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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 기자 말

강촌역은 MT의 성지나 다름없었다. 비둘기호 역시 MT를 위해 찾는 대학생들의 열차였다. (CC-BY-SA 4.0, Wikimedia Commons)
▲ 강촌역을 지나는 비둘기호(1984년) 강촌역은 MT의 성지나 다름없었다. 비둘기호 역시 MT를 위해 찾는 대학생들의 열차였다. (CC-BY-SA 4.0, Wikimedia Commons)
ⓒ Konar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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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가는 기차에는 아직도 사람들의 청춘과 낭만이 담겨있다. 과거 무궁화호와 통일호가 오갔던 한 가닥뿐인 철길이 두 가닥이 되고, 그 위에 전철선이 깔려 전철과 준고속열차가 빠른 속도로 서울을 잇게 되었지만 그 낭만은 여전하다. 경춘선에게는 대성리, 청평에서의 MT의 추억이, 그리고 '닭갈비'와 호반의 추억이 아련하다.

하지만 이런 경춘선은 재미있는 일화를 상당히 갖고 있다. 한반도에 세워진 철도로는 최초로 조선인 자본에 의해 지어졌고, 특히 지역 유지들이 사재를 털어 철도를 만들었다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한국에 처음 지어진 철도인 경인선이 미국인과 일본인의 손을 차례대로 탔고, 대부분의 노선들이 일본에 의해 지어진 것에 비교하면 더욱 뜻깊다.

올해부터 6월 28일이 새로이 철도의 날로 지정되었다. 기존 철도의 날이었던 9월 18일이 경인선이 일제에 의해 개통된 날이었다는 일각의 주장을 수용한 것인데, 갑오개혁으로 인해 대한제국이 한반도에 첫 교통 관련 부서인 궁내부 철도원을 설립한 날이 1894년 이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몰랐던 경춘선의 과거 이야기로 돌아간다.

조선인이 세운 첫 번째 철도

경춘선 성동역 유지비. 현 제기동역 옛 미도파 건물 바로 앞에 있다. (CC-BY-SA 4.0, Wikimedia Commons)
 경춘선 성동역 유지비. 현 제기동역 옛 미도파 건물 바로 앞에 있다. (CC-BY-SA 4.0, Wikimedia Commons)
ⓒ pavelbree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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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중기, 각 도청이 있었던 대전, 대구, 광주, 평양 등에는 과거 철도가 부설되어 조선총독부의 관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도시들이 크게 발전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하지만 강원도청이 있는 춘천에는 철도가 없어 조선총독부는 당시 금강산선과 경원선이 부설되었던 철원으로 도청을 이전할 계획을 세운다.

이에 춘천의 조선인 유지들이 반발하여 '우리가 철도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한반도에 건설된 철도 대부분이 조선총독부의 수탈을 위해 부설되었고, 특히 장항선, 장진선 등이 수탈사업을 용이케 하려는 일본인에 의해 사철(개인이 선로까지 소유하여 철도를 영업하는 형태 - 기자 말)로 부설되었던 것과는 달랐다.

이에 춘천 지역의 지역 유지 12인이 1936년 사재를 털어 경춘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서울과 춘천을 잇는 철도의 부설을 시작했다. 공사를 수월하게 하고자 총독부 내무국장 출신의 일본인을 회사의 임원으로 앉히는가 하면 일본인에게 주식을 팔아 대주주로 앉히는 등 현실과 타협한 모습도 보인다.

1939년부터 30여년간 경춘선의 시점이었던 옛 성동역의 모습.
 1939년부터 30여년간 경춘선의 시점이었던 옛 성동역의 모습.
ⓒ 서울역사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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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에 가까운 공사가 끝난 후 1939년 서울 성동역에서 연촌, 퇴계원, 가평을 거쳐 춘천까지 잇는 경춘선 철도가 개통된다. 당시 경춘선의 수익이 좋아 7년만에 공사자금 전부를 회수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개통 직후 성동역에서 서울역까지의 지하철 건설을 건의하기도 했으나 태평양 전쟁으로 무산되었을 정도였다니 당시 수익이 많았음을 짐작케 한다.

경춘철도주식회사는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일본인의 자본이 빠진 채 유지되었다가, 1946년 1946년 5월 7일 재조선 미국육군사령부 군정청 법령 제75호에 조선철도의 통일, 즉 조선의 철도를 모두 국유화시키는 명령에 따라 10일 후인 5월 17일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경춘선 역시 국유화되어 현재에 이른다.

