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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온라인 강의업체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던 장민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유가족은 장씨가 숨지기 직전 잦은 야근과 과도한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이 때문에 우울증이 악화됐다고 주장합니다. 36살 젊은 장씨에게 '과로 자살'의 그림자가 있었다는 겁니다. 공인단기·스콜레 웹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는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는 왜 힘들어 했는가' 기획 연재를 통해 한 노동자의 사망에 얽혀있는 이면의 문제를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지난 4월17일부터 에스티유니타스 회사 앞에서 1인시위가 시작되었다
 지난 4월17일부터 에스티유니타스 회사 앞에서 1인시위가 시작되었다
ⓒ 공인단기·스콜레 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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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공단기·영단기 등으로 유명한 온라인 교육 업체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일하던 웹디자이너가 살인적인 업무량과 야근 등을 호소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공인단기·스콜레 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가 출범했고, 에스티유니타스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이 실시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수시로 과로로 인한 자살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지만, 정작 과로 자살이 산업재해로 인정되기는 쉽지 않다. 자살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산재 승인 건수가 단 43건으로 전체 149건의 신청 중 승인율이 28.9%에 불과하고, 50% 안팎인 전체 질병에 관한 평균 산재 인정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아래에서는 '과로 자살'이 산업재해로 인정되기 어려운 문제점과 대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한국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은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여, 원칙적으로 '과로 자살'을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하고 있다. 이처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자살을 업무상 재해에서 제외하고 있으므로 과로 자살이 있어도 유가족은 산업재해 신청을 할 엄두조차 못 낸다.

다음으로, 한국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2항 단서는 "다만, 그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예외적으로 '과로 자살'이 같은 법 시행령 제36조에 따라 "1.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2.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3. 그 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 세 가지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산업재해가 된다.

위 단서 규정이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원칙에 대한 예외 규정이다 보니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라는 엄격한 인정요건을 두고 있는 것도 모자라, 자살이 업무상 사유로 인한 것임이 '의학적으로 인정'되어야 과로 자살도 산업재해로 인정된다. 따라서 유가족들은 과로 자살이라고 산업재해를 신청해도 의학적 입증이 어렵다보니 대체로 보상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사유들로 유가족들은 과로 자살에 대한 산업재해 신청이 거부되면, 행정소송을 하게 된다. 대법원(대법원 2017. 4. 13. 선고 2016두61426 판결)은 "과중한 업무 및 그와 관련된 극심한 스트레스로 기존의 우울증이 재발되거나 악화되었고, 우울증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항에 처하여 자살에 이른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라고 하여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법원은 개별 사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 일관된 법적 기준이 필요한 실정이다.

현재 한국에는 '과로 자살'에 대한 개념도 없다. 한국과 같이 장시간 노동 등 과로가 심각한 일본은 2014년부터 시행된 '과로사 등 방지대책추진법'에서 과로 자살을 '업무에서의 강한 심리적 부하에 의한 정신장애를 원인으로 하는 자살에 의한 사망'으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는 과로 자살에 대한 개념이 없으므로 근로자가 과로 자살을 하였어도 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에 따라 업무상 재해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급히 필요한 것은 '과로 자살'에 대한 정의 규정이다.

'근면'을 강조한 국가는 이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

지난 4월 5일 국회에서 공인단기·스콜레 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장향미씨는 동생의 유지를 이어갈 것이라는 다짐을 밝혔다.
 지난 4월 5일 국회에서 공인단기·스콜레 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장향미씨는 동생의 유지를 이어갈 것이라는 다짐을 밝혔다.
ⓒ 공인단기·스콜레 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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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앞서 든 자해행위의 업무상 재해 인정에 대한 엄격한 요건 규정의 완화이다. 과로 자살에 대한 의학적 입증 요건은 일반 의사들도 밝히기 쉽지 않은 의학적 입증을 당장 생계가 막막한 유가족더러 하라는 것이므로 의학적 입증 요건은 폐기되어야 한다.

또한 다른 원인으로 발생한 기존 정신질환이 악화되는 등의 사유로 과로 자살에 이르는 경우도 있으므로 반드시 업무상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정신이상상태가 발생하여야 한다거나 업무상 재해로 요양 중이어야 한다는 요건도 폐기되어야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 제도의 문제점으로 늘 지적되는 입증책임의 전환도 과로 자살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대책이다. 저 까다로운 요건들을 입증하기가 쉬운 것이 아니므로 - 의학적으로 입증하라는 것은 유가족에게 절대 불가능이다 - 산업재해보상의 요건사실들에 대한 입증책임만 전환되더라도 유가족들이 과로 자살을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데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이미 한국은 자살이 사망원인 5위이고, OECD 국가 중 자살률은 거의 최고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절실한 것은 과로 자살을 예방하고 과로 자살을 막기 위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발생한 과로 자살 유가족을 구제하는 것도 사전 예방만큼 중요하다.

자살을 사회적으로 불온한 것으로만 여기는 분위기 때문에 여전히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일하다 업무에 대한 압박과 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과로 자살 노동자들의 유가족들은 한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생계까지 잃어버리고 주위의 시선들에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한다. 국가가 노동자를 '근로자'로 정의하여 '근면과 성실'을 장려해 왔다면, '근면과 성실'로 인해 생을 스스로 마감한 사람들도 구제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는 왜 힘들어 했는가]
프롤로그 : '야근 근절' 동생 유언 지키려 1인 시위 나선 언니
① "야근 없는 일터, 제가 동생 유지를 잇겠습니다"
② 출근길, 나는 생각했다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
③ 야근, 과로, 감정노동... 내 우울증은 '회사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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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병욱 님은 법무법인 송경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입니다. 공인단기·스콜레 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에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태그:#과로자살, #디자이너, #산업재해 , #공인단기, #에스티유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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