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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당갈>
 영화 <당갈>
ⓒ (주)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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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가 의기투합해서 함께 성장하고 꿈을 이루는 서사는, 세기의 러브 스토리보다 더 강렬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서사는 가장 고차원적인 사랑의 존재를 알리고 현대의 신화로 등극 되어 널리 회자된다. 스포츠 영화가 이런 류의 서사를 자주 차용하는 것도 그래서다.

클린튼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성장 서사의 공식을 따르며 성공한 작품으로 꼽힌다. 정작 자신의 딸과는 잘 지내지 못하는 괴팍한 노인 코치와 노장 선수들이 자신의 야망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젊은 감독, 이들은 여성 선수들과 갈등하다가 길을 찾고 선수의 가능성을 끌어낸다. 최근에 개봉한 스포츠 영화 <당갈>은 기존의 성장 서사에, 여성 선수의 코치가 그들의 아버지라는 신선한 설정을 추가했다.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은 여성 선수들 가운데 아버지가 코치이자 조력자로서 헌신한 사례는 드물지 않다. 박세리 선수를 필두로, 박인비를 비롯한 한국의 여성 골퍼들이 LPGA를 점령한 배경에는 '골프 대디'라고 불리는 아버지들이 있다. 또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18세의 나이로 돌풍을 일으킨 여자 하프파이프 종목의 클로이 킴 아버지도 직장까지 그만두고 딸의 뒷바라지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갈>의 마하비르도 허구가 아니라 실존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이 마하비르에게는 앞서 예로 든 아버지들보다 한층 파격적인 면모가 있는데, 그건 바로 어린 두 딸에게 터프하기 이를 데 없는 레슬링을 가르쳤다는 점이다.

 영화 <당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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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꿈이 되는 딸이라니

마하비르가 처음부터 딸을 후계자로 삼은 것은 아니다. 애초에 그가 세운 계획은 아들을 통해서 꿈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람과 다르게 딸 넷을 낳으면서, 그는 오랜 꿈을 단념하기에 이른다. 그러다가 우연히 딸들의 재능을 발견하고는 '남자가 따든 여자가 따든 똑같은 금메달'이라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과 같은 실용주의에 따라 두 딸을 후계자로 삼는다.

그런데 딸이 태어날 때마다 낙담하는 마하비르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나의 아버지는 운동 선수가 아니지만, 내가 엄마의 배 속에서 자라는 내내 아들이기를 기대했다. 나보다 먼저 세상에 나온 아들이 이미 있었으니, 더 많은 아들을 원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내 아버지가 나쁜 아버지였냐면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마하바르가 아내에게 "기타와 바비타가 소중하지 않은 게 아니야. 다만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건 아들뿐이라는 거지"라고 말했듯, 아버지에게 나는 단 하나뿐인, 소중한 딸이었다.

당시엔 '딸바보'라는 말이 없었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불려도 무방할 만큼 애정이 넘쳤다. 그런데 그 애정은 어림과 연약함, 무지와 애교로 점철된, 유아 시절로 한정된 것이었다. 나에게 세계라는 것이 어렴풋하게 생성될 무렵부터 나와 아버지는 서로에게 급격히 무관심해졌다. 나는 아버지의 좌절된 꿈이 무엇인지, 오빠를 통해서나 겨우 짐작할 수 있었고 아버지는 내 세계와 잠재력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중에 내가 안 사실은 아버지는 나에게, 허탈할 정도로 기대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서 뼈아픈 진실을 알게 됐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가 원하는 삶을 살든 그렇지 못하든, 절대로 아버지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가부장인 아버지가 원하는 나의 삶이란, 또 하나의 가정에 편입된 또 한 명의 아내, 그리고 어머니가 되는 것인데 그것은 내가 해내봤자 당연한 귀결이고 못 해내면 자격 미달인, 그 자체로 하나의 덫인 삶이었다. 사실 남성 중심적인 체제 안에서 여성에게 주어지는 역할 기대란 대부분 이런 양상을 띤다.

