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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8일은 유성기업 노동자들에게는 창조컨설팅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따라 공격적 직장폐쇄가 시작된 노동탄압을 상징하는 날이다. 2012년 청문회를 통해 창조컨설팅에 의한 노조파괴 전모가 드러나고, 이후 창조컨설팅의 노무법인 설립인가는 취소됐다. 2017년 12월 22일, 기업 사주 최초로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이 노조파괴 혐의가 인정되어 1년 2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같은 시기 노동자 3명이 출퇴근길 쓰러지며, 여전히 공장 내 노조파괴가 작동하고 있음을 알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노동자 손해배상청구를 한 사업장도 유성기업이다.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끝나지 않았다는 금속노조 유성기업 지회의 증언을 정리한다. - 기자말 

금속노조 유성기업아산지회 도성대 지회장
 금속노조 유성기업아산지회 도성대 지회장
ⓒ 윤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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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에서 서울 서초동에 있는 법원으로 오가는 길, 도성대씨에게 이 길은 손바닥보다 훤하다. 지난 8년을 뻔질나게 드나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가 법원을 드나드는 이유는 다양하다. 업무방해, 도로교통법 위반, 집회시위법 위반, 모욕, 명예훼손, 그리고 손해배상청구까지. 그렇다고 도성대 씨가 마냥 피고였던 것만은 아니다.

임금체불, 부당해고, 어용노조 설립무효, 노조파괴 등 부당노동행위, 산재 등등. 때로는 도씨가 원고였다. 도씨가 피고든 원고든 이 수많은 소송의 상대는 도씨가 다니는 부품업체의 유성기업 경영진과 관리직이며, 이제는 부품을 납품하는 원청인 현대자동차다. 복수노조법이 만들어진 이후 상대는 어용노조로 확대됐다. 그렇게 긴장관계 속에 지겹기 짝이 없는 재판을 8년 동안 진행하고 있다.

"저는 이제 소장이나 준비서면 초안도 써요. 회사에서 하도 고소·고발을 많이 하니까, 노조가 제기한 소송까지 하면 300번은 써본 것 같아요. 2011년 노조파괴를 위한 직장폐쇄 이후부터 2017년까지 회사가 조합원 개개인에게 고소·고발한 게 1300여 건이 돼요. 최근에 회사는 자잘하게 형사판결 난 사건들을 다시 끌어모아 손배를 청구하고 있어요. 가끔 이제 무슨 짓인가 싶어요. 그 시간에 그냥 공장에서 일을 할 수도 있는 건데, 회사는 우리를 한시도 가만히 두질 않아요."

도씨는 금속노조 소속 유성기업아산지회의 지회장이다. 오늘도 그는 서울에 올라왔다. 비오는 16일 오전, 서초역 서울고등법원에서 도 지회장을 만났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온 건지 물으니 역시나 재판이다.

죽은 사람의 산재마저 취소하라니...

"오늘은 산업재해 건으로 왔어요. 한광호 열사 건이에요. 최근 회사가 죽은 열사의 산재승인을 취소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어요. 승인 취소 대상은 한광호 열사뿐 아니라 6명 더 있어요. 산재승인 후에 행정소송을 회사가 냈는데 이미 1심에서 패소하고도 항소를 냈어요. 항소 1심 첫 재판이 열렸어요. 기가 막힐 노릇이죠."

2015년 금속노조 유성지회 조합원 43.3%가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은 바 있다. 지회는 해당 내용을 인권위와 국회에 제출했고, 노조파괴가 노동자 정신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호소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1년 뒤 2016년 3월, 한광호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회사의 노조파괴 이후 그는 열한 번의 고소·고발과 징계로 고통을 받았고, 정신질환을 앓게 되었다. 유성아산영동지회 소속 조합원들 중 한광호 열사와 같이 회사의 노조파괴 행위로 정신적으로 고통받던 노동자들에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를 승인했다. 회사는 이 산재를 취소하라고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이다.

