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생, 한국 나이로 마흔 살이 된 노장 공격수의 골 폭풍이 K리그를 흔들고 있다. 어지간한 선수라면 축구화를 벗고 벌써 은퇴했을 나이지만 조카뻘 후배들과 함께 경쟁하면서도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이는 선수, 바로 이동국(전북)의 이야기다.

어느덧 'K리그 현역 최고령 선수'가 된 이동국이지만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활약은 아직 전성기다. 이동국은 올 시즌 12경기에서 나서서 벌써 9골을 넣었다. K리그에서만 5골을 기록하며 득점 5위다. 부동의 리그 선두팀이자 아드리아노-김신욱 등 쟁쟁한 후배 공격수들까지 동료로 포진한 전북에서 당당히 팀 내 득점 선두다.

이동국은 지난 2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과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 출전하며 29분 승부에 쐐기를 박는 추가골을 터뜨렸다. 전북은 3-0으로 대승을 거두며 8연승의 고공비행과 함께 독주체제를 굳건히 했다. 마침 이날은 이동국의 39세 생일이기도 했다. 이동국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K리그 통산 최다 득점기록을 207골로 늘리며 리그 득점왕 경쟁에도 뛰어들었다.

유독 월드컵에서 불운했던 이동국, 이번에는

이동국 '골' 29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 하나은행 K리그 2018 전북 현대와 수원 삼성의 경기. 전북 이동국이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2018.4.29

▲ 이동국 '골' 29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 하나은행 K리그 2018 전북 현대와 수원 삼성의 경기. 전북 이동국이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2018.4.29 ⓒ 연합뉴스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이동국의 눈부신 활약이 연일 이어지면서, 어느덧 약 50일 앞으로 다가온 러시아 월드컵에서 이동국의 발탁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센추리 클럽' 멤버인 이동국은 태극마크를 달고 통산 A매치 105경기에 출전하여 33골을 넣었다. 현역 선수로만 국한하면 대표팀 최다골 기록이다.

이동국과 월드컵의 관계는 '애증'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월드컵에 대한 이동국의 추억도, 그런 이동국의 활약을 지켜봐 온 팬들의 시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동국은 19살이던 1998년 프랑스월드컵 대표팀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당시 차범근 축구대표팀 감독은 K리그 포항의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과 AFC U-19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견인하며 맹활약한 이동국의 잠재력에 주목하며 과감하게 그를 A대표팀에 승선시켰다. 이동국은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이던 네덜란드전에서 교체출전하며 처음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비록 경기는 0-5 참패하며 한국 축구에 아픈 기억을 남겼지만 유망주 이동국이 경기 막판 보여준 과감한 플레이는 그나마 미래를 기약하게 하는 위안이 됐다.

이동국은 이후 대한민국을 이끌 차세대 스타로 성장하며 기대에 부응했지만 정작 월드컵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막판까지 유력한 발탁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당시 황선홍, 최용수, 안정환 등 쟁쟁한 선수들이 넘쳐나던 공격진의 경쟁을 이겨내지 못하고 탈락하며 월드컵 4강 신화를 밖에서 지켜봐야했 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동국의 제외한 배경을 두고 한동안 '게으른 천재'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지는 등 월드컵 이후에도 후유증이 적지 않았다.

