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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를 일주일 앞둔 교실의 풍경은 소리 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꽃가루와 미세먼지 탓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자리에 앉아 수학문제를 연습장에 풀고 있는 여학생이 보였다. 키가 180센티 정도로 큰 남학생 한 명은 옛적 폴더폰처럼 허리를 접고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었다. 연습장 절반을 접어 빼꼭히 수놓은 영어 단어들. 쓰고 외우고, 외우는 것을 깜박하면 기계처럼 쓰기만 했다.

아이들이 속닥거리는 "수행평가 똥망했어"라는 소리도 들렸다. 당장에 내신은 소수점 몇 점 차이로 등급이 결정되는 아이들 입장에서 낮은 수행평가 점수는 단순한 불평 정도가 아니라 점수를 채점한 선생님을 향한 원망이 서려 있었다.

1984년에 태어나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와 2000년 이후에 탄생한 아이들의 교실 풍경은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냐는 질문에 그럴싸한 답을 하는 어른들은 없었다. 대학을 가야하기 때문에,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그게 전부였을까.

지난 20여 년 간 교육행정을 하는 교육부 공무원으로서,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사는 한국 사회의 시민으로서, 그리고 딸 둘을 낳아 키우는 아버지로서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학교 교육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글을 쓴 사람이 있다. 바로 최승복 저자이다. 저자는 생애 처음으로 <교육을 교육답게 우리 교육 다시 세우기>라는 책을 출판했다고 한다.

"헌법 제31조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교육기본법은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의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교육기본법 제2조)'한다고 선언하였다. (중략) '학생을 포함한 학습자의 기본적 인권은 학교교육 또는 사회교육의 과정에서 존중되고 보호되고, 교육내용 · 교육방법 · 교재 · 교육 시설은 학습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개성을 중시하여야 한다(교육기본법 제12조)'고 명시하였다." (324~325쪽)


헌법과 교육기본법에서는 모두 전인권적 차원에서 국민 모두가 차별 받지 않고 교육 받을 권리와 그 수혜자인 학생을 포함한 학습자 및 교육자의 자질에 맞는 자주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명시된 문언이 왜 학교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을까.

최승복, 교육을 교육답게 우리 교육 다시 세우기
 최승복, 교육을 교육답게 우리 교육 다시 세우기
ⓒ 맘에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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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은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변화와 혁신을 이야기하며 6.13지방선거에 발맞춰 교육제도에 바람을 가할 각 정당 혹은 무소속의 교육감 후보들이 명함을 뿌리고 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그 밥에 그 나물이라며, 지속 가능한 변혁보다는 언젠가 그칠 소나기 정도로 치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왜 그럴까.

평등한 대우, 공정한 과정, 민주적 문화 속에서 공감을 싹틔워야 할 우리 아이들이 친구를 짓밟고, 어른의 폭력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계급을 구분하는 이 현실이 교육의 진짜 주소가 맞을까.

여러 일로 시간이 바쁜 독자라면 책의 3장, 개개인에 맞춘 개별화된 교육과 6장, 공동체적 삶을 위한 교육: 민주적인 학교문화 만들기를 먼저 읽기를 권한다. 균등한 교육이란 차별 없는 교육 기회를 주는 것과 개인별 차이를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현행 교육은 전국적으로 표준화된 국가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전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동일한 내용, 동일한 속도로 가르쳐왔다. 물론 최종 종착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다양성에 기인하지 않는 지식 습득을 위한 주입식 암기 교육의 문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들린 것이 어제 오늘이 아니다. 교탁의 권력은 수혜자인 학생이 아닌 교사에게 있는 이러한 교수법에서 학생들이 흥미를 느낀다면 되려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교사의 말을 잘 듣고, 고만고만하게 반항하지 않은 학생을 보고 '착하다'라고 어르면서 진행하는 수업에서 학습자는 무엇을 배울까?

왜 여학생은 바지 교복을 입지 못할까. 여성은 치마, 남성은 바지라는 전형적인 프레임 속에서 '성'에 대한 교육, 더 크게 인권적 교육이 가능할까. 교육과정에서부터 복장과 생활시간까지 획일적으로 통제하고 '앞으로 가'만 강조하는 생활공간에서 민주화는 오지 선다형에서 몇 번째에 있어 OMR 답안지에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체크를 해야 할까.

