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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곤조곤'은 책과 영화, 드라마와 노래 속 인상적인 한 마디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무심코 스치는 구절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이야기로 풀거나, 그 말이 전하는 통찰과 질문들을 짚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가끔 그런 질문을 받는다.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냐고. 그럴 때면 나는 웃으면서 말한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라고. 진심이다. 내겐 정말 그런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20대 초반, 그는 페미니즘이 편향된 사상이고 성소수자, 특히 동성애자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존재라고 여겼다. 단지 생각할 뿐만 아니라 말도 했다.

그 친구는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드러내는데 거침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는 신념뿐만 아니라 감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살면서 그렇게 속이 투명하게 보이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나쁜 쪽으로든 좋은 쪽으로든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사람. 부러웠다. 그래서 좋기도 했다. 비록 성소수자들을 혐오하긴 했지만, 솔직히 나는 친구로서 그를 잃고 싶지 않았다.

왜 유독 그에게만 커밍아웃 하지 못했을까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에서, 그런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아픈 티를 낼 수가 없다.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에서, 그런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아픈 티를 낼 수가 없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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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군대에 갔다 온 2년 후 나는 엄청난 소식을 들었다. 그 사이에 친구는 열렬한 페미니스트가 되어 있었고 성소수자의 존재를 긍정하며 적극적으로 혐오와 맞서 싸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주변에 성소수자인 친구들도 늘었고 심지어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의 변화를 보고 희망을 얻었고 내심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쾌재를 불렀다.

'만세, 이제는 너에게도 내가 게이인 걸 말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대목에서 발목이 잡혔다. 그가 자기 안의 혐오를 인식하고 스스로가 틀렸음을 깨닫게 된 날, 다른 성소수자 친구들에게 이를 고백하며 엄청나게 울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그 말을 듣던 순간에 나는 고백을 멈칫했다.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도, 나와 그 친구 모두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도, 심지어 아예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이후에도 난 그에게 직접적으로 내가 동성애자라고 말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친구가 어느 정도 눈치를 챈 순간에도 말이다. 이유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왜 유독 그 친구에게만 커밍아웃을 하지 못하고 있는지. 무엇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지.

얼마 전 임솔아 시인의 시 <대신>을 읽다가 그 궁금증이 다시금 떠올랐다. 시인은 이렇게 적었다.

'기억 속에서/ 나는 울고 있지만 사진 속에서/ 나는 웃고 있다.'

돌이켜 보면 그 친구는 내가 정말 신기했을 것이다. 친구에게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에 가득 찬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비판을 할지라도 상처 받은 기색은 전혀 비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당사자임에도 말이다. 솔직히 아주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시에 등장한 저 문장처럼, 그때의 나는 속으로 조금은 울고 있었지만 심지어 얼굴로는 웃기까지도 했다. 왜 그랬을까.

혐오를 마주한 사람들의 생존 본능 같은 것

사실 그건 성소수자들에겐 생존 본능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에서, 그런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아픈 티를 낼 수가 없다. 왜? 당사자임이 들킬 수 있으니까. 그러면 증오의 말이 다음에는 직접적으로 나를 겨냥할지도 모르니까. 화가 나도, 슬퍼도, 어이가 없어도 우리는 침착해야 한다.

잘못임을 지적할 때도 절대로 흥분하거나 감정을 드러내선 안 된다. 물론 나는 이제 공개적인 커밍아웃을 했고 그래서 이전처럼 감정을 숨길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랜 시간 속에서 습관으로 굳어진 걸까? 나는 아직도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멸시가 담긴 이야기를 들어도 나도 모르게 부드러운 어조로 웃으며 답을 하곤 한다. 솔직히 그럴 때마다 내 얼굴을 주먹으로 뭉개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 나는 친구의 기억 속에서 그 순간에도 별다른 흔들림 없이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던 사람으로 계속 남고 싶었다. 사실은 내가 울고 있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이건 단지 좋은 모습으로만 기억되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참회와 개심의 눈물을 흘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게 두려웠던 것 같다. 그 친구가 나에게 미안해하는 것. 지난 일을 후회하는 것. 그가 나를 볼 때마다 내가 받은 상처를 떠올리는 것. 그러니까 나는 친구에게 죄의식의 상징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제야 겨우 나는 그에게 사회적으로 불편한 존재가 되지 않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불편함을 불러오는 사람이 되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보면 즐겁고 재밌는 친구이고 싶었다. 너무 큰 욕심이었을까.

미로와 같은 벽을 허물고

참으로 이상한 상황이다. 일이 이렇게 된 건 내가 가지고 있는 강박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 평범한 친구, 결점이 없는 인간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이 있다. 왜냐면 내가 동성애자인 것을 단점이라고 보지 않지만 사회생활을 할 때에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자주해왔기 때문이다.

핸디캡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밀려왔다. 그래서 늘 편안한 사람, 일말의 불편함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최근에는 그 굴레를 벗어나려 노력 중이지만 이미 몸에 익은 탓인지 쉽지가 않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전히 속으로 감추는 것도 적지 않고 얼굴은 느끼는 것과 정반대의 표정을 지을 때가 많다. 주변에 사람은 많지만 외로움과 허무함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얼마 전 용기를 내서 이 모든 것을 친구에게 말했다. 그리자 그는 말해주었다. 괜한 걱정이라고.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이가 이전과 달라지진 않을 거라고. 다른 사람이라면 믿지 못했겠지만, 친구의 말이기에 나는 신뢰했다. 그는 아니라면 아니라고 말을 할 사람이니까. 그 모든 걸 듣고 내심 안 좋은 감정이 들었다면 절대로 유쾌한 표정을 얼굴에 지을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여전히 부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의 벽이 허물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성소수자라는 것에서 출발한, 사람들을 향해 마음을 여는 걸 막아서던 복잡한 미로와 같은 벽 말이다. 친구가 그런 것처럼, 그날 내가 그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사람들을 믿고 조금 더 진솔하게 나를 드러내고 싶다. 그래도 사람들은 주변에 있어줄 것이다. 그 친구와 내가 이전과 다름없는 사이인 것처럼. 마지막으로 그에게 말하고 싶다.

"고마워, 곁에 남아 주어서."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임솔아 지음, 문학과지성사(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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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은경의 그림책 편지'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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