월드컵과의 악연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조 본프레레와 딕 아드보키트 감독 체제에서 모두 전폭적인 신임을 얻으며 주전 기용이 유력했으나 대회를 두 달 남긴 4월, 리그 경기 도중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중상을 입으며 끝내 월드컵을 포기해야 했다. 4년 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기어코 12년 만에 본선 무대를 다시 밟는 데 성공했지만 교체 출전했던 16강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막판 결정적인 동점 찬스를 '물회오리슛'으로 날리며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불혹' 이동국은 여전히 최고의 기량, 가능성은 있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최강희 감독이 이끌었던 지역 예선까지는 부동의 주전으로 중용됐으나 홍명보 감독이 본선 지휘봉을 잡은 이후로는 더 이상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신태용 감독은 작년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이동국을 3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시키며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를 일궈냈지만 이후로는 이동국을 발탁하지 않고 있다. 신감독은 "이동국을 아름답게 떠나보낼 때가 됐다"고 주장하며 러시아월드컵에서는 이동국을 데려갈 의지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동국은 월드컵 본선에 두 번이나 출전했지만 실제 경기에 나선 것은 교체로만 3경기에 불과하고 공격포인트는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다. 출전시간을 모두 합쳐도 51분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신체적으로 가장 전성기여야 했을 20대에 두 번의 월드컵 출전기회를 날린 게 뼈아팠다. 이동국의 실력과 명성에 비교하면 월드컵에서만큼은 '비운의 선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이유다. 이동국의 나이를 감안할 때 2018 러시아월드컵은 이동국이 본선무대를 밟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물론 월드컵이 이동국 선수 개인을 위한 '한풀이' 무대가 될 순 없다. 이동국이 그간 숱한 기회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은 본인의 한계라는 지적도 있다. 선수 전원이 유기적으로 공수에 가담하고 포지션 스위칭과 활동량을 요구하는 신태용 축구의 특성상 이동국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현재 이동국이 나이나 과거 경력과는 별개로, '지금 현재도'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과연 국내나 해외파를 통틀어 지금의 이동국보다 더 뛰어난 골감각을 보여주는 공격수가 얼마 없다는 것은 분명히 생각해 볼 문제다.

한국축구에서 러시아 월드컵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공격수는 부동의 '에이스' 손흥민(토트넘)을 필두로 황희찬(잘츠부르크). 김신욱(전북), 이근호(강원) 등이 꼽힌다. 석현준(트루아)이나 지동원(다름슈타트)도 아직 가능성이 열려있다. 이들에 비하여 이동국의 강점은 뛰어난 위치선정과 간결한 원터치 플레이를 통한 골 결정력, 그리고 풍부한 경험이다.

팀 내 베테랑으로서 분위기를 잡아주는 역할도 기대

이동국 '골' 29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 하나은행 K리그 2018 전북 현대와 수원 삼성의 경기. 전북 이동국이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2018.4.29

▲ 이동국 '골' 29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 하나은행 K리그 2018 전북 현대와 수원 삼성의 경기. 전북 이동국이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2018.4.29 ⓒ 연합뉴스


아무래도 노장인 이동국에게 90분 내내 강한 압박과 수비가담, 활동량 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선수마다 장단점이 다른 것은 마찬가지다. 김신욱은 제공권이 좋지만 느리고, 이근호와 지동원은 연계능력에 비하여 골 결정력이 부족하다. 손흥민조차도 기복이 심하고 전형적인 중앙 공격수가 아니라는 약점이 있다. 하지만 축구는 완벽한 조건을 지닌 선수들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스타일을 지닌 선수들의 장점을 끌어모아 최상의 조합을 맞추어가는 데 묘미가 있는 스포츠다.

이동국이 최근 선발이라기보다 '슈퍼서브'로서 더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이동국은 올 시즌 선발로 출전한 것은 2경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교체로만 10경기에 나서서 6골을 넣었다. 평균 50분당 1골을 넣었다. 슈퍼서브는 반드시 득점이 필요한 경기 후반에 투입되어 짧은 시간에 분위기를 바꿔야 하는 선수다. 기존에 감독이 전술적으로 선호하는 선수가 아니더라도 주전들과 차별화된 장점이 필요하다. 찬스를 골로 결정짓는 확률에서 이동국만한 카드는 여전히 흔치 않다.

경기 외적인 면에서도 이동국은 팀내 최고참이자 월드컵 경험을 갖춘 베테랑 멤버로서 후배들을 아우르며 팀의 무게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리더십을 기대할만하다. 대표팀은 주장 기성용(스완지)과 함께 팀 분위기를 이끌어줄 베테랑이 부족하다. 원정 16강을 이끌었던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허정무 감독이 실제 경기 출전 여부와 별개로 안정환, 이운재, 김남일 등 베테랑 선수들을 대거 선발했던 것이나, 반대로 4년 뒤 브라질월드컵에서 홍명보 감독이 30대 이상 베테랑 선수들을 거의 발탁하지 않아 경험과 위기관리능력에서 한계를 드러냈던 장면은 신태용호에게도 좋은 교훈이 될 만하다.

물론 이동국의 발탁 여부는 전적으로 신태용 감독의 선택이다. 그러나 선수를 판단하는 기준은 나이나 리그, 기존의 이름값도 아닌 오로지 실력이 되어야 한다. 이동국이 지금도 국내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라는 것은 엄연한 '팩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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