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에 따라 특정 국가에서 특정 시기와 결합한 영화 장르를 형성하는 경우가 있다. 1980년대 중후반 홍콩 영화로 대표되는 누아르 장르, 1990년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일본의 멜로-로맨스 영화들처럼 말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이나 프랑스의 누벨바그와 같은 사조들 역시 특정 국가에서 어느 시기에 형성된 분위기가 학문적으로 정립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2010년대 전후로 대만에서는 유사한 내용의 청춘 로맨스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지난 16일 개봉한 대만 영화 <안녕, 나의 소녀>(2018) 역시 마찬가지다.

대만표 청춘 로맨스 영화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은 과거 혹은 첫사랑의 기억을 소재로 아련함과 순수한 감정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는 현재 대만 영화산업의 문제 중 하나인 중견 배우의 기근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경력이 오래되거나 유명한 배우들은 대만 본토를 떠나 중국 시장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밀레니엄 세대로 불리는 현재 젊은 세대들이 한국과 중국, 일본 등 해외 드라마, 영화 등을 접하면서 청춘 로맨스 장르에 반응한다는 점 역시 그 원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로맨스 장르이지만 대만표 멜로 영화는 더 밝고 유쾌한 코미디 요소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은 차이점이다.

대만에서 제작한 청춘 로맨스 영화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소개될 예정이다. 영화 <나의 소녀시대>(2016)의 속편은 이미 제작이 확정된 상태고, 이전의 작품들을 통해 스타가 된 젊은 배우들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멈출 기미가 없어 보인다. 지난 2010년 개봉한 영화 <청설>을 시작으로 그동안 국내에 정식 개봉되어 소개되었던 대만 청춘 로맨스물 여섯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작품들과 함께 현재 대만에서 각광받고 있는 작품들이 어떤 내용인지, 또 어떤 분위기를 갖고 있는지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란다.

01. 청설(Hear Me)
2010년 6월 17일 개봉/116분/전체 관람가
감독: 청펀펀/출연: 펑위옌, 진의함

 영화 '청설' 스틸컷

영화 '청설' 스틸컷 ⓒ 스폰지


아직은 대만 영화가 국내에 익숙하지 않던 시기의 작품이다.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할 언니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던 양양(진의함 분)과 그녀를 사랑하게 된 티엔커(펑위옌 분)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두 주연배우의 청순한 모습이 영화의 내용과 잘 어울려 일상적이지만 특별한 청춘의 아름다움이 잘 표현되었다. 청각장애인의 삶을 연기하기 위해 대부분을 대사를 수화로 연기한 배우의 노력이 더 큰 감동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오기환 감독의 <이별계약>(2013)에서도 주연을 맡은 바 있는 펑위옌이 국내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대만 로맨스 작품으로, 웃음과 감동이 함께 녹아있다.

02.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You are the apple of my eye)
2012년 08월 22일 개봉/107분/15세 관람가
감독: 구파도/출연: 가진동, 천옌시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스틸컷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스틸컷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개봉 당시 대만판 <건축학개론>이라고 홍보한 이 영화는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을 영화 속에 녹여낸 작품이다. 실제로 구파도 감독은 자신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기록한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극중 인물들 역시 모두 실존하는 인물들이라고 한다. 극중 등장하는 고등학교 역시 감독의 모교인 징청 고등학교라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고, 상대방의 사소한 몸짓 하나에도 세상 모든 의미를 부여해 본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 사랑이나 이별을 통해 성장하는 내용이라기보다 그저 그 시절의 추억을 담아낸 청춘 영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적합할 것 같은 작품. 영화는 큰 사랑을 받아 2012년 개봉에 이어 2016년 재개봉까지 했다.

03. 나의 소녀시대(Our times)
2016년 05월 11일 개봉/134분/15세 관람가
감독: 프랭키 첸/출연: 송운화, 왕대륙

 영화 '나의 소녀시대' 스틸컷

영화 '나의 소녀시대' 스틸컷 ⓒ 오드


정식 개봉은 2016년이지만, 2015년에 열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미 입소문을 타고 유명세를 겪은 작품이다. 자국인 대만에서만 4억1천만 대만달러(한화 약 15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당시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 영화. 평범한 소녀 린전신(송운화 분)과 교내 대표 킹카로 군림하던 쉬타이위(왕대륙 분)가 가까워지며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내용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배우들의 열연과 감독의 연출이 인상적이다. 남자 주인공을 맡은 왕대륙은 이 작품을 통해 오랜 조연 생활을 정리하고 일약 스타 반열에 오르게 된다. 최근 현지에서는 이 작품의 속편이 곧 촬영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있었으며, 감독과 왕대륙은 다시 한 번 참여하지만, 여자 주인공은 바뀔 것이라고 한다. 학교 축제에서 물풍선을 던지는 장면이 유명한 작품.

04. 카페 6(At café 6)
2016년 11월 16일 개봉/103분/12세 관람가
감독: 오자운/출연: 동자건, 안탁령

 영화 '카페 6' 스틸컷

영화 '카페 6' 스틸컷 ⓒ 오원


다른 대만 로맨스 작품들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이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첫사랑을 함께 하게 된 관민록(동자건 분)과 심예(안탁령 분)가 대학 진학 후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작품. 연애를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점차 벌어지는 간극을 어쩌지 못하고, 회복하고자 노력을 하면 할수록 더욱 가혹해지는 현실이 영화 속에 담겨있다. 실화는 아니지만, 감독 자신이 직접 쓴 최고 인기 소설을 직접 각색하여 연출한 작품이다. 상대적으로 두 주연 배우의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첫사랑의 기억이라고 해서 단순히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을 제대로 잘 표현해내고 있다.

05.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Café. Waiting. Love)
2017년 05월 11일 개봉/119분/15세 관람가
감독: 강금림/출연: 송운화, 브루스

 영화 '카페, 한사람을 기다리다' 스틸컷

영화 '카페, 한사람을 기다리다' 스틸컷 ⓒ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연출한 구파도 감독의 또다른 베스트셀러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타이틀은 어쩐지 순애보적인 구석이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치하고 과장된 설정으로 가득하다. 하나의 카페를 중심으로 그 공간과 연결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이 소개되다가, 후반부에서는 그 이야기들이 하나로 묶이는 형식. 형식적으로도 그렇고, 시종일관 유치한 설정들에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의외로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되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에는 기다린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06. 안녕, 나의 소녀(Take me to the moon)
2018년 05월 16일 개봉/104분/12세 관람가
감독: 사준의/출연: 류이호, 송운화

 영화 '안녕, 나의 소녀' 스틸컷

영화 '안녕, 나의 소녀' 스틸컷 ⓒ 오드


기존의 로맨스 장르에 타임슬립 요소를 집어넣어 첫사랑의 실패에 대한 여운을 그저 남기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적극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주는 영화로 시간이 지나도 대만 로맨스물이 추구하는 첫사랑과 순수함에 대한 코드는 여전히 그대로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정샹(류이호 분)이 오랜 짝사랑 상대인 은페이(송운화 분)의 사랑을 다시 한 번 얻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 <나의 소녀시대>로 큰 사랑을 받았던 송운화가 다시 한번 여주인공을 맡았고, 아시아 청춘 스타로 거듭나고 있는 류이호가 그 상대역을 맡았다. 타임슬립을 성공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제작진은 영화의 배경인 1997년을 재현해 내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았다고.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 뿐만 아니라,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의 에피소드를 통해서는 중고등학교 시절의 우정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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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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