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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에 이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주권자들의 호응은 기존의 정당 선호도를 역전시켰다. 전국 대부분 시도에서 여당이 야당을 압도하고 있다. 하지만 유일하게 자유한국당의 지지도가 살아 있는 곳이 대구 경북이다.

그중 경북지역의 지방선거 판도는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출사표를 던진 이들의 면면으로 보면 이 지역에는 여전히 자유한국당이 여당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구미에도 예년에 비기면 여당 예비 후보가 늘긴 했지만 자유한국당 후보와 비길 정도는 아니다.

구미에서도 몇몇 범진보 인사들이 새롭게 6·13 지방선거에 도전하고 있다. 민주당은 그나마 여당이라는 프리미엄이라도 있지만, 진보정당의 경우는 양자구도에 밀려 존재감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이들을 중심으로 지역구 선거 상황을 들여다 보았다. - 기자 말 

노동자 출신의 구미시의회 의원 김성현 예비후보. 그는 2010년 선거에 당선하여 의회에 진출했으나 2014년 낙선했다. '김성현 리턴즈'는 이루어질 수 있을까.
 노동자 출신의 구미시의회 의원 김성현 예비후보. 그는 2010년 선거에 당선하여 의회에 진출했으나 2014년 낙선했다. '김성현 리턴즈'는 이루어질 수 있을까.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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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가 보수의 아성,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을 거쳐 자유한국당에 이르는 보수정당의 본거지라는 건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더군다나 '반신반인'으로 추앙받는 박정희의 고향이고, 그 딸이 대를 이어 최고 권력에 오를 수 있도록 받쳐 준 동네다. '작대기만 꽂으면 당선'이라는 공식은 적어도 이 지역에선 기십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새누리당이 과점(69.6%)한 제7대(2014) 구미시의회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 당선하여 구미시의회를 구성한 23명(비례대표 3명 포함)의 시의원 가운데 69.6%에 이르는 16명이 새누리당 소속이었다. 거기에 언제든 기회가 되면 새누리당 입당이 가능한 무소속이 5명(21.7%)이어서 친여 의원은 모두 91.3%에 달했다. 당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비례대표를 포함하여 단 2명(8.7%)만이 의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여당 새누리당은 구미시의회 23석 가운데 16석을 가져가 의회를 지배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여당 새누리당은 구미시의회 23석 가운데 16석을 가져가 의회를 지배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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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거에서 4년 전인 2010년 지방선거로 구미시의회에 입성한 초선 시의원 김성현(51·민주노동당)과 김수민(31·무소속)은 재선에 실패했다. 김성현은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의 와중이라 무소속으로, 김수민은 녹색당으로 재선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신 것이다.

한나라당과 친박연합, 무소속으로 구성된 제6대 구미시의회에서 실제 야당 시의원 역할을 한 이는 이들 두 사람뿐이었다. 두 사람이 낙선한 대신 새정치민주연합의 안장환 후보(구미시 가 선거구)와 비례대표 김근아 후보가 새로 제7대 시의회에 진출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실패한 김성현은 세 해 동안, 시의회 대신 시내의 한 숯불 갈비집 직원으로 일했다. 그는 숯불을 피우고 불판을 닦고 가는 일을 하면서 집안의 생계를 도왔다. 이어서 반년쯤 그는 새벽 건설 노동자로 일했다. 그래서 2018 지방선거를 준비한 시간은 고작 반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구미시 가 선거구의 도량동 주민들과 학생들에겐 매일 아침 도량초등학교 부근에서 교통봉사를 꾸준하게 해 온 사람으로 기억된다. 2010년 시의원이 되면서 시작한 이 교통봉사는 낙선 후 그가 갈비집에서 일할 때도 꾸준히 이어져 7년여의 이력을 쌓았다.

재선 실패한 노동자 시의원, 갈비집 '화부'로 살았다

도량동 부근을 지나는 주민들이나 아이들은 그를 만나면 인사를 하고 지나가곤 하는데 이는 7년 동안이나 이어진 교통봉사 덕분이고, 그가 시의원으로서만이 아니라 주민으로서 이웃들과 교유한 결과였다.

지난 주말(12일), 선주원남동 주민복지센터 건너편 빌딩 3층에 문을 연 그의 선거사무소에 들렀을 때, 김성현 후보는 혼자서 커다란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선거사무원은 물론 집기라곤 나무탁자 몇 개와 의자가 다인 썰렁한 사무실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경북 봉화 출신인 김성현이 구미의 일터로 온 것은 영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병역을 마친 뒤였다. 그는 1989년 국내 컨테이너 업계의 효시로 1억불 수출탑(1981)까지 받았던 흥명공업주식회사에서 노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석연찮은 이유로 1993년, 회사가 문을 닫을 때 그는 노조위원장이었다.

정의당 소속 김성현 예비후보가 구미고 사거리에서 출근길 인사를 하고 있다.
 정의당 소속 김성현 예비후보가 구미고 사거리에서 출근길 인사를 하고 있다.
ⓒ 정의당 구미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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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몇 해 동안 다른 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1996년부터 민주노총에서 상근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2006년 처음 도전한 지방선거에 실패한 뒤 2010년에 가 선거구에서 2위와 4표 차 3위로 당선했다. 그가 구미시의회에 들어갔을 때 23명의 시의원 가운데 그는 유일한 고졸 학력이었다.

일반 유권자에게는 학력이 부족하다고 인식되지는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게 별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라고 했고 나도 동의했다. 실제 지역 정치인들 가운데에는 뒤늦게 대학에 적을 두어 학력을 대졸로 높인 이들이 적지 않지만 그게 이력에 한 줄을 더하는 거 말고 무어 그리 큰 의미가 있는가 말이다.