2018년 5월 16일 서울고등법원 별관에서 유성기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산재승인취소 행정소송 항소심이 열렸다
 2018년 5월 16일 서울고등법원 별관에서 유성기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산재승인취소 행정소송 항소심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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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의 산재승인까지 취소하라니, 회사가 우리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는 말을 괜히 하겠습니까. 심지어 1심에서 회사는 패소를 했어요. 그런데도 항소를 했고 오늘이 첫 재판이에요. 오늘 사측 대리인의 주장을 듣는데 참담하고 기가막히더고요. 노조파괴는 2011년부터 2012년까지만 했다면서, 그 이후에 겪은 고통은 회사의 노조파괴와 무관하다는 겁니다."

2012년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창조컨설팅에 의한 노조파괴시나리오, 회사는 딱 그 기간 동안의 노조파괴에 대해서만 피해를 인정했다. 더 이상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만 산재를 인정하고 나머지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도씨의 생각에는 회사가 죽은 자의 산재까지 취소하려는 목적은, 역시 '괴롭힘'에 있다.

"소송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정확히는 '요양승인처분취소청구소송'이에요. 정신건강과 관련된 산재는 승인이 어려워요. 정신건강과 관련해 산재승인을 받은 사람의 공통점은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해져요. 사고로 다친 사람들은 산재가 확실하니 상대적으로 바로 승인이 되는 편이에요. 정신적인 건 1년이 넘게 걸려요. 직장에 출근도 못 하면서 산재승인을 진행해야 하니 경제적으로 빈곤하게 되죠. 그나마 산재승인이 나면 다행이죠. 승인이 안 나는 경우는 그냥 '죽는 거'죠. 정말 어렵게 산재승인이 나면 그간 쌓인 빚도 갚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간신히 견뎌오는 건데, 회사는 승인이 나면 바로 행정소송을 해버려요. 소송을 걸어서 경제적, 심리적 고통을 주는 시간을 더 길게 끄는 겁니다. 이게 진짜 목적이죠. 지쳐서 나가떨어지게 하는 거요."

도씨 역시 산재를 받은 바 있다. 정신건강 악화는 아니었지만, 그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사유에 노조파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각했다는 점이 주요하게 인정됐다. 정신건강과 관련해서도 피해를 인정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런데도 회사는 당연한 순서처럼 행정소송절차를 밟았다. 도성대씨는 정말 소름 돋는 점은 따로 있다고 했다. 

"이번 산재승인 취소 행정소송은 하마터면 모르고 넘어갈 뻔했어요. 제가 행정법원에 창조컨설팅 책임자인 심종두의 재판을 참관하러 왔다가 우연히 법원 지하 2층에 있는 큰 게시판을 봤는데, '유성기업'이 눈에 띄더라고요. 뭔가 해서 재판을 참관했는데, 산재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때 보지 못했으면 산재가 다 취소됐을 뻔했어요. 이유는 사측이 산재취소를 위해 온갖 병원들에 의견서를 받으려고 넣었는데, 산재가 아니라는 의견을 못 받다가 딱 한 군데 지역의료원에서 '업무상 관계없다'는 의견을 받은 거예요. 그 의견서를 제가 우연히 참관한 재판이 있던 그날 제출을 했어요. 바로 노조 담당 변호사에게 연락을 하고 이의제기 신청을 했죠."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 우연. 어떻게 산재를 취소한다는 내용의 소송이 당사자도 모르게 진행될 수 있었을까. 도씨는 산재취소의 경우 사측의 소송이 공단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간혹 이런 경우가 있다고 답한다. 노사갈등이 있는 사업장 노동자들이 한시도 촉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요. 특히 노조파괴 사업장은요. 회사는 이미 노무법인을 통해 법적 검토를 다 마친 상태에서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여요. 문제는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게 뻔한 공단 관계자가 유성사건을 모른다는 거예요. 제가 우연히 참관했던 재판에서는 근로복지공단에서 관계자 2명이 참석했었는데, 유성사건을 모르더라고요. 답답하기도 하고, 노동자에게 한없이 불리한 상황이지만 이게 우리 노동자의 현실이에요."

