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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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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를 향한 순풍에 돛을 단 듯한 순항은 여기까지였던 걸까? 지난 16일부터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담화문을 발표하며 '북미회담 재고려'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17일에는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등판했다. 북한의 관영 매체인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 형식에서 이대로 가면, 문재인 정부와 다시 만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이 한껏 불만을 드러내자 미국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17일 (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비핵화 방식인 '리비아 모델'을 북한에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반도 비핵화 분위기가 시시각각 변하며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와의 인터뷰도 요동쳤다. 지난 11일 북한대학원대에서 구 교수를 만난 이후 16일, 18일 추가로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구 교수는 대표적인 북한 전문가다. 특히 한반도 평화체제는 그가 오랫동안 연구한 분야다. 구 교수는 '소련의 사회주의 건설사 연구'와 '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적 공공정책'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치학에서 시작해 비교·국제정치학, 북한 지역 연구까지. 그의 연구는 횡단을 거듭했다.

그는 최근 북한이 한미를 향해 드러낸 불만에 "핵 전략자산문제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17일 미국이 언급한 '트럼프식 비핵화'에도 "핵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금지, 한반도 비핵화 군사 조치 교환이 포함됐을 것"이라고 짚었다.

아래는 북한 비핵화 방안 등을 주제로 구 교수와 나눈 문답 전문이다.

"폼페이오 두 번째 방북 때 일정 수준 합의했을 것"

- 17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남북고위급회담 중단을 언급하며, 이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현 정권과 다시 만나기 어렵다는 식으로 말했다.
"사실 판문점 선언은 추상적인 이야기였다. 단계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부분을 살펴보면, 먼저 한미합동군사훈련 문제가 있다. 핵 관련 전략자산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스텔스 전투기인 F-22 랩터를 왜 들여온 거냐. 그거에 대한 북한 전반의 반발이 있어 보인다. 명시적으로 밝힌 건 아니지만 그 문제가 가장 커 보인다. 한미정상회담 간에 조율해야 할 부분은 여전히 남아있다."

-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는 트럼프식 모델로 간다고 하는데.
"최근 북한이 보인 반발에 미국이 반응을 보인 거다. 폼페이오가 두 번째 방북했을 때 북의 비핵화에 대해 합의를 했을 텐데, 자꾸 미국이 합의에 벗어난 이야기를 하며 의제를 확대하려고 하니까 북한이 반발한 거지. 북미 간에 합의된 것은 핵 관련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금지, 북한에서 대륙간 탄도미사일 뺀다, 정도지 않을까 싶은데. 한반도 비핵화 군사 조치 교환하는 것 정도는 합의를 본 거다. 이걸 두고 트럼프식 비핵화라고 표현한 거 같다."

"2000년, 6.15 때의 북을 떠올려보라"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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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1, 2차 방북해서 비핵화-평화체제(북 체제보장)를 큰 틀에서 합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떻게 보나.
"날짜 순서를 볼 필요가 있다. 김정은이 3월 25일부터 28일까지 중국에 갔고, 29일에 남북이 남북정상회담의 시간, 장소를 합의했다. 그리고 폼페이오 당시 내정자가 3월 31일에서 4월 1일까지 방북했다. 우리는 1일에 남측 예술단이 평양에 갔고.

북의 행보를 거시적으로 보면,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당시 5월에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남북대화가 있었고, 그해 10월에는 김정일 특사가 미국을 가서 '공동 코뮈니케'를 발표했다. (북미 공동 코뮈니케 : 당시 북미는 적대관계 종식을 선언하고, 평화보장체계를 수립, 경제협조와 교류를 발전시키기는 등의 합의 - 기자 주)

지금도 그때와 비슷하다. 이 진행 과정에 비핵화 평화체제와 관련, 1차 회의는 있지 않았을까. 한 한 달간은 북한 내부에서 노선 전체를 전환하는 결정을 만드는 시간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4월 20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 쏟겠다는 이야기를 한 거 아닐까. 이후 김정은이 또 중국을 갔고 폼페이오가 방북했다. 이 시나리오가 반복된 건 북미정상회담 의제 때문이겠지."

