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캡처.

27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캡처. ⓒ SBS


더 이상 그를 '예능인'이라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다. 8년이면 중견 예능인의 위치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에서 그가 보여주는 역할이나 분량을 놓고 보면, 이제 든든한 '에이스'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아시아 프린스'라는 별명도 새삼스럽지 않다. 이미 수 차례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그의 인기가 증명됐기 때문이다.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의 '기린', '배신의 아이콘' 이광수 이야기다.

개인적인 호불호를 묻는다면, '이광수를 좋아한다'고 말할 것이다. 8년 전부터 그랬다. 그는 예능계에서 유일무이한 캐릭터였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겁을 상실한 채 김종국에 맞서고, 지석진과 연대했다가 배신하기도 하는 등 예측불허의 언행으로 웃음을 연출했다. 그의 돌발적인 행동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고정 패널과 게스트를 구분하지 않았다. 예능의 신이 강림했던 '날계란 깨기'는 지금도 즐겨보는 영상이다.

단지 예능에서 보여주는 캐릭터 때문만은 아니다. 배우로서 그의 재능도 높이 평가한다. 지난 6일 종영한 tvN 드라마 <라이브>에서 이광수가 보여준 연기는 박수받아 마땅했다.

'꽃뱀' 단어, 그 뜻을 몰랐을 리 없는데...

 27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캡처.

27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캡처. ⓒ SBS


"너 꽃뱀이지?"
"혜정이는 불여우입니다!"

지난 27일 방송된 <런닝맨>에는 그룹 AOA 멤버 설현과 혜정, 위너 멤버 송민호와 강승윤, 모모랜드 멤버 주이, 우주소녀 멤버 다영이 출연해 '좀비 커플 레이스'라는 콘셉트로 게임에 임했다. 이광수는 커플이 된 혜정을 좀비라고 의심하며 "너 꽃뱀이지?"라고 다그쳤다.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웃음을 위해서였다고 변명하지 말자. '꽃뱀'이라는 말이 '남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몸을 이용해 금품을 갈취하는 여자'로 사용된다는 걸 몰랐을 리 없다.

제작진은 이 발언에 문제 소지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너 사기꾼이지?"라는 자막을 달아 순화시키려 애썼지만, 이광수의 발언은 고스란히 방송을 탔다. 당연하게도 시청자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막말'을 하는 게 그의 콘셉트라고 어줍잖게 옹호하기도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을 '꽃뱀'이라 부르는, 이른바 '미투 꽃뱀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다. 성범죄에 대한 무고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성폭력 무고 비율이 전체 무고 사건의 40%'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데이터를 제시하며 음해를 서슴지 않는다.

초등학생들도 보는 예능, 왜곡된 여성관 심어줄 수 있어

 27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캡처.

27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캡처. ⓒ SBS


꽃뱀 등으로 현상화 되는 가해자 위주의 관점은 겨우 용기를 낸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피해자들을 옥죄는 굉장히 폭력적인 언어다. 특히 <런닝맨>의 경우 초등학생 시청자가 많다는 점에서 더욱 부적절하다. 왜곡된 여성관을 심어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광수의 말을 고스란히 따라하는 초등학생들을 떠올려 보라.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사실 <런닝맨>에서 이광수의 '폭주'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남매 같은 사이 송지효를 발로 걷어 차거나 송지효와 몸싸움을 하는 장면은 흔하다. 배우 이다희에게는 "너 배 한대 맞을래?"라는 폭력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의 폭력적 언어는 곧 행동으로 발현되기도 했는데 배우 김지원의 울대를 때려 눈물을 글썽이게 만든 게 그 대표적인 예다.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김종국에 대항해 짓궂은 장난을 하거나 폭력을 쓰는 장면도 많았지만, 아무래도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힘을 사용하는 모습은 불편함을 자아낸다.

예능인 이광수를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거침없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엔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무엇이든 과하면 문제가 발생하고,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법이다. 이광수가 예능인으로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광수의 선의를 믿기 때문에 직언이 통하리라 기대해 본다.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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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길을 가라. 사람들이 떠들도록 내버려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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