"우리 사회와 학교에서 갈등이나 의견의 충돌, 이해관계의 상충을 어떻게 대하고 조정하는가를 둘러싼 문제해결 과정이 민주적인 대화와 타협, 개방과 공유를 통해 서로 협력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진다면, 학생들도 그런 문화 속에서 민주적이고 상호적인 대화와 협력의 해결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민주적인 절차와 상호 의사소통을 통한 갈등의 해결 과정을 접하거나 실천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자그마한 의견 충돌이나 정서적인 갈등조차도 폭력에 의존하고 급기야 교사에 대한 불만조차도 폭력과 강압적 방식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태도와 행동 방식을 부지불식간에 익히게 된 것이다."(331쪽)


20세기 공부 잘했던 학생이 자라서 교편을 잡고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의 아이들을 훈육한다. 산업화 시대에 있어 지식이란 합리적이며 답이 정해진 것이고 계몽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 집단적 사고 내에서 '나'보다는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서 조직됐다. 개인의 의미는 집단 안에서 찾아야 했으며 동시에 조직과 집단을 통해서만 유의미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사고했다.

생애 주기별 사이클 역시 단순했다. 몇 년간 공부하고 또 몇 년간 직장을 다니고 그리고 퇴직후 노년을 산다는 공식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IMF 금융위기 이후 이러한 공식은 철저히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우리 사회에서 '평생직장'의 개념은 점점 퇴화하는 분위기에 있다.

암기 잘하는 머리보다, 기존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떻게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이것을 스토리텔링하느냐에 따라 업무 평가 점수가 반영되는 추세이며,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개념을 읊는 인재가 아닌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신의 일상적 이야기, 삶과 대상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감력이 있는 사람이 우수한 사람으로 평가 받는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학습량은 OECD 가입국 중 최상위를 차지하면서 학습의 질적인 측면이나 학생, 교사의 만족면에서는 하위권인 대학입학만을 향한 교육제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제조업을 하던 그 시절 그때와 전혀 다르지 않는 학교의 풍토를 고수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교육이 이미 오래전에 사회경제적 변화와 시대의 변화에 맞게 진로교육을 중심으로 재편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하면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자유학기제와 진로교육이 우리 교육의 큰 방향 전환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고, 또 우리 사회가, 학부모가,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진로교육이 기존의 직업 중에서 쇼핑을 하듯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여기서는 노력 대비 보상이라고 하자)를 따지고, 앞서 간 사람들 현황을 조사해보고, 주변의 평판을 물어봐 가면서 그런대로 좋다는 결론에 다다른것에 맞춰서하는 교육은 진로교육의 본질적 목적과 부합하지 않다고 했다.

"타자의 욕망을 좇는 사람은 타인들이 이미 간 길이 있기 때문에, 싫어도 그 길을 따라가면 어느 정도 기본이 보장된다는 안정감을 위안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 길이야말로 타인의 삶을 살아주는 길이다. 이런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하지 않고, 스스로 강제하고 통제하며 자신을 강박해가면서 가는 길, 즉 '자기강박학습'을 수행할 뿐이다." (230쪽)


학교 단위에서 교육과정을 결정할 수 없는 지금 같은 구조에서는 교사는 자신의 전문성을 십분 살리고 수업 내용을 결정할 수 없다. 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잘 치르게 도와주는 '지식 택배 기사' 노릇을 하는 것뿐이라고 저자는 말했다.

학교라는 것은 무엇인가. 학교가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지금의 실정에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 학생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이 지금의 유행만을 쫓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교육은 앞을 보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당장의 이해득실을 가려 교육에 투기할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개별화된 자율형 교육과정에 맞추어 국가 교육과정과 교과서 정책이 대폭 개선돼야 함을 강조했다.

이것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4.19혁명의 의거, 5.18민주화 운동, 그리고 2016년 촛불까지 이어지는 민주주의 사회의 한 주체로서 학생의 권리와 의무를 인정하는 인식이 교육 현장에 고스란히 녹아야 함을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작은 사회인 학교 현장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다음 말은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더 나아가서 학교의 전반적인 운영 방향과 수업 활동을 위해서 지역 사회와 협력하고 학교운영에 지역 시민이 적극 참여하고 지역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해야 한다. 지역사회가 학교를 별개의 기관으로 보지 않고, 지역사회의 부분으로서 마을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공동체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학교가 지역사회의 소통 허브가 될 수 있다. 학교운영위원회에 지역 인사를 참여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학부모 회의도 보다 참여적으로 수행하여 학교운영이 학부모,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여, 학교와 지역이 함께 생활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최근의 마을학교 활동은 학교와 지역사회가 어떻게 긴밀한 협력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341쪽)


교육을 교육답게 우리 교육 다시 세우기 - 표준화 교육을 넘어 학생 개개인에게 필요한 교육으로

최승복 지음, 맘에드림(2018)


태그:#최승복, #교육을 교육답게 우리 교육 다시 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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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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