- 두 번째로 김정은 위워장과 시진핑 주석이 만난 곳은 다롄이다. 이곳에서 도보다리 산책처럼 해변을 거닐기도 했고.
"다롄은 의미있는 장소다. 김일성, 김정일 모두 다롄을 방문한 적 있다. 또, 확대해석하기는 어렵지만, 중국이 자체 제작한 첫 항공모함이 있는 곳이다. 항공모함은 미국의 해상 패권에 도전하는 건데... 어쩌면 북중 간의 군사 회복이 되거나 거래 관계가 확실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사드 배치 논란에서 보듯이 중국을 배제하기는 참 어렵다. 한미동맹하고도 연관되어 있다. 만약 북한이 한미동맹을 인정한다면, 한미동맹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질문이 당연히 나오지 않을까. 한미 상호방위 조약에서는 적이 누군지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북을 적으로 설정하고 위험에 대응하는 게 한미대응이잖나. 그런데 남북정상회담에서 서로 적이 아니라고 일차적 합의했고, 북미 간의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수교까지 한다면 불가피하게 한미동맹의 존재 이유를 물어봐야 하는 셈이다. 한반도 비핵화 한미동맹 지속, 한반도 평화체제는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

"F-22 전투기 동원, 불만있을 것"

- 북한 김계관 제1부상이 16일 '북미정상회담 재고려'를 언급한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게 참... 개인적으로 북미 사이에 한반도의 핵 자산 전개를 금지하는 것을 두고 이야기를 했을 거 같은데... 최첨단 스텔스기인 F-22 전투기가 이번에 8대나 동원된 것에 일차적 반발이 있는 거 같다. 그리고 이번에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저격하지 않았나. 북미정상회담 의제가 확대되는 것에 불만을 드러낸 거다. 존 볼턴이 북미회담에서 생화학무기 폐기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고, 내 기억으로는 인권문제는 얘기 안 했다. 다만 억류자 문제를 얘기했지. 거기에 반발한 거 아닐까. 그게 남북대화까지 불똥이 튄 거로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남북대화 자체가 한미군사합동훈련 연기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출발이 그리고 북한은 핵미사일까지 중단했다. 그런데 우리는 한반도에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폭격기까지 들여오는 거 같으니까. 암묵적으로 합의했다고 생각했는데 북한이 보기에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나오니까 반발하는 거 같다."

-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포르로 정해진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
"개인적으로는 몽골의 울란바토르를 밀었는데... (웃음) 싱가포르는 장점이 뚜렷한 나라다. 일단 아세안이다. (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동남아시아 국가연합으로 회원국은 총 10개국에 달한다. 북한은 그동안 아세안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 기자 주) 아세안 국가 역시 북한에 호의적이었다. 아세안 중 하나인 말레이시아와는 김정남 피살사건 전까지만 해도 관계 좋았다. 인도네시아 역시 김일성이 북한에서 제일 멀리 간 국가다. 싱가포르를 포함해 아세안 전체가 북과 관계가 좋다. 게다가 북한사람은 싱가포르에 비자없이 입국할 수도 있다.

싱가포르와 북의 경제 관계가 재밌다. 북한의 7번째 교역 대상국이 싱가포르다. 외교 관계를 맺은 지도 오래됐고. 지난해 10월로 기억하는데, 싱가포르 총리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서 한 이야기도 있다. 당시 총리가 '북한에 압력을 가하고 고립시키는 것 좋은데, 쉽고 빠른 결론을 얻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압력도 필요하지만, 대화도 필요하다'라는 식으로 얘기했을 거다. 그러니 북은 자기 쪽에 우호적인 나라라고 생각할 수밖에. 어차피 평양이나 워싱턴 아니라 제3국이라면, 싱가포르는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미국으로서도 싱가포르는 나쁘지 않다. 싱가포르는 무엇보다 인프라가 갖춰졌고. 북한과 미국 모두에게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북, 종잣돈 필요할 것"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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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미 정상이 G7 전에 만났으면 자연스레 G7에서 회담 결과를 이야기할 수도 있을 텐데.
"경제적 측면에서 보자면, 북한은 비핵화를 약속하고 대가로 얻고자 하는 것 중 하나가 경제제재 해제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국제 경제활동을 원한다. 중국이 개혁개방한 역사를 정리해보면, 1978년 12월에 중국 공산당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말 자체가 들어갔다기보다는 맥락상 보자면 그렇다는 뜻이다. 그리고 북한은 4월 20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경제 건설 총력 집중'을 말했다. 개혁개방이라는 말은 없었지만, 중국 1978년 상황과 비슷한 일종의 개혁개방 선언이다.

남북정상회담 일주일 전에 북한에서는 내부적으로 이를 결정하고 온 거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다음도 있다. 중국은 1979년 1월에 미국과 수교했다. 내부적으로 경제에 모든 힘을 쏟는다는 결정을 하고 중국과 미국이 수교한 거지. 그리고 1980년에 국제통화기금(아래 IMF)에 가입했다. 이는 중국이 경제개방에 나아가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

- 북한도 중국의 과정을 그대로 밟을까.
"중국의 과정을 북한에 대입해 볼 수 있다. 경제에 모든 힘을 쏟겠다고 하고, 미국과 수교가 필요하다. 그리고 IMF에 가입해야 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기도 얘기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반도 네트워크가 이루어지려면 북한의 IMF 가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IMF나 세계은행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고. 중국도 지원을 받았고 이게 일종의 종잣돈 역할을 했다.

