지나도록 아직도 스승의 날에 전화를 드린다. 가끔 만나 밥도 같이 먹는다. 선생님과 내가 오랜 세월 마주할 수 있는 이유에는 스승의 날만 되면 텔레비전에서 지겹도록 나오는 감동적인 은사님의 은혜와 추억 레파토리 같은 건 없다. 이 오랜 마주함의 원천은 학창 시절 처음으로 사람답게 대우받았던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학생인권의 이야기가 아직도 논란인 이 시점에 별 게 학생인권인가 싶다.

'학생'이기 이전에 '사람'으로 바라보기

카네이션과 편지 출처:픽사베이 무료이미지
▲ 카네이션 카네이션과 편지 출처:픽사베이 무료이미지
ⓒ 대구인권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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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라는 게 '사람답게 대접받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 누려야 할 것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면 '학생인권'이라면 '학생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제한당하지 않고 인간답게 살 권리, 대접받는 것'일게다. 그런 의미라면 내가 6학년 때 선생님이 해주신 것은 크게 없다. 그냥 사람처럼 제대로 대접해 주셨던 것이 전부였다. 당연한 것을 누려왔기 때문에 특별한 기억이 없었던 것일 수 있다. 사회적 지위, 경제상황, 학력 및 성적, 외모, 나이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았던 6년 중의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학생으로서 인권을 제대로 보장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학생인권과 교권은 저울의 양쪽 날개처럼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가 내려가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선생님들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주체가 학생이나 학부모라고 날을 세우는 것도 안타깝다. 불편하겠지만, 교사는 공직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헌법10조에 근거해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의무를 가진다. 이는 교사와 경찰, 공무원 모두 해당한다. 교사는 직의 특수성 때문에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의무를 진다. 학생의 인권보장을 위해 교사에게 권한을 부여한다. 교권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선생님'이라는 윤리적 도덕적 관습적 개념으로 학생의 인생을 설계하고 그림자도 밟히지 않아야 하는 스승이 아닌, 현대적 직업적 개념으로 접근을 한다 하더라도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법적 주체임에는 변함이 없다. 교사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들도 교사이고, 나 역시 학교 현장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다. 교사들의 노동권 역시 보장돼야 하고 인격권 역시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요구해야할 영역보다 관리자와 교육청, 국가에 적극적으로 요구해야할 부분이다.

학부모가 학교에 와서 행패를 부릴 때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형사상 민사상 책임을 가할 수 있는 환경과 인식이 마련되어야 한다. 아픈데도 관리자의 눈치가 보여서, 담임이라서 출근하는 상황에 처해선 안 된다. 대체교사를 투입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제도와 인식도 마련돼야 한다. 각자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받는 체계와 문화 속에서 타인의 권리에 대한 용인도 커질 것이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다. 제대로 보장받은 교권에 의해 학생인권이 온전히 보장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에게 '인권하는 사람'으로서의 당부는 이것이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 해야 하는 것'이 아닌 '사람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의 각도를 바꿔 보았으면 좋겠다.

어느 날 외계에서 온 듯한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우리를 바라보았던 시선처럼 말이다. 올해도 스승의 날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스승의 날이라 행사고 뭐고 많으실 거 같아 전화만 드려요. 다음에 밥 먹으러 갈게요."
"응 그래. 스승의 날이라고 네 말대로 뭐가 많다. 하지 말라는 것도 많고 하라는 것도 많고. 그냥 우리도 5월 1일 노동절날 묶어서 한 번에 다 하면 되는데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박민경 시민기자는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인권위 대구인권사무소의 인권필진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별별인권이야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태그:#학생인권, #교권, #스승의날, #아동인권,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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