- 2010년 선거에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순전히 제 판단이긴 하지만, 그 무렵만 해도 사회의 변혁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분출하고 있었고 민주노총도 활동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당시 한나라당이 분열하여 친박연합으로 쪼개진 상황도 도움이 됐을 거고요."

- 그런데 2014년 선거에서는 왜 패배했죠?
"당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 4월 중순부터 한 달 정도 선거운동을 전혀 하지 못했던 게 결정적이었지요. 결국, 조직표로 선거한 기존 정당이 승리했던 거지요. 민주노동당이 쪼개지면서 어느 쪽을 선택하는 대신 무소속으로 나갔던 것도 지명도에서 손해를 봤고요."

그랬다. 4·16 세월호 참사 이후 각 정당은 선거운동을 잠정 중단하고 실종자 구조작업 지원과 가족 지원 활동에 들어간 것이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생한 비극적 참사는 뜻밖에도 진보 정치인들의 선거에도 영향을 끼친 셈이었다.

- 지역 관련 선거 공약은 잘 안 보이네요.
"글쎄요. 시의원이 공약하는 것은 구호로는 가능하지만, 구체적 예산을 따서 그걸 집행하고 하는 부분은 상당히 어렵지 않나 싶어서요."

-그렇다고 공약을 맹탕으로 둘 수는 없잖아요?
"공약은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실효성이 좀 떨어지죠. 저는 경상북도가 다른 시도에 비해 복지 부분이 미진한 점이 많다고 봅니다. 새로운 공약을 내세우기보다는 미진한 복지를 보편적 복지로 확대해 나갈 수 있도록 촉구하고 추동하는 게 더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

- 선거운동은 어떻게 하고 있지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저는 시민들에게 시의원이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리고 싶습니다."

시민과 함께 숨쉬고 고민하는 사람으로 알려지고파

중앙당에서 선거자금을 보조하긴 하지만, 지역 후보들이 운신하기에는 넉넉할 리가 없다. 노동자로 살아온 그가 따로 선거에 필요한 자금을 모았다고 보기도 그렇지 않은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5월 31일 이후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선거사무소의 썰렁함은 당분간 더 이어질 듯했다.

그는 요즘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에 지역구 내 교통량이 많은 네거리에서 지나가는 유권자와 차량을 향해 쉴 새 없이 절을 하는 게 주요한 일과다. 그거 말고 가능한 방법이 따로 없는 것이다. 아침저녁에 봉곡동 네거리와 구미고 네거리, 봉곡동 고갯마루를 지나는 시민들이 그를 만날 수 있는 이유다.

구미시 가 선거구는 구미의 8개 선거구 중 가장 뜨거운 지역이다. 이 선거구에 등록한 예비후보는 모두 10명이다. 의원 정수 3명인 이 선거구에 지역의 '실질적 여당'(?) 자유한국당은 3명,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명, 바른미래당과 정의당이 1명씩, 그리고 무소속이 3명이다. <표 참조>

의원 정수 3인인 구미시 가 선거구에 자유한국당은 3인을, 더불어민주당은 2인을 공천했다.
 의원 정수 3인인 구미시 가 선거구에 자유한국당은 3인을, 더불어민주당은 2인을 공천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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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가 선거구는 구미시 8개 선거구 중 가장 뜨겁다. 무려 10명의 후보가 등록했는데 현직 시의원 3명이 포함되어 있다.
 구미시 가 선거구는 구미시 8개 선거구 중 가장 뜨겁다. 무려 10명의 후보가 등록했는데 현직 시의원 3명이 포함되어 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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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가운데 현역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그리고 무소속(자유한국당 공천 탈락)에 1명씩 3명이다. 현직의 프리미엄을 고려하면 싸움이 만만하지 않다. 더구나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양당 구도가 이루어지면서 진보정당의 처지는 한층 더 옹색해진 형편이다.

2018, '김성현 리턴즈'는 이루어질까

그런 상황에 김성현 후보와 정의당이 제시한 구호 '공정한 출발과 기회 보장', '일하는 청년의 권리 보호',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기본 생활 보장' 따위가 유권자에게 얼마나 유의미하게 다가갈까. 정의당 구미시 위원회에서 만든 '슈퍼맨' 패러디 포스터에서 김성현은 슈퍼맨 복장을 하고 굳게 쥔 주먹을 쳐들고 있었다.

'슈퍼맨'을 패러디한 김성현 후보의 선거 포스터. 그는 이번 선거에서 정말 슈퍼맨처럼 돌아올 수 있을까.
 '슈퍼맨'을 패러디한 김성현 후보의 선거 포스터. 그는 이번 선거에서 정말 슈퍼맨처럼 돌아올 수 있을까.
ⓒ 정의당 구미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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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최강의 시의원 그가 돌아온다."
"김성현 리턴즈"

구미는 1~4공단까지 국가산업단지가 있고 모두 3200여 개 기업체에 11여만 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도시다. 42만여 명 인구의 평균 연령은 37세, 30대 이하가 도시 전체 인구의 54%를 차지하는 젊은 도시 구미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여전히 보수의 구각(舊殼)을 벗어나지 못할까, 변화하는 시대의 진보와 호흡을 같이 하게 될까. 6월 13일에 치러지는 선거는 그런 시대의 징후를 일정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공업 도시 구미의 유일한 노동자 출신 시의원은 빼앗겼던 자리를 되찾게 될까. '최강 시의원' '김성현 리턴즈'가 이루어지게 하는 열쇠는 어쩌면 11만 노동자들과 30대 이하의 젊은이들이 쥐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태그:#구미시의원 선거, #정의당 김성현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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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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