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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껏 역대 정부의 교육개혁을 위한 팀의 인적구성에 대해 늘 의문을 품어왔다. 그 의문은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교육정책의 성격에 부합하는 인재들로 구성되었다는 확신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교육 현실의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현실적 대안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주로 위원회 구성이 교수중심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정치관료 및 교수들이 정책입안자로서 총론과 각론 모두에서 주역과 관객의 역할을 독식하면서 지금껏 교사들이 교육개혁의 방관자로 남아 있는 것이다. 스위스에서는 현직교사가 수업하다가 대체교사에게 수업진도를 맡기고 서류가방을 들고 국회로 등원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교사들이 대학입학 논술고사(바칼로레아)를 출제하고 채점한다. 이때 교수는 총괄 책임을 지고 방향만 잡아준다.

한국의 교사들은 퇴직하지 않으면 정치활동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한국의 현직교사들은 정책결정은 고사하고 정치적 표현조차 제약받고있다. 우리는 이제 정치관료, 교수, 교사들의 정책토론과 입안능력의 가능성과 한계를 솔직하게 터놓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관료들은 직업정치인이기 때문에, 교수들은 이론적 탐구의 속성 때문에 각기 교육 현실 특유의 정서와 문제를 체험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여기에 정권의 이념적 지향에 과도하게 추종하는 경향도 발견되곤 했다.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국정화 문제는 대통령의 퇴행적 이념지향과 이에 추종하는 관료들이 얼마나 국가의 역사의식과 역사 자체를 후퇴시키고 국력을 낭비하게 하는지 우리는 절감하지 않았던가?

국가교육회의대입제도 개편 특별위원회 및 공론화위원회의 인적구성을 보면, 위원  20명가운데 12명이 대학교수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주요 인물 7명을 보면, 전공분야가 다양하기 때문에 교육회의라기 보다는 국가발전회의에 걸맞는 인적구성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교육철학, 교육사회학, 교육과정 전문가가 드물다. 부분적으로 심준섭 교수의 정책분석평가와 갈등조정 능력, 이명진 교수의 한국사회연구 이력만이 눈에 띄는 정도다. 또 김학린 교수의 경우, 갈등관리 능력보다는 교육모순의 인식능력과 처방을 내는 학적 식견이 더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또한 훌륭한 선택이라 할 수 없다.

설령 교육학을 중심으로 한 위원구성이 되었다고 해도 현실가능한 대안을 내는 것은 여전히 장담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교수들이 대학정책과 더불어 초중등 교육의 전반적인 진단에는 능하지만 학교현장에서 실현가능한 대안을 내는 데는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수들은 정책총괄에 적합하고, 교사들은 세부적이고 현실에 적합한 대안을 내는 데 적당하다. 우리는 지금껏 전문성의 성격적 차이와 이에 따른 역할분배를 공정하게 하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초중등 학교현장의 교장들이 보이는 독선적인 행태는 직접 체험한 교사들이 아니고서는 그 폐단의 악영향과 정서적 문제들을 공감하기가 어렵다. 일례로 수년 전에 한 인문계 고교에서 고3 여름방학 보충수업이 힘들어서 학생 1인당 이수하는 100시간 중에서 90시간만 하고, 나머지 10시간은 개학하면서 한다고 했다. 그리고 보충수업비도 일부를 지급하지 않고 남겨두도록 행정실에 부탁했다. 이때 교장이 담당 여교사를 불러 보충수업비를 착복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황당무계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 여교사는 내내 잊을 수 없는 정신적 트라우마를 받고 교무실에 와서 하염없이 울었다.

이런 사례는 교장을 자격증제로 하여 교사들 위에 군림하게 하지 말고 교사들 중에서 공모 혹은 선출하여 민주적으로 재편해야 할 것을 요구하는 현장의 쓰라린 경험이다. 교사들이 직접 체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교장제도의 근본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교수보다는 교사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폐단이 정치적 제도개선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실제 의정활동을 해야 할 당사자들 속에 교사들도 포함되어야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의 43만여 명의 현직교사들은 참정권을 박탈당해 왔다. 선거일 하루 투표권만 있을 뿐이다.

전문성과 대중성의 기로에서

정치제도에서 '전문성'과 '대중성'을 놓고 어떤 것에 비중을 두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오랫동안 정책입안자들을 괴롭혀온 사안이다. 즉 전문성은 철학적 식견을 지닌 소수의 정치관료 즉 귀족들이 통치할 때 그 기능을 가장 잘 발휘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대중성은 다수의 의견을 모아 오류를 줄이면서 통치하는 민주제를 의미한다.

