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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경비원의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한 경비원의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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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1946년생 박인규' 선생님인 것을 오늘 드디어 알게 되었다. 아침 출근길과 주말 재활용 쓰레기 내러 나갈 때 종종 도움을 주시는 우리 아파트 경비 아저씨 성함을 이사 온 지 2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키도 훤칠하시고 뵐 때마다 표정이 항상 밝으신 데다가 마주치면 인사도 활기차게 하셔서 실제보다 많이 젊어 보이신다. 

아저씨는 내가 출근을 위해 차를 빼러 나가면 부탁도 하기 전에 어디선가 부리나케 오셔서는 막아선 차를 밀어주시고 주차된 차 사이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게 '오라이'와 '스톱'을 해주신다. 어디 계신가 찾기 전에 먼저 달려와 도움을 주시는 때가 많아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는 웃으시며 "어차피 해드려야 할 건데 나갈 거 같으면 미리 가서 해주면 주민분들도 좋아하시고 "아저씨 고마워요" 하면 저희도 좋고 그렇지요"라고 하신다.

7남매의 다섯째인 아저씨는 젊었을 때 사업을 하고 싶으셨다. 월남전에 2년간 참전해 모은 돈을 귀국 후 막내 동생 해양고등학교 다니도록 뒷바라지도 좀 해주고, 나머지 가지고 사업을 했는데 운이 없어서인지 경험 부족인지 잘 되지 않았다. 잡일도 좀 하셨는데 봉급쟁이 하는 게 낫겠다 싶으셨다.

1984년 12월에 한 주택관리 업체에 취직하셔서 잠실의 한 아파트에서 임시로 한두 달만 해보자 하고 시작한 경비 일을 지금까지 하고 계신다. 처음엔 월급도 적고 해서 다른 생각도 많았는데 사업하다 또 실패하면 더 힘들 거라며 당신도 좀 벌어서 보탤 테니 안정적인 직업을 갖자고 하시는 사모님 말씀에 따르기로 하셨다.

잠실에 14년, 하남시에 관리과장으로 2년간 계시다가 우리 아파트로 오신 것이 2001년이다. 우리 아파트에 오신 이후 관리비 때문에 구조 조정하는 과정에서 경비원들을 많이 줄였는데, 주택관리 업체에서는 사람 내보내기가 힘드니까 용역회사에 계약을 두어 번인가 줘서 인원수를 줄였다고 한다.

용역회사에서 맡으면 계약 기간도 2~3년 대신 1~2년으로 짧아지고, 봉급도 적어진다. 다행히 인정 많은 아파트 동대표 총무가 이야기를 듣고, 고생은 경비원들이 하는데 용역회사 끼면 돈도 조금 주고 소속감도 떨어지니까 그러지 말고 주택관리 업체에서 직접 관리하라고 해서 정상으로 돌아온 지가 한 4~5년 되었다고 하신다.

덕분에 최저임금제도 적용돼서 매년 급여가 조금씩 늘어난단다. 생활하시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말씀에, '최저임금제는 누구나 다 적용받고 있는 거 아닌가요?' 하고 여쭈어 보았다.

"1년이 되면 퇴직금을 줘야 하니까 이익금을 남기기 위해서 11개월 되면 '그만두시오'하는 용역회사 업자들도 있었어요. 일은 우리가 다 하고 그 사람들은 하는 것도 없이 한 달에 한 번씩 와서 둘러보고 그러면 끝인데, 자기네가 관리해준다는 명목으로 한사람 당 얼마씩 다 빼가지요. 그러니까 덜 받는 것이지. 용역회사에서 하면 덜 받아. 봉급이 적어지지."

용역회사가 껴서 지금도 최저임금제 적용을 받지 못하는 이웃 아파트 경비원들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이신다. 듣고 보니 아파트 대표들이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번다'는 식이 되지 않도록 용역회사가 중간에 들어오면 어떤 상황이 되는지 잘 알아보고 경비 계약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우 없는 사람들, 그럴 때는 참 힘들죠"

아저씨는 하루 근무하고 하루 쉬시는데 새벽 5시 반에서 6시 사이에 교대를 하기 때문에 중계동 댁에서 새벽 4시쯤 일어나 버스 타고 오신다. 지하주차장이 없어 2중 주차를 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아파트에서 아침 출근 시간은 경비 아저씨가 가장 바쁘고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시간이다.