해방 이후 '낭만철도'로

경춘선 청평역의 옛 모습. (Public Domain)
 경춘선 청평역의 옛 모습. (Public Domain)
ⓒ 한성주(한국어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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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지쳐 있었나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 /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보며 / 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 / 지난 일이 생각나 차라리 혼자도 좋겠네 / 춘천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 오월의 내사랑이 숨쉬는곳 /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 김현철 1집, <춘천 가는 기차>

성동역과 연촌역(현 광운대역)을 잇는 경춘선 구간은 1971년 철도 출발역을 청량리역으로 일원화되는 계획에 따라 폐선된다. 1974년부터는 서울특별시지하철건설본부가 한동안 성동역을 그대로 임차하여 현장사무실로 사용했다고 한다. 경춘철도주식회사가 서울 지하철을 건설할계획을 세웠던 것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지점이다.

1971년부터 청량리역에서 시작된 경춘선은 통일호와 무궁화호의 주무대가 되며, 관광철도로 새로이 기능하게 되었다. 특히 북한강의 소양강댐, 청평댐, 의암댐 등이 경춘선 연선에 생겨나면서 맑은 호수와 풍광을 볼 수 있는 관광의 중심지가 되었고, 특히 대학생들이 서울과 가깝고 저렴한 기차삯에 MT를 위해 경춘선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열차 안에서 통기타를 치다가 승무원이 가위로 기타 줄을 다 끊었다는 사연이나, 입석표를 끊고 열차 승강구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는 등의 이야기의 추억이 경춘선에서 가장 많이 묻어난다. 열차 출발시간을 알리는 플랩이 특유의 소리를 내며 돌아가면 개표시간에 맞춰 삼삼오오 줄을 섰던 것도 청량리역의 독특한 모습이었다.

대중문화도 경춘선을 청춘과 낭만의 철도로 알렸다. 1989년 김현철 1집의 <춘천 가는 기차>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가 하면, 경춘선 신남역(현 김유정역)을 배경으로 한 MBC의 드라마 <간이역>도 1997년 인기리에 방영되며 작중 부역장으로 촬영한 박인환씨가 철도청의 모델이 되었을 정도였다. 대중문화와 가장 가까운 철도노선이었던 셈이다.

전철이 다니지만, 경춘선만의 '청춘'이

옛 경춘선의 출발지였던 성북역은 광운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경춘선 열차가 하루 두 번 들어오며 명맥을 잇고 있다.
 옛 경춘선의 출발지였던 성북역은 광운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경춘선 열차가 하루 두 번 들어오며 명맥을 잇고 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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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이는 한 가닥 선로에 한 시간에 한 대, 두 시간을 달려야 하는 경춘선은 2010년 성북 - 화랑대 - 퇴계원 구간의 폐선과 상봉역 - 퇴계원 간의 복선전철화가 동시에 끝나며 디젤 냄새 나는 무궁화호 열차 대신 깨끗한 전동차와 ITX-청춘 열차가 20분 간격으로 오가기에 이르렀다. 서울에서 춘천까지 걸리는 시간도 한 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열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변하지 않았다. 청량리역과 상봉역에서는 MT 준비물을 가득 싣고 열차에 오르는 대학생들이 매일 보이고, 청춘 시절의 낭만을 살리기 위해 열차에 오르는 나이 지긋한 중년 부부도 자주 보인다. 복선 전철화로 인해 북한강의 절경 대신 터널이 자주 보인다지만, 경춘선만의 청춘은 빛바래지 않은 셈이다.

경춘선의 옛 철길도 산책로가 되고, 공원이 되고, 자전거길이 되어 사람들이 계속 찾고 있다. '서울 최후의 간이역'이었던 화랑대역은 철도공원이 조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방문하고 있고, 서울과 춘천을 잇는 자전거길이 되어 많은 라이딩족이 찾고 있으니 철길로서의 생명은 끝나도 '길'로의 생명은 이어지고 있다.

'서울 최후의 간이역'이었던 경춘선 화랑대역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철도테마공원이 되었다.
 '서울 최후의 간이역'이었던 경춘선 화랑대역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철도테마공원이 되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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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철도의 날은 새로 주어진 첫 번째 철도의 날이다. 일제가 세운 철도노선, 그리고 일제가 수탈을 위해 운행한 열차와는 달리 조선인들이 조선총독부의 도청 이전방침에 반발해 만들었다는 철도라는 점, 그리고 대부분의 철도노선이 업무나 가족방문, 일상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데 반해 관광과 휴식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데에서 경춘선의 이야기는 특별하다.

그런 경춘선, 나아가 더욱 많은 한국철도의 이야기가 비단 철도의 날이 아니더라도, 다른 날과 기회를 통해 여러모로 퍼질 수 있기를 바란다. 철도에 대한 이야기만큼 현대사와 근대사의 경계면, 그리고 당시의 생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수단은 없으니 말이다.



태그:#철도, #경춘선, #철도의 날, #철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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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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