그런데 아버지의 꿈이 되는 딸이라니! 주인공이 아버지와 아들이었다면 평범한 스포츠 드라마가 됐을 당갈은 중국과 대만 관객을 상대로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여권이 낮은 국가인 인도라는 배경, 코치가 된 아버지, 아마추어에서 진정한 선수가 되어가는 딸이라는 조합 덕분일 것이다. 

당갈의 주제는 매우 단순하고 확실하다. 바로, '세상이라는 링에 올라서 싸우라'는 것이다. 이 싸움에 있어서 성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갈의 세계에서는 갈등과 위기에 맞부닥쳤을 때, 싸워서 이기는 것 외에 다른 방도를 허용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이러한 신념에 따라서 딸들이 싸우고 이길 수 있게, 싸움의 판을 깔아주고 이기는 법을 알려준다. '최선을 다했다면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는 달콤한 말에 속지 말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자신도 여성이 레슬링을 한다는 데서 기인한 세간의 편견과 맞서 싸운다. 

 영화 <당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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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에 있어 성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러닝타임 내내 여자가 아니라 싸움꾼으로서의 정체성을 쌓아올린 딸들은 아버지와의 갈등마저도 싸움으로 정면 돌파한다. 그래서 이제는 인정받은 유망주가 된 기타가 그 옛날에 아버지를 따라서 전국을 떠돌며 남자들과 겨루던 그때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흙판에서 아버지와 맞붙는 장면은 그가 치른 어떤 경기보다도 강렬하다.  

왜냐하면 세상은 여성에게, 이상할 정도로 싸우지 말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갈등을 일으키거나 난리를 피우지 말고 신비한 묘수를 써서 조용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여성으로서 추구해야 할 미덕이라고 가르친다. 그런 묘수를 체득하지 못한 여성들은 부당한 대우와 차별을 겪고도 마냥 인내한다. 이렇게 여성은 체제에 순응하도록 길들여진다. 그리고 상당수는 링에 오르는 것조차도 저지당한다.

당갈의 초반부에는 아직까지도 조혼이 만연한 인도답게, 결혼식이 끝나고 눈물을 흘리는 기타와 바비타의 친구가 등장한다. 고작 열네 살만 돼도 결혼하는 이 아이들은 링에 오르지도 못하고 가정에 귀속되어 남은 인생을 산다. 그렇다면 한국의 여성들은 얼마나 다른가? 만혼이 대세라고 해서 여성들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고 할 수 있는가? 통상적으로 여성이 학업을 마치는 나이가 20대 중후반이고 한국 여성의 평균 결혼연령은 30세다. 아무리 길어도 10년이 채 안되는 시간 동안 여성이 무엇과 싸우고 무엇을 이룰 수 있는가.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인가, 아닌가 하는 논란이 말해주듯 당갈에는 두드러지는 한계와 흠결이 없지 않다. 기타와 바비타의 어머니는 너무나 수동적이고 밋밋한 인물이다. 싸움의 긴장과 쾌감이 폭발하는 장면을 장식하는 사운드 트랙은 남성이 부르고, 슬픔과 같은 잔잔한 감정이 주를 이루는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여성 보컬이 등장한다.

또 아버지를 떠나서 독립한 기타가 좌절을 겪으면서 아버지로 상징되는 남성의 세계가 무조건 옳은 것처럼 연출한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인도를 배경으로 한 상업영화가 여성에게 싸울 것을 독려했다는 점이 이 영화의 결점을 상쇄한다. 아니, 오히려 상업 영화로서 이만한 성취를 이룬 것을 칭찬받아야 할 것이다.

'명예는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있는 것. 밤하늘의 별들도 서로 싸운다네. 그러니 나가서 싸우세.'

'당갈, 당갈(인도어로 레슬링을 의미한다)'을 반복하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로 인기를 끈 타이틀 트랙의 가사처럼, 기실 인생을 제대로 살고자 한다면 링에 올라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

단언하는데 현명한 묘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은 여성에게, 이 당연한 룰을 알려주지 않는다. 2016년에 느닷없이 등장한 한 편의 인도 영화가 이를 뜨겁게 외쳤고 그 커다란 울림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영화 <당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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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과 움직임에 자주 매혹되며 여성과 세상에 관해서 씁니다. 운동하는 여자 연재 중 Time's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