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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여의도 국회앞에서 ‘최저임금을 실질적으로 삭감하는 산입범위 확대 개악’을 저지하겠다며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국회 경내에 진입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최저임금 개악 저지' 민주노총 국회 진입 시위 21일 오후 여의도 국회앞에서 ‘최저임금을 실질적으로 삭감하는 산입범위 확대 개악’을 저지하겠다며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국회 경내에 진입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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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도 뜯기고 임금도 뜯겼다

지난밤,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평화가 뜯기고, 국회의원들에 의해 임금이 뜯겼다. 대한민국 국민이야말로 극한 직업이 아닐까. 특히 노동자 그 중에서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더 살기 힘들어졌다. 이번에 통과된 최저임금법 개정안 때문이다. 일단 숫자가 나와서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그래도 할 수 없다. 한 번은 꼭 봐야 한다.

상여금은 최저임금의 25%, 복리후생비는 최저임금의 7%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 최저임금에 산입하기로 되어있다. 너무 복잡하다. 간단히 설명해보자. 올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39만3442원(월 최저임금 157만3770원의 25%)을 넘는 상여금을 받는 사람들과, 11만 163원(월 최저임금의 7%)을 넘는 식비를 받는 사람들의 월급이 삭감될 수 있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을가? 국회의원들의 설명에 따르면 연소득 2500만 원 미만 노동자들의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기준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러나 애초 최저임금 산입문제의 발단이었던 영세 상인들의 최저임금 부담 줄이기와 복잡한 임금체계를 바로 잡는다는 명분은 사라졌다. 영세상인들은 원래 노동자에게 식대나 상여금을 거의 주지 않는데, 25%와 7%의 복잡한 숫자와 계산은 임금체계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연봉 2500만 원 미만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삭감되는 게 없는 것 같아 당장은 안심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최저임금이 올라도 국회는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정할 수 있다는 예를 보여줬다. 심지어 임금의 원칙보다는 정치적 이해에 따라 조정한다. 숙식비만 포함될 필요가 어디 있겠나. 교통비나 명절 상여금은 이번 일을 계기로 포함될 수 있고, 주휴수당도 포함하자는 논의로 확대될 수 있다. 최저임금 1060원 올리자마자 임금 삭감에 나선 것이다. 

복리후생비가 선심인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번 결정 근저에 깔려 있는 임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복리후생비나 상여금을 사장의 선심에 따른 보너스라고 생각하는 거다. 굳이 주지 않아도 되는데, 회사가 성의를 보여줬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숙박비와 밥값을 주는 것은 정말로 사장의 순수한 선심일까?

노동자가 일을 하다가 배가 고픈 것은 당연하다. 그런 노동자가 밥을 맛있게 먹고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생기면 누구에게 유리할까? 바로 사장님과 회사에 유리하다. 더 효율적으로 일할 것이기 때문이다. 24시간 주유소에는 숙박을 해결하며 일을 하는 노동자가 종종 있는데, 이들이 주유소에서 잠을 자면 누구에게 유리할까? 언제든지 손님을 응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회사에 유리하다.

사실 주휴수당의 의미도 이와 같다. 쉬는 날 노동자가 영화도 보고, 더우면 에어컨도 켜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심신의 스트레스를 풀면 다시 일을 할 에너지가 생긴다. 그런데 쉬는데 필요한 돈이 없어서 더위에 지치고, 스트레스만 더 쌓여 출근하면 업무효율이 떨어진다. 그래서 주휴수당은 한 주 만근을 하고 다음 주에도 출근할 때만 지급한다. 사실은 노동자가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인 것이다.

사장님들은 이것을 마치, 노동자가 일을 열심히 해야만 받을 수 있는 보상처럼 보이기 위해서 김장수당, 명절수당, 상여금, 인센티브, 복리후생비 등 각종 이름을 붙여 임금체계를 복잡하게 만들어 온 것이다. 국회의 이번 결정으로 복리후생비나 상여금은 언제든지 깎을 수 있는 선심성 임금이 됐다.

불법과 편법이 판치게 될 알바 노동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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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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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최저임금법 개정 효과는 아마도 불법과 편법의 아수라장인 알바노동시장과 이주노동자들에게 더 크게 미칠 것이다.