결국, 북한의 경제개발 핵심은 외화유치다. 미국 협력이 필수적이고. 그런데 미국의 국내법이 사실상 북한의 정상적 경제활동을 막는 것도 있다. 미국의 의회 협력이 필요한 지점이다. 행정명령이야 대통령이 할 수 있지만, 트럼프의 결단만으로 안 되는 것도 있다.

미국 주류 사회를 설득해야 하는 게 중요하다. 여전히 북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고 있는 미국의 주류가 있잖나.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공화당, 민주당 사람들과 다른 행보를 보이지만, 지금까지 미국의 대북 정책과정에 참여한 미국 내 전문가 중에는 북한의 의지와 행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꽤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가 타결된다 해도 미국의 의회를 통과해야 하는 법률들이 있다. 협상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우리의 외교적 대책도 절실하다. 모든 게 지금부터다."

"핵과학기술자, 비핵화 쟁점"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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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CVID와 북의 '단계적·동시적 조치' 사이에 접점을 찾는 것이 북미정상회담의 핵심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핵기술자들 '처리'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이게 중요한 문제라고 보나.
"핵 과학기술자 재배치 문제가 있을 거다. 글로벌 파트너십이라고 핵 과학기술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 우크라이나 때도 핵·미사일 관련 인력들을 재훈련하고 재취업을 보장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해외 이주를 지원하기도 했고. 북미 사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 얘기가 나오게 될 거다. 핵에너지를 어떻게 평화적으로 이용하는지, 원자력 같은 건 어떻게 되는지. 비핵화 과정에서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이 PVID(Permanent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얘기하다 다시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말했다. 의제 조정을 일정 수준에서 한 거 아니냐는 말도 있는데, 사실 P(Permanent)와 I(Ireeversible)는 같다. 영원히 가게 한다는 건 불가역적이라는 거니까. 두 단어는 논리적으로 모순이기도 하다."

- 북미 정상회담 전까지 남북관계에서 준비하거나 꾸준히 이어가야 할 부분은 뭐라고 생각하나.
"4.27 합의문의 1항, 2항을 새겨 봐야 한다. 합의문 순서를 생각해보자. 정상회담 전날까지 우리가 강조했던 걸 순서대로 보면, ▲ 한반도 비핵화 ▲ 항구적 평화 정착 ▲ 남북관계 발전이다. 하지만 합의문 순서는 ▲ 남북관계 ▲ 평화구축 ▲ 비핵화로 돼 있다. 우리가 강조했던 것과 순서가 달라진 거다. 어떤 텍스트가 만들어지면, 해석해야 하지 않나. 이 부분은 정부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왜 순서가 바뀌었을까. (순서에 영향을 미치는 데) 북한의 요구가 많았을까 남한의 요구가 많았을까. 남북관계에 있어 일종의 자율성을 설정한 느낌이 든다. 남북은 주변국의 영향을 받을 수 있잖나. 최악의 경우 북미관계가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그래서 남북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것부터 배치하지 않았을까 싶다. 남북이 남북관계, 평화구축 같은 조치를 먼저 실행해야 한다. 북미 정상회담 전에 이 조치를 취한다면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 같다."

- 판문점 선언대로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하려면 속도를 좀 내야할 것 같은데.
"문 대통령이 중국의 리커창 총리를 만나기도 했는데,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는 한중정상회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판문점 선언의 3항을 보면, 종전선언과 평화체제를 언급하는 문장에 쉼표가 없다. 정부에서는 종전선언만 올해 안에 하겠다는 뜻이라고 했지만, 텍스트가 읽히는 방식대로 보자면 그렇게 볼 수 없다.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체제까지 가자는 걸로 해석되잖나. 그 주체는 남·북·미 일수도 있고 남·북·미·중일 수도 있다.

텍스트에 드러나 있는 쟁점이 있는 거다. 그럼 그 주체는 누굴까, 종전선언의 당사자는 누구냐. (구 교수는 펜을 집어 들고 설명을 이어갔다) 종전선언도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3국, 4국 중 어떤 선택이 더 유용할까. 다만 평화협정은 남·북·미·중으로 가는 거로 어느 정도 얘기가 되는 거 같다. 러시아는 당사자 아니라고 했고. 남·북·미 삼국의 종전선언 얘기도 나오지만... 결국 북미 정상회담 결과와 북중이 이를 어떻게 얘기하는지가 관건이다."


태그:#김정은, #폼페이오, #트럼프, #시진핑, #구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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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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