아파트 우리 동 100세대가 넘는 사람들을 모두 큰 문제 없이 제시간에 출근시키려면 아저씨는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계속해서 살펴보고 대응해야 한다. 주차관리뿐 아니라 필요시 청소와 제초 작업도 하고, 택배와 우편물 관리, 재활용 쓰레기 관리, 시장 봐오는 분들 무거운 짐도 들어드리는 등등 쾌적하고 안전한 아파트 환경 조성을 위해 애를 쓰신다.

혼자서 하시니까 여기 왔다 저기 갔다 일을 하다 보면 잠깐 자리를 비울 때가 있다. 가끔씩, 급히 찾는 분이나 빨리 나가야 하는데 주차난 때문에 차를 못 밀고 나가게 된 분들이 어디 갔었느냐, 자리를 왜 비웠느냐며 좀 서운한 말을 할 때도 있단다. 그럴 때는 스트레스가 쌓이고 긴장을 하게 된다.

경비일 하시면서 곤란하셨던 일을 여쭈어봤다.

"솔직히 경우 없는 말을 하는 분들이 한두 분씩 가끔가다 있어요. 우리가 분명히 그렇게 안 했는데도 했다고 막 우기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럴 때는 참 심적으로 힘들죠. 상대방하고 이야기해서 해결하면 좋은데 해결이 잘 안 되면 서로가 갈등이 생길 수 있거든요."

밤 시간, 경비실에 작은 침대가 있지만 뭔 소리라도 나면 퍼뜩 일어나고 계속 신경을 써야 하니까 쪽잠조차 푹 주무실 수가 없다. 근무한 다음 날 새벽에 교대하고 집에 가시면 몸이 축 늘어져 10~12시간씩 주무셔야 한다는 말씀이 수긍이 간다.

아저씨는 "언젠가 경비실 새로 지으면서 동대표님들께서 에어컨을 마련해 주라고 해서 잘 쓰고 있죠. 그건 복지로 참 잘해 주신 거 같아요"라고 고마워하신다. 복지를 말씀하시니 마음이 민망하였다. 최근 법이 바뀌며 새로 생겼다는 휴게실은 지하실에 꾸려졌는데 지하 특유의 매캐한 곰팡이 냄새가 굉장히 심하단다. 게다가, 아파트 1개 동 당 두 분의 경비 아저씨가 24시간 교대하시는 상황이라, 근무하시는 날은 1개 동 100여 세대의 일을 혼자서 모두 감당하셔야 하니 여유도 없으신 탓에 휴게실이 있어도 거의 사용을 못하시는 것 같다. 

그래도 아저씨는 우리 아파트 사람들이 인정이 많고 대화를 하니까 일하기도 좋고 괜찮은 편이라고 하신다. 서로 말도 안 하고 다니거나 작은 걸 꼬치꼬치 따지고 그러면 힘든데, 그러지 않고 이야기하면 많이 이해를 해 주시니까 오래 근무할 할 수 있었던 거라고 하신다.

우리 아파트 경비 분들은 모두 10년이 넘었다고 하시니 '내가 좋은 이웃들과 함께 살고 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사 오자마자 마주치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 먼저 인사를 건네셔서 편한 기분이 들었고 새 이웃에 빨리 정을 붙일 수 있어 좋았던 기억이 있다.

"고맙다, 잘했다 이렇게 해주면 저희도 용기가 납니다"

혹시 아파트 주민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여쭈어보았다.

"'주민들이 지나친 요구는 안 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인 일을 시키면 우리가 입장이 좀 곤란하잖아요. 금방 하는 거 같으면 상관이 없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고 하다 보면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다른 주민들도 있고... 시간이 걸리는 개인적인 일은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하고 좀 지나친 것은 삼갔으면 좋겠다고 저희는 생각을 하죠. 그리고 우리가 잘 해주면 주민들도 칭찬을 안 아꼈으면 좋겠어요. 고맙다. 잘했다. 이렇게 해주면 저희들도 또 용기가 좀 나고요."

참으로 소박한 부탁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옛말처럼 말 한마디가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다. 우리 아파트 모든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항상 신경 쓰고 달려와 도와주시는 아저씨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고맙다는 치하의 말 한마디 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찌 이것이 꼭 경비 아저씨께만 해당하는 말이겠는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미∙인∙대∙칭∙'을 먼저 실천해 보면 어떨까? 미소 짓고 인사하고 대화하고 칭찬하기 말이다.


태그:#경비아저씨, #인사, #용역회사, #최저임금,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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