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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거 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제화 노동자들.
 점거 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제화 노동자들.
ⓒ 제화노동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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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달 26일, 좁다란 복도에 빨간 조끼를 입은 50~60대 중년 남성 50여 명이 주저앉았다. 무릎과 무릎이 닿았다. 그나마 앉을 자리가 없어 벽에 붙어 선 이들은 '우리는 구두를 만드는 기계가 아니다' 등이 적힌 펼침막을 들었다. 회사의 대화를 기다리다 지쳐 눈 감은 이의 머리 뒤에는 국내 수제화 업계 1위 'TANDY(탠디)'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2. 일주일째 아버지를 만나지 못한 제화 노동자의 자녀 강아무개씨는 아버지에게 배달할 김치주먹밥을 쌌다. 어느 날 아버지가 대뜸 말했다 "나 데모하러 간다". 강씨 구두 대부분은 아버지의 작품이었다. 장인인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파업이라니? 8년째 제자리인 켤레 당 임금 7천 원에서 2천 원을 올려달라는 요구라고 했다. '공임비 인상하고 직접고용 보장하라'. 더 묻지 않고 동네 문방구에서 핑크색 도화지를 사 피켓을 만들었다.


2일 서울 관악구 인현동 탠디 본사 3층. 지난 26일부터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제화 노동자들은 이날 오후 2시께 파업 29일 만에 회사 측과 한 테이블에 앉았다. 현장을 방문한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중재한 자리였다.

윤 의원은 같은 날 의원총회에서 "2000년 탠디 노동자에서 하청업체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으로 전락한 제화 노동자들은 똑같이 탠디의 작업 지시에 따라 구두를 만들면서 오히려 하루 16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등 어떠한 노동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전태일 열사의 시대가 연상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소하 "장인 열패감 들게 하는 우리 사회"

 일주일째 탠디 본사 점거농성중인 제화 노동자들.
 일주일째 탠디 본사 점거농성중인 제화 노동자들.
ⓒ 제화노동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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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임비 2천원 인상'을 요구하며 일주일째 탠디 본사 점거 농성에 나선 제화 노동자들.
 '공임비 2천원 인상'을 요구하며 일주일째 탠디 본사 점거 농성에 나선 제화 노동자들.
ⓒ 제화노동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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탠디 구두를 만드는 제화 노동자들은 대부분 경력 20년 이상의 구두 장인들이다. 그 품질 만큼 매장에서는 30만 원 상당의 고가로 팔려 나간다. 장인들은 성수기 시즌 여성 구두 약 25족을 만든다. 저가 구두의 경우 켤레 당 6500원, 고가는 7000원을 받는다. 8년째 같은 공임이다. 2000년께 회사가 제화노동자들을 '소사장제' 즉, 개인사업장화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농성에 참가 중인 경력 32년 제화 노동자 박완규씨는 같은 날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최저임금 7350원을 상기하며 "배운 게 도둑질이라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지만 바깥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다"고 씁쓸해 했다. 해외와 달리 장인을 천대하는 산업계에도 쓴 소리를 던졌다. 그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이다"라면서 "연륜이 쌓인다고 좋은 게 아니라, (나이들고) 힘들어지면 노예에서 쓰레기가 되는 구조다"라고 비판했다.

윤 의원은 이들의 농성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노동이 존중받는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고 했다. 점거 농성 5일째부터 용역 10여 명이 본사 정문에서 진을 쳤기 때문이다. 강아무개씨는 "아버지가 침낭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용역들이) 문 앞을 지켜 출입을 못하게 한다고 했다"면서 "얼굴도 못보고 짐만 줬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윤 의원은 용역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노사 사이에서 대화를 시작했다. 아래는 2일 윤 의원과 전화로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2일 탠디 본사에서 제화노동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2일 탠디 본사에서 제화노동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소하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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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성장 상황은 어땠나.
"갔을 때부터 보기 드물게 용역이 있었다. 농성장에서 충돌이 없도록 밑에만 있게 했다. 자칫 잘못해 사고가 일어나면 안 되니까. 농성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노동이 존중받는 나라라는데... 있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회사는 다른 방법으로 표현했지만 누가 봐도 용역이 있었다. 대단히 구시대적인 것이다. 자제하라고 했다."