당사자들은 정신건강 산재승인을 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 조사 과정에서 매번 고통스러운 과정을 증언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성기업 노조파괴 과정과 상황을 설명하면, 조사관들이 공감하고 수긍을 했다는 점이다. 즉 몰라서 문제지, 알고 나면 승인하지 않을 수 없는 심각한 피해가 유성기업 공장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경영진이 인권위에 주장할 때는 공단이 한광호 열사 자결 이후에 정신건강 관련해서 집중적으로 승인했다고 말하는데, 한광호 열사 이전에도 받은 바 있어요. 저희가 처음에 정신건강과 관련해서 산재승인이 난 첫 사례가 심OO이라는 친구예요. 함께 근로복지공단에 가서 담당 조사관과 밤새워서 이야기했어요. 보통 8~9시간 이야기를 해요. 다 얘기하면 담당 조사관들이 울곤 했어요. 당연히도 산재승인이 났죠."

어렵게 시작된 1심에서 노조는 재판을 지연시켜가면서 충분히 준비했다. 노조파괴로 인한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되어 사주가 실형 선고를 받은 대법원 판결문까지 제출했다. 결국 '업무상 관련이 없다'는 지역의료원의 의견서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1심 재판부는 회사의 각종 차별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고, 이것이 정신적 스트레스로 이어졌다고 판결했다. 회사는 곧바로 항소했다. 

"회사가 꼭 이길 거라고 생각해서 항소하는 것은 아니에요. 보통 소송은 개별로 진행돼요. 항소는 재판비용과 연결되잖아요. 경제적 부담이 크죠. 뿐만 아니라 만에 하나 우리가 질 경우, 요양급여를 받은 것을 수급자가 토해내야 해요. 공단에서 수급자에게 직접 청구하는 식으로 진행하죠."

재판의 가장 큰 문제는 정신건강으로 산재승인을 받은 당사자들에게 고통스러운 상황을 되새김하게 하는 것, 그리고 소송 기간 동안 회사의 폭력에 가까운 주장을 고스란히 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판결에서 이긴다고 해도 당사자는 정신적 피해만 가중되는 셈이다.

"회사는 같은 주장을 반복해요. 노사불화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쟁의행위를 하다가 다친 경우는 업무재해로 볼 수 없다는 판례가 있다는 주장, 복수노조니 각 노조 간 차별은 있다하더라도 개인별로 차별하진 않았다는 주장, 재판정에도 CCTV가 있듯 회사 CCTV는 감시가 아니라 필요해서 있는 것이라는 주장, 오늘만도 아주 지긋지긋한 주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어요. 심지어 오히려 개인의 비위행위가 더 많다며 산재와 상관없는 개인에 대한 모욕적인 주장까지 하더라고요. 당사자를 오늘 재판에 못 오게 한 게 다행이죠."

행정소송 재판 후 법원을 나서는 도성대 지회장
 행정소송 재판 후 법원을 나서는 도성대 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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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파괴 가담자도 받은 산재승인...차별이 아니라고?

도성대씨는 회사가 산재승인에 늘 인색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관리직이나 어용노조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수용해주었다. 회사가 '인정'한 산재 대상에는 작년 유시영 회장과 함께 노조파괴에 따른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되어 형사처벌까지 받은 관리직 사원도 있다.

