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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왼쪽부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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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롤로코스터를 탄 듯하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남북 간의 움직임이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럽다. 북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직후 터져나온 트럼프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결정, 김정은의 위임을 받은 김계관 담화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5.26 남북정상회담, 트럼프의 북미정상회담 재추진 발언...

불과 3일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북미정상회담의 성공과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에겐 천당-지옥-천당을 오가는 시간들이기도 했다. 본인도 같은 사안으로 성명을 몇 번 썼다 다시 쓰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만큼 정세의 급변이 심했던 터다.

자, 조금 차분히 복기를 해보자. 지난 3월 초 청와대의 대북 특사단이 김정은의 메시지를 가지고 백악관에 가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달하자 트럼프는 즉석에서 북미정상회담을 결정했다. 이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에 합의하자 트럼프는 전폭적인 축복과 응원을 보낸다며 김정은 위원장을 지칭해 개방적이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여기까지는 순탄 그 자체다. 문제는 남북정상회담 이후부터 본격화 된 북미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발생했다. 이미 4월 초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중앙정보부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비밀리에 방북했고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북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한 상태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미 하원 외교위 청문회를 중계하는 ABC 방송 갈무리.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미 하원 외교위 청문회를 중계하는 ABC 방송 갈무리.
ⓒ ABC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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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와 관련한 북미간의 이견이 감지된 것은 5월 2일(현지 시각)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취임사에서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Permanent,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 PVID)'와 여기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North Korea's WMD program)가 포함될 것'이라고 말하면서부터다.

여기서 영구적인의 의미는 다소 불명확했지만 북 비핵화의 내용에 대량살상무기까지 포함된다면 이는 북한이 받을 수 없는 조건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PVID'는 폼페이오 취임사에 등장하기에 앞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언급한 내용이기도 하다(존 볼턴은 지난 4월 29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과 논의할 것이 더 많아졌다"며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뿐 아니라 생물학무기, 화학무기 등도 함께 거론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은 3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결정을 한 이래 처음으로 "미국이 반공화국적 행위를 하고 있다"라면서 외무성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본격적인 불협화음은 5월 16일 북 외무성 제1부상인 김계관 명의의 담화로 터져나왔다. 김계관은 존 볼턴을 콕 집어 지목하며 "선 핵포기 후 보상 방식을 내돌리며 리비아 핵 포기 방식이니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니, 핵 미사일 생화학무기 완전 폐기니 하는 주장들을 쏟아내고 있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어 존 볼턴을 '사이비 우국지사'로 지칭하며 이 같은 이들의 말을 따른다면 조미관계의 전망이 불투명할 것이며 조미수뇌회담의 재고려를 언급했다. 그 직전인 5월 13일(현지 시각) 존 볼턴 보좌관이 북한의 핵무기를 미 테네시주 오크리지로 가져가는 것이 북 비핵화의 방안이라 주장한 것도 한 몫 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계관의 담화로 터져나온 북미간 불협화음

김계관의 담화를 시작으로 북한은 남북 고위급 회담을 취소했으며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던 북미정상회담 준비회의에도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담화를 접한 트럼프 대통령은 당황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참모들에게 이런 상황에서 북미정상회담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퍼붓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 상황을 진정시키려는 행동으로 나아갔다. 김계관 담화가 나온 직후인 5월 17일(현지시각) 트럼프는 나토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리비아 모델은 우리가 북에 대해 생각하는 모델이 전혀 아니다'라며 북 체제를 보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기꺼이 할 것"이라며 "그(김정은)은 매우 강력한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상황에서 다시 불을 지른 것은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었다. 5월 21일(현지시각) 펜스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장난칠 수 있다 생각하면 큰 실수"라며 "만약 김정은이 합의하지 않는다면 리비아 모델이 끝났듯이 끝나고 말 것"이라고 언급했다.

트럼프가 유지하려 했던 북미대화의 판을 엎어버린 셈이다. 여기에 북한은 5월 24일 북 외무성 부상인 최선희 명의의 담화를 통해 앞선 김계관 담화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펜스를 콕 집어 '아둔한 얼뜨기'라 지칭하며 미국과의 대화에 구걸하지 않을 것이라며 조미수뇌회담의 재고려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언급한다.