귀족제는 전문성을 갖추되 독단으로 흐를 수 있으며, 민주제는 여론수렴에 의해 오류를 줄일 수 있으나 다수의 동의에 집착할 경우 전문성을 기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 귀족제와 민주제 비교 귀족제는 전문성을 갖추되 독단으로 흐를 수 있으며, 민주제는 여론수렴에 의해 오류를 줄일 수 있으나 다수의 동의에 집착할 경우 전문성을 기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 신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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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도표는 플라톤의 저작 '국가론'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것으로서 주요 정치제도의 장단점을 제시한 것이다. 귀족제 혹은 철인왕(哲人王)에 의한 통치는 전문성은 높으나 자칫 독재와 독단으로 흐를 가능성을 안고 있다.

반면에 민주제는 다수가 논의에 참여케 함으로써 주인의식을 높이지만 권력, 명예, 돈과 같은 외부요인에 의해 우민정치로 흐를 가능성을 안고 있다. 전문성으로 무장한 귀족제, 대중성으로 무장한 민주제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플라톤은 민주제보다 귀족제를 선호했다. 이는 바로 민주제가 지닌 취약성 즉 전문성 결핍의 한계 때문이었다. 그러나 귀족제와 민주제 중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이 탁월하지 않다.

교육정책에서도 '전문성'과 '대중성'의 선택의 문제는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전문성을 위해 흔히 대학교수를 많이 참여시키지만, 추상적이고 공허한 개념을 구사하다 현실적용에서 한계를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에 대중성 즉 민주적 의견수렴을 강화하기 위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학생, 시민, 학부모, 교사들을 망라해서 양적으로 많이 참여시키다가 전문성을 상실하는 경우가 생긴다.

대안 : 교육정책 논의와 결정에 있어서는 교수가 방향을 제시하고, 실무안에 대해서는 교원단체 활동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교사들의 토론에 맡긴다. 요컨대 교사들을 개혁주체로 내세워야 한다

정치제도에서 귀족제와 민주제의 장점을 살려 양자를 통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교육정책도 그러하다. 그래서 전문성과 실천가능성의 감각을 지닌 진보성향의 교수와 교사들에게 정책논의를 전격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교수로 하여금 전공에 따른 경력에 의해 총괄적으로 논의를 리드하는 데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게 해야 한다. 특히 초중등 교육정책과 입시의 실무문제에 대해서는 교사들이 밝으니까 오랫동안 이 문제들을 고민해온 교원단체들의 논의에 맡긴다. 이것이 교사들로 하여금 전문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 교사들이 더욱더 연구성과를 내면서 대안제시 능력을 키워갈 수 있게 된다.

위 국가교육회의의 교수들의 전문성은 그들의 전공분야에 적합하지 교육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인재구성에서부터 정책실패가 예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책은 충분한 시간 동안 토론하되 결론을 단일하게 내지 말고 1~2안 등과 같이 복수로 낸다. 그리고 다시금 학생 및 시민들의 논의에 부친 후 장관과 대통령이 최종 선택을 하게 한다.

입시에서의 수시와 정시의 비율조정, 학생부 신뢰도 개선, 입시의 공정성과 같은 것이 국가교육회의 의제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를 포함하되,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도 사회경제적 보상과 복지혜택을 받으며 살 수 있도록 분배정의와 같은 포괄적인 내용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대학에 가지 않고 전문계 고교를 졸업해도, 또 졸업정원제를 실시해서 탈락한 학생들에게도 기술과 기능을 익혀 사회적응이 다시 가능케 하여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줘야 한다. 재기의 기회를 줌으로써 결과의 극심한 차이를 줄이는 것, 이것이 정의다.

이제 왜곡된 분배문제를 바로잡는 것이 어떻게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되는지를 고민할 때다. 즉 임금차별, 학력차별의 근본적인 개선책을 냄과 동시에 입시안도 개선하는 양면적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때에 비로소 대학입시의 종속기관으로 전락한 중-고교 교육을 되살리고 적성, 인성, 창의성 교육을 복원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현직 교사 윤만식, 김광일, 김두루한, 김창식, 신남호의 논의결과를 정리한 것입니다.



태그:#국가교육회의, #인적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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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에 교육평론 45편 정도 기고했으며, 현재 인천교육청 공립 대안교육 자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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