"정신건강 관련해서 금속노조 소속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산재승인에 아무 이의제기를 하지 않아요. 이게 노조 소속 조합원에 대한 개인차별이 아니면 뭘까요. 정신건강으로 산재를 받은 강OO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대법원에서 노조파괴 인정되어 형사처벌까지 받은 사람이에요. 강OO은 우리 조합원 한 명에게 71건이나 되는 고소·고발을 걸었던 사람이기도 해요.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실행한 사람인데, 오히려 고소·고발한 내용을 가지고 정신건강 악화로 산재까지 받아냈죠."  

회사는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따른 괴롭힘이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직장폐쇄 전후 기간을 제외하고는 노사 간 불화는 있었어도, 일방적인 탄압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후 벌어진 정신건강 악화를 비롯해 뇌졸중 등 육체적 고통 역시 산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2017년 2월 17일 유시영 회장이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구속되기 직전, 유시영 회장은 담화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거듭 표명했다.

"어떠한 상황이 와도 지금까지 추진했던 법과 원칙에 따른 조직관리, 회사와 직원이 함께 성장, 발전하는 회사를 일관되게 경영할 것입니다."
"회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정책을 가지고 유지, 운영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유성기업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목표와 정책을 가지고 유지될 것"
구속 전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이 발표한 담화문 일부
 구속 전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이 발표한 담화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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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표현이 도성대씨에게는 선전포고로 들렸다. 올해만도 노동자 3명이 출퇴근길에 쓰러졌고 산재신청을 했다. 회사는 민형사상 소송도 계속했다. 유성기업은 문재인 정부에서 첫 노동자 쟁의에 대해 손배소를 청구한 사업장으로 기록됐다.

회사의 말처럼 창조컨설팅이 사라진 유성기업 공장에 정말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끝났다면, 그리고 유시영 회장의 실형으로 죗값마저 치른 거라면, 대체 노동자들은 왜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고 몸이 망가져 쓰러져야 했을까.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끝났다고요. 우리는 아직도 2011년 5월 18일을 이유로 재판을 받고 있어요. 회사가 고소·고발한 건수만 1300여 건이고, 그 중 소송이 진행된 것만 700여 건이에요. 형사고소가 끝나면 그 소송을 근거로 손배가압류 같은 민사소송이 다시 시작돼요. 소송만 따져도 이런데, 공장 안은 더 심각하죠. 창조컨설팅은 사라졌는데, 이미 회사는 학습이 됐어요. 이렇게 하면 조합원 개개인이 떨어져 나가겠구나, 지치겠구나. 2011년 5월 18일의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어요. 오히려 더 심각해졌죠. 회사는 돈이 많으니까, 합법적 테두리를 찾아요. 그리고 조합원을 자극하죠. 불법을 저지르게 해서 고소·고발하는 것. 불법을 저지르게 하려니 괴롭히는 강도도 자연히 심해지죠. 회사가 자극하는 걸 아니까 넘어가지 않으려고 참고 버티면 속병이 생기는 거죠. 무한 반복되는 거예요."

2011년 이후 금속노조 유성기업영동아산지회는 조합원들을 상대로 외상후 스트레스 관련 실태조사를 매년 시행했다. 위 사진은 2016년 3월, 국회에서 '전쟁같은 일터, 당장 멈춰'라는 주제로 발표한 실태조사 자료집의 일부이다.
 2011년 이후 금속노조 유성기업영동아산지회는 조합원들을 상대로 외상후 스트레스 관련 실태조사를 매년 시행했다. 위 사진은 2016년 3월, 국회에서 '전쟁같은 일터, 당장 멈춰'라는 주제로 발표한 실태조사 자료집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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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과 서초동을 오가기 시작했을 때 도로에 이름도 모를 다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기둥이 올라오고, 다음번에 지날 때는 교각 양 끝에 도로가 놓이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죠. 저 끝이 만날 때쯤 유성기업 노조파괴 사태가 끝날 수 있으려나. 지금 그 다리에 차가 다녀요. 우리는 여전히 노조파괴로 싸우고 있고요."



태그:#유성기업, #노조파괴, #손배가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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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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