-회사 측과 대화가 진행됐나.
"탠디 전무와 이사, (제화 노동자) 지부장과 처음으로 이야기 했다. 무조건 하청 탓만 하지 말고 접점을 찾아봐야하지 않겠냐고 했다. 좁은 복도에 농성을 하고 있어 화장실 등 불편한 게 많아 보였다. 회사에서는 당사자들과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이야기를 수시로 하는 것으로 하고 나는 내려왔다. 아마 회사 측에서도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려고 할 거다."

- 제화 노동자들이 처한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보나.
"결국은 특수고용특별법을 개선해야할 문제다. 당장 이분들은 장시간 노동에 8년간 공임이 묶여 있다. 최저임금도 (그 기간) 실제 2배가 올랐는데. 하다못해 (매년) 100원씩이라도 올려주는 모습을 회사가 보였다면 어땠을까. 현장 농성자 분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 기술로 이렇게 자랑스럽게 해왔는데' 하는 열패감이 워낙 컸다.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지만 노조의 생각을 전했고 사측도 호응해 당사자와 풀어보려는 노력을 하겠다고 했다."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특히 장인, 즉 기술직에 대한 환경이 열악하다.
"일본의 경우 고유 기술을 계속 발전시키고 대우했을 때 생기는 경쟁력을 중시한다. 그런 것들이 쌓여 토종산업으로써 발전도 있는 것인데. 노조 문제 이상으로 해결되길 바랄 뿐이다."

"들어가면 나오겠지 했는데... 대부분 고령, 응급실 실려 가기도"

 8년 동결 공임비 인상을 요구하며 본사 점거농성에 들어간 한 '탠디' 제품 제화공 가족이 아버지와 그 동료에게 줄 식사로 만든 김치 주먹밥.
 8년 동결 공임비 인상을 요구하며 본사 점거농성에 들어간 한 '탠디' 제품 제화공 가족이 아버지와 그 동료에게 줄 식사로 만든 김치 주먹밥.
ⓒ 가족 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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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씨는 파업, 농성, 노동자라는 말이 원래 입에 잘 붙지 않았다. 술자리에서도 구두를 만드는 과정을 주로 안주로 삼지 정치, 사회 이야기를 잘 나누지 않았다고 말했다. 점거 농성을 시작하게 된 것도 '들어가면 나오겠지'라는 생각으로 특별한 계획 없이 진행된 일이었다.

박씨는 "본사 앞에서 21일째 집회를 진행했다. 대화는 여전히 꿈도 못꿨다. '본사로 들어가자, 들어가면 나오지 않겠나' 해서 들어온 거다"라면서 "대부분 연세가 있어 당뇨, 혈압 기본인데 계획을 했으면 약이나 준비했겠지... 이틀 사흘 지나니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 55명이 들어왔는데 45명 정도가 남았다"고 말했다.

주먹밥 배달에 나선 강씨는 이날 오후 7시께 집을 나가 사발면 50여 개와 커피믹스 박스를 샀다. 슈퍼마켓 카트를 빌려 뒷문으로 배달했다. 농성장에 도착하자 제화 노동자들이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고 손을 흔들었다. 강씨는 반가움보다 "우리 여기 있다고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아빠가 오면 영화 보고 장어를 먹으러 가려고 했다. 백화점 가서 점퍼도 사고."

강씨는 다가오는 어버이날을 걱정했다. 그는 "집에 며칠 못 들어오시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회사 측의 대응 없이 농성이 장기화되는 게 제일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노동절이 하루 지난 날, 중년의 구두 장인들이 밤을 지샌 지 꼬박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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