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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 제주 닷새째. 오전 10시 16분, 새들이 지저귀고 풍경도 냄새도 자연이 가득한 시골 동네 정류장에 앉았다. 이런 시간에, 이런 풍경을 보고 있으니 정말로 영 딴 세상에 온 듯하다.

세계자연유산 중 하나인 '거문 오름'을 가는 길인데 앞서 탔던 버스 기사 님이 알려주신 환승 버스가 20분 넘도록 안 온다. 11시까지 도착해야 예약제로 이뤄지는 오름 탐방이 가능한데. 현재 시각 10시 35분.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달 살기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달 살기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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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시간 안에 도착. 같은 시각에 탐방을 신청한 사람들과 해설사를 따라 오름에 오른다. 울창한 숲 사이 간간이 돌담에 둘러싸인 무덤이 보이는데 옛날 농사를 위해 산불을 놓거나 소나 말이 지나가며 묘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구조라고.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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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부터 시작하는 탐방이라 한낮 더위를 걱정했는데 숲 속 그늘과 바람 덕에 내내 시원하고 상쾌하다. 거문오름 내 울창한 삼나무들은 60년대까지 벌채로 인해 민둥오름이었던 이곳에 민관이 합동해 인위적으로 심은 것이라고. 하지만 삼나무는 봄철 알러지의 원인이 되기도, 다른 개체가 뿌리 내리지 못하게 하는 단점이 있다고 한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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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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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미터 오름 정상. 멀리 한라산까지 선명한 전경. 사진 속엔 없지만 실제로는 백록담에 아직 녹지 않은 눈도 보였다. 태어날 때 복을 타고 나 살면서 덕을 쌓아야 본다는 '록담만설(한라산 백록담에 눈 쌓인 모습)'이었다. 날씨 변덕 심한 제주에서 쉬이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란 뜻이다. 해설사가 "여러분들 정말 복을 타고 나셨어요"란 말을 반복한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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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사가 거문 오름과 같은 지형을 만드는 화산 폭발 과정을 동영상으로 보여줬다. 언젠가는 모든 것을 태워 삼켰을 불바다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와닿았다. 제주도는 180만 년 전부터 화산 활동을 통해 생겼는데, 지구 역사 46억 년에 비교하면 "젊은 화산"이라고. 가장 놀랍고 위대한 건 모든 것이 다 타 버린 잿더미 위에 뿌리 내려 오늘날에 이른 자연.

우리가 편의점에서 쉬이 사먹는 '삼다수'는 이러한 제주의 척박한 환경에서 돌과 나무와 식물이 뒤섞여(제주말로 '곶자왈'이라고 한다) 18년간 온몸으로 정화시킨 빗물을 식수화한 것이라고. 나무도 꽃도 물 한 방울도 이렇게나 긴 세월, 역경을 헤치고 헤쳐 여기까지 왔는데 사람에 의해 참으로 쉽게 한순간 착취 당하는 현실이 미안하고 걱정스럽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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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 안에는 대한민국 근대 역사의 아픈 상처도 곳곳에 남아 있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일본은 결사항전의 발판으로 제주에 주둔, 이곳 오름을 포함 제구 곳곳에(오늘날 제주의 대표 관광명소로 꼽히는 거의 모든 곳을 포함) 갱도와 진지동굴 등을 만들었는데 당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노역에 동원됐다고 한다. 만약 미군이 바로 일본 본토에 핵을 떨어뜨리지 않고 제주를 공격했다면 오늘날의 제주도는 없었을 것이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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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 제주를 피로 얼룩지게 한(비유가 아닌 사실에 가까운 표현임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4.3사건'의 상흔 또한 있다. 여기는 용암이 흐르면서 형성된 여러 층의 수평 동굴이 무너지면서 생긴 깊은 수직 동굴이다. 4.3사건 당시 토벌떼가 무장군을 찾기 위해 무고한 도민들을 이 동굴 앞에 세워 심문하다 밀어 죽였다 한다. 철망 너머로 까마득한 굴 속을 보는 것만도 오금이 저렸다.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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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1시간 코스까지만 탐방하려 했으나 해설사 분의 설명이 흥미로운데다 쉬이 지칠 거란 예상과 달리 몸이 가뿐해 2시간 30분 코스를 돌았다. 거문오름을 제대로 알고 싶어 온다면 최소 2시간 30분 코스를 추천하며, 3시간 30분 완주 코스도 있으니 참고하시길. 탐방은 100% 예약제로 최소 하루 전까지 해야 하며 반려동물의 입장은 금지돼 있다. 그래서 오늘 강호는 '방콕'.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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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 : 강호의 첫 바다 구경, 그리고 아찔한 반 나절

덧붙이는 글 | 6년 전 귀향해 아주 작은 여행자 공간을 꾸리다 다시 여행자 신분으로. 내 안의 두려움과 무지를 깨고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싶어서, 다리가 두 개 뿐인 하지만 씩씩하고 명랑한 고양이 강호에게도 그러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낯선 곳에서 한 달 살기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첫 목적지는 제주도입니다.

우리의 실시간 여행이 궁금하다면?
https://www.facebook.com/pg/travelforall.Myou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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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길고양이, #한달살기, #한달여행, #오름, #거문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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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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