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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과 조기대선 후 처음 치러지는 지방선거. 새판을 짤 수 있을까요? 다양한 배경과 정당에서 6.13 지방선거에 도전하는 청년 정치인들의 삶과 포부를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둔 후,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표현처럼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곽승희씨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 금천구 무소속 구의원 예비후보 곽승희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둔 후,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표현처럼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곽승희씨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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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이란 뭘까? 과연 우리는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유아시기부터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행복한 삶'이라 주입받고 살아온 입장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해보기는커녕 자신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조차 깨닫기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 대부분의 인생은, 그것을 할 수 없게 된 나이에 이르러서야 하고 싶'었'던 일을 어렴풋이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 동년배의 청년들이 소망하는 직업을 걷어차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선 사람이 있다. 힘들다는 언론사, 잘 나가는 스타트업 일자리를 내던지고 '열 일하는 백수'로 왕성한 활동을 보이다 이제는 구의원에 도전장을 낸 사람. 이제 만31살이 된 곽승희씨다.

주어진 목표를 향해 꿈을 버린 유년기

사표를 던진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월간 퇴사' 편집장, 요즘 세대의 조직문화를 연구하는 '요즘 젊은 것들 연구소' 소장, 명상 클래스 '마음근육 기르기 워크샵' 기획 및 스테프. 직업을 내던진 후 곽승희씨의 활동을 설명하는 직함들이다. 물론 잘 나가는 어느 청년 창업가의 성공 스토리처럼,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일들은 결코 아니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은', '누군가는 해볼 만한' 일들을 생각날 때마다 저지른 일이다. 그녀는 원래부터 이렇게 비범하고 별난 사람이었을까?

"저도 얼마 전까지는 그냥 주어진 대로 남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좇아갔어요. 어렸을 때는 바둑을 잘해서 프로기사 제안도 받았는데 학교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해서 포기했어요. 생각이 좀 많은 편이라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어서 국문과에 갔고 대학에서는 연극에 빠졌는데 먹고 살아갈 걱정에 언론고시에 매달렸어요."

바둑과 철학과 연극. 그녀가 현실과 타협하면서 내쳤던 '하고 싶은 일'들이다. 프로 바둑기사의 삶은 평범한 학교생활을 벗어나는 두려움에 포기했고, 철학과 연극은 생존에 대한 두려움에 포기했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남들이 보기에 좋을 것 같은 일쪽으로 몸을 돌렸다. 사회에서 도태될 수도 있다는, 알 수 없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끊임없이 그녀를 몰아 붙였다.

"졸업하고 언론사에서 잠시 인턴생활을 하는데 계속 불안하고 공포감이 엄습하더라고요. 빨리 안정적인 직업, 정규직을 구하자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한 2년 준비해서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방송팀에 들어갔어요."

정규직만 얻으면 불안과 공포가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기획과 취재, 생중계 리포트, 팟캐스트 보조까지 갖은 일들이 몰아쳤다. 저녁이 있는 삶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를 세상에 마땅히 들려야할 목소리를 전한다는 자부심으로 채웠다. 그렇지만 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는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한 2년 지나니까 몸이 버티지 못하더라고요.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까 매일 엄청난 양의 진통제를 먹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됐어요. 여기에 여러 문제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 쌓이니까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어요. 어떤 고민이나 판단 때문에 그만뒀다기보다 더 버틸 수 없어서 사표를 썼다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

2013년 8월, 인터넷언론 방송팀에서 리포터로 일할 때의 곽승희씨. 일은 힘들었지만 '들려야할 목소리를 전한다'는 자부심으로 버텼다. 그러나 자부심에도 한계는 있었다.
▲ 금천구 무소속 구의원 예비후보 곽승희 2013년 8월, 인터넷언론 방송팀에서 리포터로 일할 때의 곽승희씨. 일은 힘들었지만 '들려야할 목소리를 전한다'는 자부심으로 버텼다. 그러나 자부심에도 한계는 있었다.
ⓒ 곽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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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맞지 않는 일, 나에게 어울리는 일

체력이 감당할 수 없었던 일을 그만두고, 통신사 편집부로 옮겼다. 간혹 전화취재를 하긴 했지만 내근직이었다. 드디어 저녁이 있는 삶이 생겼다. 몸도 조금씩 건강을 되찾았다. 행복감과 안정감을 느낄 즈음 또 문제가 생겼다. 한 대학에서 김수영 시인의 시를 붙인 대자보와 관련된 기사를 데스크가 막았다.

"기획단계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기사인데 편집국장이 배포하지 못하게 막더라고요. 이유라도 설명해 주면 좋을 텐데 아무런 근거도 말해 주지 않았어요. 이런 조직문화에서는 오래 있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3개월만에 그만두고 싶었지만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이직자리를 알아보고 6개월 만에 그만뒀어요."