"오늘 주휴수당 미지급건 문제로 노동청 소속 조정관님과 얘기를 하면서 진행하였는데 사장이 말하길, 기본은 5580원인데 주휴수당 포함해서 6000원 준거다, 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주휴수당 포함해서 6000원을 주겠다라고 말한 걸 들은 적이 없습니다. 애초에 고용계약서도 안썼는데 무슨 말입니까 저게? 그리고 고용계약서에도 써있는걸 보니까 주휴수당은 지급한 식대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지급한다, 라고 적혀있기도 했고, 또한 저는 식대를 잘 쓰지도 않아서 일평균 1500원 정도입니다. 그리고 정상임금보다 12만 원을 과입금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조정관이 말하길 못 받을 가능성이 크다, 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 경우 저는 받을 수가 없는 건가요?"
(아이디: aym3**** 2016.1. 20)

알바상담소에서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에 올라온 상담 사례다. 최저임금법이 통과되기 전에도 이미 알바노동시장에서는 사장님들이 최저임금에 각종 수당을 산입하고 있었다. 불법이지만 소용없다. 사장님들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소고기를 사주거나 명절 선물을 사준 것, 남은 빵 가져 간 것도 체불임금에 포함시키려고 한다. 고시원 총무 알바의 경우는 방을 하나 주고 고시원을 관리하게 하는데, 방값을 최저임금에서 뺀다. 그러면서 방도 주고 쉬엄쉬엄 일하게 했는데 무슨 최저임금이냐고 역정을 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공장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열악한 환경에서 주거하면서도 과도한 숙박비를 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와중에 식대와 숙박비가 최저임금에 산입됐다는 소식이 알려졌으니 7%의 조건 조항보다는 식대 포함이라는 말이 통용될 가능성이 높다. 꼼수도 판칠 것이다. 주로 현물로 식대를 주는 요식업에서 현금 지급으로 식대를 전환하고 자기 가게에서 구매해서 먹으라고 할 수 있다. 실제 2014년, 중국집 프랜차이즈에서 알바를 하던 알바노동자가 근로계약서를 달라고 했다가 곤란한 상황을 당했다. 늘 점심을 함께 먹던 사장이 갑자기 점심값을 받아야겠다고 한 것이다. 사장은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알바노동자는 웃으며 짜장면을 먹을 수 없었다. 결국 노동자는 해고됐다.

이런 류의 노동법들은 많다. 가령 수습기간의 경우 1년 이상의 근로계약을 맺을 경우에 한해 최저임금의 90%로 최대 3개월까지 지급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람들은 보통 수습기간 적용 가능만 기억한다. 이게 법이 바뀌었다. 올해 3월 20일부터 편의점, 식당 같은 비숙련 업무의 경우에는 수습기간을 적용해 최저임금을 깎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며칠 전 만난 편의점 알바의 경우 수습기간 적용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만약 이 모든 법을 알고 있는 알바노동자들이 사장을 노동청에 신고한다 하더라도 간단하게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소액사건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위의 사례처럼 근로감독관들이 합의처리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근로감독관의 태도에 실망하고 포기하는 알바 노동자들이 발생하거나 원래 받아야 하는 임금의 50% 내지 30%로 선에서 합의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사장 입장에서는 불법을 저지르고도 임금 할인을 받는 셈이다. 근로감독관의 수도 적어서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근로계약서도 제대로 쓰지 않는 한국의 노동시장을 방치해두고, 이런 식으로 각종 예외조항만 늘리는 법 개정은 노무사들과 변호사들을 고용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할게 뻔하다. 국회의원들은 지금 '참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 믿는 평범한 사람들의 임금을 손쉽게 빼앗아 가려고 한다.

다행히 아직 본회의가 남아있다. 도둑 중에 가장 나쁜 도둑이 국민들의 쌀을 훔쳐가는 정치인 아닐까. 지난 겨울 우리가 촛불을 통해 빼앗긴 민주주의를 찾았다면 이제 빼앗긴 밥그릇을 찾으러 국회로 모여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박정훈 기자는 현직 맥도날드 라이더입니다.



태그:#최저임금, #숙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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