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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인들의 손으로 건축된 일본 최초의 불교사찰 비조사
 백제인들의 손으로 건축된 일본 최초의 불교사찰 비조사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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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일본 전통 가옥들의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돌아가자 비조사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을 돌아가니 마침내 작고 초라해 보이는 비조사 건물이 다가왔다. 비조사 앞에는 일본어와 영어로 된 안내 간판이 1400년 전 건축 당시의 복원 모습과 함께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지금은 초라해 보이지만 건축 당시 비조사는 남북 290m, 동서 250m의 거대한 사찰이었다.

건축당시 규모를 짐작케하는 비조사 안내문
 건축당시 규모를 짐작케하는 비조사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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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들어서자 본당 입구 안내소 여직원이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그리고 한국어로 된 비조사 안내문을 건네준다. A4 용지 한 장을 빼꼭히 채운 비조사 안내문에는 백제인의 기술과 자재로 비조사가 건축되었다는 내역이 소상하게 적혀 있다. 현 일본인 주지 야마모토 호우준의 명의로 되어있는 안내문에는 백제인들이 비조사를 건축했다는 내용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오늘 먼 한국에서 이곳 아스카데라 절(비조사)을 참배하여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스카데라 절은 지금으로부터 약 1400년 전인 서기 588년(일본 제32대 스슝천황 원년)에 대신 소가노 우마코의 발원으로 건립된 사찰로 일본 최고(最古)의 사찰입니다. … 일본 최초의 절의 건립을 위해서 고구려의 설계를 받아들여 백제에서 파견된 승려와 전문기술자들의 지도와 협력에 의해 서기 596년에 훌륭한 절이 완성되어 훗날 일본 불교문화형성의 원점, 그리고 아스카 수도를 세우는 근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551~626)는 당시 숭불파 리더로 백제계 후손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숭불파인 소가(蘇我)씨와 배불파인 모노노베(物部)가 격심하게 다툰 결과 587년 진보적 성향을 가진 소가씨가 승리하여 국가에서 정식으로 불교를 인정받게 되었다.

절대적인 정권을 잡은 소가노 우마코는 백제의 장인들을 받아들여 588년부터 대대적인 불사에 착수해 8년 만에 비조사를 완공하였다. 비조사를 건축하는데 백제로부터 건축, 토목, 기와 기술자는 물론이고 화공까지 십여 명의 기술자가 파견되었다고 일본서기는 전하고 있다.

백제의 장인들에 의하여 596년에 완성된 비조사는 일본 최초의 절로 일본 불교문화형성의 원점이 되고 있다. 아스카촌에 비조사를 건축한 이후 일본인들은 백제장인들의 도움을 받아 나라지방에 호코지(法興寺), 겐코지(元興寺) 등 대형 사찰을 대거 짓기 시작하여 일본에 불교사찰 건축 붐이 일어났다고 한다. 

건축 당시 비조사는 중앙에 탑을 중심으로 동, 서, 북 3방향에 금당(金堂)이 서 있고, 그 바깥쪽으로 회랑을 두른 백제식 가람형식이었는데, 궁궐보다 더 컸다고 한다. 그러나 비조사는 1196년 대화재로 가람건물들이 소실되어 본존불만이 가건물 안에 보존되어 오다가 1956~1957년 발굴조사에 의해 본래의 가람배치가 밝혀지게 되었다.

백제의 말안장 기술자가 완성한 비조대불

비조대불
 비조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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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된 설명서를 읽으며 비조사를 둘러보니 이해가 훨씬 수월했다. 금당으로 들어가니 명상에 잠겨 있는 석가여래본존불이 시선을 압도하고 있다. 본존불은 여원인(與願印)과 시무외인(施無畏印) 수인을 취하며 명상에 잠겨 있다. 중생들에게 대자대비를 베풀어 중생들을 공포와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자비로운 모습이다. 안내문은 비조대불 조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본존은 아스카다이부츠 대불로 알려진 석가여래좌상은 건물이 완성된 지 약 10년 후인 서기 605년(스이코 천황)에 천황이 쇼우토쿠 타이시(성덕태자), 소가노 우마코 대신과 황자들과 서약을 맺고 백제계 도래인 시바타쯔토의 손자인 말안장 기술자 도리붓시(도리불사, 불상을 만드는 사람)에게 명하여 609년에 완성시킨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입니다.'

당초 금당 불상은 양측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거느린 석가세존이었으나, 12세기 대화재로 전신이 손상된 것을 보수를 받아가면서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이 불상을 건축할 때 고구려의 대흥왕이 황금 320냥을 보내왔고, 탑에는 백제에서 보내온 부처님의 사리가 수장되었다고 한다.

15~6세기 무렵에는 백제의 혜총법사와 고구려의 혜자법사가 처음으로 이 절에 체재하여 쇼유토쿠태자의 스승이 되었다.

한국의 수덕사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는 약정서
 한국의 수덕사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는 약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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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 왼쪽으로 난 회랑을 따라 나가니 아담한 일본식 정원이 왼쪽으로 펼쳐져 있고, 회랑복도에는 비조사의 오래된 유물들이 안치되어 있다. 1987년 한국의 수덕사와 자매결연을 맺고 교류를 하고 있다는 약정서도 진열해 놓고 있다. 서문 쪽으로 나가는 대문에는 '안거원(安倨院)'이란 명패가 걸려있다. 문을 나서니 옛 서문 터가 길게 이어진다. 서문유적지를 보아 건축 당시 비조사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재의 비조사는 폐허에 가까운 작은 절이지만, 1400년 전 백제 장인들에 의해 건축된 일본 불교의 출발점이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비조사를 '일본 불교의 1번지'라고 부르고 있다.


태그:#비조사, #아스카촌, #아스카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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