그 다음 직장은 잘 나가는 스타트업이었다. 좋은 글을 유료로 판매하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곳에서 에디터 일을 했다. 기자를 해봤으니 에디터도 할 수 있다고 믿었고 사람들도 좋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글을 편집하면서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다른 사람의 글을 편집하려니까 갑자기 내 글을 너무 쓰고 싶었어요. 사실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가진 꿈이 '죽기 전에 작품 하나 남기고 죽는 것'이었는데,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죽으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써 놓은 작품도 없는데... 마음이 너무 급해지더라고요. 회사에 '내 글을 쓰고 싶다'고 선언하고 11개월 만에 사표를 냈어요."

조금 급했다. 1개월만 더 있었으면 퇴직금을 받았을 텐데. 실업자가 되고 원칙 하나를 세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쓰고 싶은 글 쓰자. SNS에라도 글 하나씩은 올려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퇴직하자마자 청년들의 퇴사기를 모아낸 '월간퇴사'를 펴냈다. 그런데 막상 퇴사를 하니까 자신의 적성은 다른 데 있다는 걸 깨달았다. 글 쓰는 것보다 '일을 저지르는 것'이 더 맞았다.

청년들이 퇴사를 많이 하는 이유가 윗세대가 만든 조직문화 때문이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지금 청년세대가 뒷세대에게 전달할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겠다 싶어 '요즘 젊은 것들 연구소'를 차렸다. 자신은 소장 직함을 달고 지인 두 명을 포섭해 연구원1, 연구원2를 맡겼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서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으로 관심을 돌린 순간이다. 

물론 곽승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본인의 의지 덕분이라기보다 자신을 둘러싼 조건, 즉 '운'이 좋아서다.  

"제 또래는 항상 뭘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요. 공부, 취업... 그래서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라요. 정말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충분한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잖아요? 전 가족이라는 뒷배가 있어서 할 수 있었어요. 부모님이 집이 있고 일을 하셔서 제가 부양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런데 저처럼 운이 좋은 사람이 많이 없어요. 이런 행운과 기회를 혼자 누리는 건 공정하지 않은 것 같아요. 국가가 시스템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동네 정치,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만들어야"

공룡탈을 쓰고 선거운동 중인 곽승희씨. 억지로 명함을 떠넘기는 선거가 아니라 모두가 즐겁고 눈을 마주치는 선거운동을 꿈꾼다.
▲ 금천구 무소속 구의원 예비후보 곽승희 공룡탈을 쓰고 선거운동 중인 곽승희씨. 억지로 명함을 떠넘기는 선거가 아니라 모두가 즐겁고 눈을 마주치는 선거운동을 꿈꾼다.
ⓒ 곽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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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도록 보장하는 국가적 시스템. 그 막연한 욕구가 그녀를 정치로 이끌었을까? '정치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곽승희는 어느 날 갑자기 구의원 출마를 선언했다.

"이런 저런 일을 하면서 책 읽고 토론하는 모임에 갔는데 '왜 정치적 표현을 투표로만 생각하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왜 우리가 직접 나가면 안 되는 거지? 우리가 나가자!'는 뜻을 모았어요. 이게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에요. 모임에 참여하던 사람들과 SNS 공지글을 보고 온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5명이 출마를 결심했어요."

경험도 없고 조직도 없다. 물론 돈도 없다. 곽승희씨를 비롯해 출마를 결심한 사람들 대부분이 혼자서 고군분투중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알릴 방법이 막막했다. 눈에 띄는 색으로 선거복을 만들고 예쁜 배지를 직접 바느질해 주렁주렁 달았다. 뭐라도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그동안 선거하는 걸 보면 받든 안 받든 일단 명함을 억지로 막 줘요. 행사하는 곳에 억지로 들어가서 악수하고. 저는 저에게 눈을 마주쳐 주는 사람에게만 명함을 드려요. 명함을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즐거운 선거운동을 하고 싶으니까요. 선거 때만 후보들이 보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니까 사람들이 정치를 혐오하는 게 아닐까요?"

어느 날은 공룡탈을 쓰고 동네를 나선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면 부모들도 즐겁게 명함을 받아준다. 늘 차고 다니는 머리띠를 보고 사람들이 웃을 때 인사하면서 명함을 주면 기분 나쁘지 않게 받는다. 부모님을 잘 만난 행운에 자신이 누리고 있는 지난 1년 간의 호사처럼, 구의원이 되면 주민들이 자신과 같은 호사를 누릴 수 있는 판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고 다닌다. 

"당선 가능성이요? 어떤 분은 0.000001퍼센트라고 해요. 그런데 전 '작은 일에 정성을 쏟으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을 믿어요. 당선 가능성보다 이런 활동이 세상을 좀 더 좋게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좋은 말이다. 그러나 퇴직금으로 버티고 있다는 곽승희씨가 언제까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녀 역시도 현실의 한계가 오지 않을까?

"미래요? 그건 생각하지 않아요. 생각해봐야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에 지금의 행복을 유예하면서 살기에는 인생이 아까워요. 물론 돈이 필요해 지면 무조건 돈을 벌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요."

해맑게 웃으며 헤어지는 그녀에겐 에너지가 넘쳤다. 당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은 아니었다. 작지만 언젠가는 곧 세상을 바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행복감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였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 삶이라면 '알 수 없는 미래'도 그와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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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곽승희, #무소속, #지방선거, #청년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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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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