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순례길> 영화 포스터

▲ <영혼의 순례길> 영화 포스터 ⓒ (주)제이브로,(주)콘텐츠게이트


영화 <영혼의 순례길>은 '신들의 땅'이라 불리는 티베트 불교의 성지 라싸로 향하는 티베트의 작은 마을 니이마 순례단의 여정을 그린다. 카메라는 순례단이 1년 동안 2500km에 달하는 거리를 오체투지(불교 신자가 삼보께 올리는 큰절로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었다)를 하며 이동하는 과정을 로드 무비의 형식으로 따라간다.

연출을 맡은 장양 감독은 지아장커, 장위엔, 왕 샤오슈아이, 장밍 등과 함께 중국 6세대(1989년 천안문 사건 이후 1990년대에 활동한 중국 감독들로 도시의 현실과 어두운 구석을 소재로 카메라로 포착한다)에 속한다. 그는 전작 <낙엽귀근>(2007)과 <노인 요양원>(2012)에서 극영화 형식의 로드 무비로 중국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과 풍경을 묘사한 바 있다. <영혼의 순례길>에선 로드 무비와 다큐멘터리 장르를 섞어 중국의 오늘을 이야기한다. < 24 시티>처럼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화 언어를 사용하는 특징도 지닌다.

장양 감독은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오래 전 순례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동기를 이해하고 싶었다"고 작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설명한다. 그는 노인, 젊은이, 임산부와 순례길에서 태어난 4개월 된 아이로 구성된 순례단을 만났다고 한다. 장양 감독은 이들을 만난 경험을 바탕으로 캐릭터들을 구상한 다음 티베트 여러 곳을 돌아다닌 끝에 망캉주의 한 마을에서 생각한 모든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고 과정을 전한다. 마을 사람들은 영화를 어떻게 만드는지 아무것도 몰랐으나 순례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란 생각에 감독의 제안을 기꺼이 수락하고 여정에 오른다.

1년 동안 4천m 길 위에서 동고동락하는 순례

<영혼의 순례길> 영화의 한 장면

▲ <영혼의 순례길> 영화의 한 장면 ⓒ (주)제이브로,(주)콘텐츠게이트


순례단은 청년, 임산부, 어린아이, 노인 등 총 11명으로 구성되었다. 순례에 나선 이유는 다양하다. 니이마는 성지순례가 평생의 꿈이었다. 그의 삼촌 역시 죽기 전에 성지를 다녀오고 싶어 한다. 평생 소를 잡는 일을 했던 소백정은 살생의 죄를 씻고자 한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인부 2명이 죽는 사건을 겪은 사람은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나섰다. 성지순례 도중에 아이를 낳고 싶은 임산부도 있고 엄마를 따라나선 어린 소녀도 보인다.

<영혼의 순례길>은 순례단이 1년 여 동안 4천m 고도의 길 위에서 동고동락하고 순례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2500km를 가는 순례길은 단순한 행진이 아니다. 끊임없이 오체투지를 반복하는 순례단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영적인 어떤 단계에 도달하려는 의지에선 숭고함이 느껴진다.

1년에 걸친 기간 동안 순례단은 크고 작은 사건을 접한다. 트랙터가 망가지는 사건도 일어나고 갑자기 돌이 굴러와 다치기도 한다. 다른 마을 사람들의 환대도 받고 어떤 부부와 만나기도 한다. 아이는 태어나고 노인은 죽는다. 순례의 여정은 인간의 삶을 반추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영적인 단계로 나아가려는 의지, 생명의 탄생과 소멸, 자연의 압도적인 풍경들, 여러 계층 사람들의 삶 등 지나온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11명으로 구성된 순례단은 점차 단단해진다. 장양 감독은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웃으며 행복을 나누어가는 이상적인 공동체의 탄생을 목격한다.

소수 민족 티베트인의 생활 방식, 문화,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영화

<영혼의 순례길> 영화의 한 장면

▲ <영혼의 순례길> 영화의 한 장면 ⓒ (주)제이브로,(주)콘텐츠게이트


만나는 이들이 건네는 환대, 서로 도우려는 마음, 각자를 배려하는 태도 등은 순례단과 감독 그리고 관객 모두를 따뜻하게 하고 성장하게 만든다. 순례 과정에서 만난 어떤 이는 경건한 마음을 강조하며 "순례는 타인을 위한 기도의 길이지. 모두의 안녕과 행복을 먼저 빌고 자신의 소원을 비는 거야"란 가르침을 들려준다.

<영혼의 순례길>은 소수 민족 티베트인의 생활 방식, 문화, 생각을 엿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는 지금도 종교와 소수 민족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검열을 가한다. 물론 이 영화 속엔 중국 정부와 티베트 사이의 정치적 갈등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티베트인의 삶을 통해 바람직한 사회상을 언급하고 중국 정부의 입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장양 감독은 제도의 한계 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작품을 내놓았다. 장양 감독은 "다큐멘터리식으로 대본도, 전문 배우도 없이 촬영된 이 영화는 내게 힘든 도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놀라움과 진정한 기쁨을 안겨주었다"고 연출 소회를 전한다.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영혼의 순례길>을 "중국에서 찍을 수 있는 티베트 영화의 경계에 선 작품"이라 평가하며 장양 감독의 끈기와 용기를 높이 샀다. <영혼의 순례길>은 인간의 가장 힘든 여정이다. 그리고 감독의 가장 힘든 창작을 통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낯설고 어려운 길을 걸었던 순례단과 장양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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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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