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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스님 백양사 방장이자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스님을 5월초 백양사에서 만나 인터뷰 했다.
▲ 지선스님 백양사 방장이자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스님을 5월초 백양사에서 만나 인터뷰 했다.
ⓒ 최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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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두들 불교를 신앙으로 떠받들고 있는데 그건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석가모니 가르침의 궁극적 목표는 스스로 부처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자 고불총림 백양사의 방장 지선스님(73세, 장성 삼계면 상도리 출생)은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장성투데이>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오랜 투병생활과 바쁜 일정 탓에 어렵게 마련한 인터뷰에서 지선스님은 "어렵게 쟁취한 민주화와 통일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잘 살려야 한다"라면서 장시간 이야기 보따리를 펼쳐 주었다.

30여 년 전 햇살마저 뜨거웠던 광주 금남로 아스팔트 한복판에 승복을 입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젊은 스님은 함께 앉아있던 시민과 학생들 틈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취재진이 그분(지선스님)을 처음 만난 곳은 바로 그곳 그 뜨거웠던 금남로 한가운데 아스팔트 위였다.

1989년 조선대 재학 중 교지 <민주조선>에 '미제침략사'를 게재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다가 숨진 채 발견된 이철규 열사(당시 25세)의 사인을 두고 정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익사'로 발표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는 '고문에 의한 타살'로 규정하고 투쟁을 벌인다. 당시 대책위 중심에 지선스님이 있었다.

도로 위 투사 스님

"이철규 학생이 수배 받고 쫓기고 있을 때 4수원지에서 시신으로 떠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어요. 우리가 시신을 직접 건져 올리고 보니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는 데다 한쪽 눈은 심하게 부풀어 올랐고 온몸에 타박상이 있는 게 어느 누가 보더라도 고문치사에 의한 타살이 분명했어요."

이후 대책위는 186일이라는 긴 시간동안 진상규명 투쟁을 벌이지만 경찰수사결과는 '실족 후 익사'로 결론 난다. 이후 2002년과 2004년, 2007년까지 진상조사위가 꾸려졌지만 아직까지 밝혀진 사항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다 그해 7월 스님은 문빈정사에서 참선수행을 하던 도중 광주동부서 경찰에 연행된다. 죄목도 많았다. 국가보안법 위반, 집시법 위반, 공무집행방해죄, 정기간행물에 관한 법률위반 등 붙일 수 있는 모든 죄란 죄는 다 붙인 듯했다.

"그 시절 남영동 대공분실은 그야말로 지옥과 같았습니다. 나도 그곳에서 통닭구이(막대기에 거꾸로 매달고 몽둥이질)를 당해봤는데 인간으로서 차마 못 견딜 고통입디다."

올해 초 700만 명 이상이 관람한 영화 <1987>의 주인공이자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서울대생 박종철이 쓰러져 간 곳. 민청련 상임의장이었던 고 김근태 전 의원을 비롯 수많은 인사들과 시민들이 물고문, 전기고문 등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모든 고문이 자행된 곳이 바로 이곳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5·18은 민주와 대동정신의 승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그간 성과에 대해 묻자 지선스님은 바로 이곳 남영동 대공분실을 민주화운동기념센터로 치환하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고 답해왔다. 지난 시절 참혹한 인권유린이 자행됐던 장소를 보존하고 복원해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시민의 공간으로 되살아나야 한다는 것.

스님은 "각계 원로 등과 여러 단체가 참여해 의견을 수렴해 가는 과정"이라면서 "이곳이 국유지이기 때문에 건물과 부지의 매각과 이를 위한 법리적 문제점 등 검토할 사항이 산적해 있다"라고 말했다. 조만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덧붙이기도 했다.
    
광주의 5.18은 스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다. "1980년 5월 당시에 참여하진 못했지만 그 수많은 시민이 죽음을 향한 몸짓임을 알면서도 전진하며 맞섰다는 것은 전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숭고한 일"이라면서 이는 "민주주의와 대동정신의 승리"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민주와 통일은 불가분의 관계

4.27 남북정상회담에 관해 묻자 스님은 "정말이지 의미 있고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벅찬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라며 "현대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이 아닌가 싶다"라고 평했다. 이어 "아직 온전히 기뻐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양측 정상 간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고 희망적인 일"이라 말했다.

스님은 "분단국가에서 통일은 곧 민주이고, 민주가 또한 통일"이라고 강조하고 이는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등 모든 분야에서 적용 되어야 할 것이고 이를 극복하고 사로 화합해 가는 과정이야말로 민주고 통일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일고 있는 불교계 부정부패와 관련한 질문을 던지자 스님은 "수행자의 본분은 수행을 하는 것임에도 수행보다 물질과 잇속에 더 관심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많다"라며 "불교는 타종교에 비해 역사적으로 이러한 부패와 비리를 견제하고 감시할 제도가 확립되지 못하고 때로는 정권의 탄압을 피해 스님들의 안위를 거래할 때도 있었으며 호시절에는 반대로 그들의 안위를 연장코자 정권에 빌붙어 살아가려 했던 부끄럽고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스님들의 자기성찰이 부족한 면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불교를 이용하려는 정권과 세력에 의해 바로 서지 못하고 휘둘린 탓도 크다"라는 진단이다.

덧붙여 정부도 불교를 이용해 잇속을 챙기려 들지 말고 국민들도 스님들 모두를 비난하려 할 것이 아니라 참선하고 수양하는 맑은 스님들도 응원해 줄 것을 당부했다.

진보세력 도덕적 재무장 절실

스님은 또 소위 민주세력이라 자칭하는 진보세력에게도 따끔한 일침을 잊지 않았다. 스님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변혁운동 세력간 불화와 문제점을 그들 스스로 쌓아 놓은 아집이라는 울타리와 철학의 부재를 문제 삼았다.

스님에 따르면 "변혁운동은 책만 읽고 텍스트 내용대로 따르며 공허한 세상과 관념의 울타리를 완성시켜서는 안 된다. 책속에서나 숨 쉬는 맑스·레닌이 아닌 현실에서 살아 숨 쉬는 적극적 대안의 발굴과 자기나라의 실정에 맞는 현실적 대안과 의제 발굴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운동하는 사람은 대중과의 교감이 그만큼 중요하며 그 누구보다 자신에 대한 관리가 더욱 필요하다. 다시 말해 기본적으로 도덕적이지 못한 자는 변혁운동을 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맑스든 모택동이든 그 어떤 사상과 이념에 앞서 그들 자신의 뿌리와 문화를 보전치 못하고 남의 나라 것만 모방하고 따라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진정한 자기성찰이라고.

아직도 고문 후유증에 시달려

스님은 "내세울 것 없었던 대한민국이 이명박과 박근혜 시대를 거쳐오면서 전 세계의 우롱거리가 되더니 이제는 시민들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촛불을 통해 민주주의를 이뤘다. 이는 세계가 인정할 만한 주목할 일이다"라고 평한 뒤 "어렵게 쟁취한 소중한 기회이니 만큼 다시 빼앗기지 않도록 시민민주의 역량을 키워 이끌어 갈 지도자들을 양성해야 할 것"이라 역설했다.

한편, 지선스님은 수회에 걸친 투옥과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위암을 앓아오다 두 차례의 절제수술을 하기도 했으며 지금도 각종 성인병 등의 증세를 보이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런데도 스님은 민주화운동 관련사업과 관련한 인사들과 백양사 일을 맡아 처리하느라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장성투데이 신문사 누리집에도 게제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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