미 백악관 홈페이지에 트럼프 대통령 명의로 '김정은 위원장에게(Letter to Chairman Kim Jong Un')'라는 제목의 편지가 올라왔다. 회담을 취소하자는 내용이 담겨있다.
▲ 트럼프, 김정은에 보낸 편지 'Letter to Chairman Kim Jong Un' 미 백악관 홈페이지에 트럼프 대통령 명의로 '김정은 위원장에게(Letter to Chairman Kim Jong Un')'라는 제목의 편지가 올라왔다. 회담을 취소하자는 내용이 담겨있다.
ⓒ 미 백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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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을 접한 트럼프는 참모들과 관련 사항을 논의하고 '친애하는 김정은 위원장'으로 시작되는 북미정상회담 취소 서한을 구술하고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받아적어 북에 보낸 후 공개한다. 한국정부에는 불과 몇 분 전에야 그 사실을 알렸고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해 긴밀한 협력을 다짐받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보여지듯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간의 협상이 쉽지 않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알려져 있듯이 미국은 일괄타결과 선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고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를 주장한다. 양측의 주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에서 충돌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그 절충점이 찾는 과정이 이후 과제일 것이다.

보다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존 볼턴이나 마이크 펜스와 같은 미 행정부 내의 수퍼 매파 외에도 미 정가의 많은 부분이 북미정상회담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공화, 민주 양 정당을 구별하지 않고 유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언급한 김계관 담화 후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김정은에게 공짜로 아무것도 주지말라"며 "한미 군사훈련을 계속해 힘을 보여주어야 하며 협상장을 박차고 나올 의향이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당) 역시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북이 회담을 취소하려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라며 "회담 취소 후 제재는 계속될 것이며 군사위협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에드워드 마키 상원의원(민주당)은 "김정은이 미국으로부터 양보를 뽑아내려는 가문의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미끼를 물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노골적으로 북미정상회담에 반대하는 의사를 드러냈다.

척 슈머 의원은 뉴욕주의 연방 상원의원으로 뉴욕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마르코 루비오 의원은 2016년 공화당 경선 당시 트럼프에게 가장 위협적인 상대로 공화당의 차세대 유망주로 거론되던 인물이다. 에드워드 마키 의원은 현재 미 상원 외교위 동아태 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인물로 한반도 문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처럼 미 정가의 굵직한 인사들이 북미정상회담에 부정적이고 반대의 입장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회담 성공을 득 보지 못하는 게 누구인가"...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해관계

미국은 기본적으로 패권국이다. 힘을 통해 자신의 지배력을 확인시킨다. 그리고 그 힘을 구현하는 장은 대결과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다. 냉전시기 미국은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공산권과 맞서며 자신의 힘을 확인시켜 왔다. 냉전이 해체된 후 미국은 그 힘을 확인시킬 새로운 장소들을 찾기 시작했고 그 대상은 제3세계였다.

대표적인 사례는 이라크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아무런 이유도 명분도 없는 전쟁의 시작이었다. 미국이 주장했던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중동에서의 석유자원 확보 등이 주된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숨은 수혜자는 미국의 건설사와 군수업체들이었다. 미 최대 건설사인 벡텔은 이라크 전쟁으로 파괴된 전기와 상하수도 복구사업을 통해 3500만 달러의 이윤을 챙겼으며 미 최대 군수업체 록히드 마틴의 주가는 이라크 전쟁 기간 동안 31달러에서 102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런 미국에게 한반도는 어떤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 유리할까. 지난 10여 년간 세계 제1의 미국 무기 수입국인 한국에 그 무기를 판매하는 미국의 군수업체 입장에서는 한반도가 평화롭기를 바랄까.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츈>은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직후 록히드 마틴 등 미국의 5대 방산업체들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으며 그 규모가 102억 달러(한화 약 11조 원)에 달한다며 "이 회담의 성공으로 득을 보지 못하는 게 누구인가가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했음에도 북한은 놀라운 자제력을 보이며 미국이 문제삼은 갈등의 시발점이 되었던 김계관을 통한 담화에서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미국과 마주앉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으로부터 따뜻하고 생산적인(warm and productive) 성명을 받았고, 그것은 아주 좋은 뉴스"라고 화답했다. 그리고 하루 뒤 그는 6월 12일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의 일정이 바뀌지 않았다며 재추진 의사를 표명했다.

미국의 정치체제에 익숙하지 않은 '이단아'로 불렸던 트럼프가 오히려 지금 상황에선 희망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석진씨는 열린군대를보는시민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군대를 보는 시민의 눈,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주간 뉴스레터 'watch M' 제142호에 실린 칼럼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태그:#북미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 #트럼프 , #군대를 보는 시민의 눈,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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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제언'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Civilian Military Watch)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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