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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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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판문점 정전회담장. 문산으로 향하는 길이다. 회담을 마친 대표들은 헬기로, 기자단과 회담 준비요원들은 버스를 이용해 문산이나 서울로 철수했다. 원래 이곳은 초가집 세 채와 주점이 있었던 자그마한 마을로 애초 널문리였다. ⓒ 조지 풀러 / 눈빛출판사
1952. 4. 널문리. 초가집에서 바라본 판문점 정전회담장(왼쪽 흰색이 공산 측 막사, 오른쪽 검은 색이 유엔군 측 막사). ⓒ NARA
널문리. 내 이름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순전히 임금 때문에 붙여졌다는 설이다. 옛날 옛적 일이다. 어느 임금이 이곳을 지나 강을 건너가야 했다. 다리가 있나 뭐가 있나, 지나갈 방법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겠지. 하지만 임금은 결국 강을 건넜다. 어떻게? 백성들이 제집 대문을 뜯어 다리를 만들었다. 그 후 나는 판자(널) 문으로 다리를 놓았다고 해서 널문리가 됐다. 전설처럼 붙여진 이름이다. 또 하나는 근처 사천강에 널빤지 다리가 있어 널문리라 불렀다는 말도 있다. 다리가 있었거나 다리가 되어줬거나 뭐가 됐든, 잇는 역할이 내 사명인가 싶은 이름이다.

사람들을 잇는 역할도 했다. 먹을 게 마땅치 않아도 주위에 사람들이 모였다. 동네 술도가에서 탁주를 받아다 파는 주모가 가게를 꾸려갔기 때문이다. 조선 초기에는 중국 사신이 한양으로 가기 전에 잠시 쉬는 주막이기도 했다. 그렇게 주막은 한 개 두 개 늘어나 마을을 이뤘다. 안주래봐야 어쩌다 멸치나 콩자반이 전부였다. 마침 바로 앞이 콩밭이었다. '널문리 주막'으로 불리던 시기였다. 

침묵의 시간

이름이 바뀌었다. 세상이 두 동강 나고 나서다. 지나가던 나그네의 푸념과 동네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이야기가 총소리와 비명으로 뒤덮였다.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 여름이 됐다. 총부리를 겨누던 사람들이 화해하려는 건지 숨 고르기를 하려는지, 어쨌든 만났다. 바로 이곳 널문리 주막 앞 콩밭에서.

문제는 이름이었다. 중국 사람들이 내 이름을 한자로 고쳐 불렀다. 그 날 이후부터 판문점(板門店)이 됐다. 주막에서 천막으로, 천막에서 다시 나무 건물이 지어졌다. 하지만 더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다. 아주 소수만 왔다. 웃지도 않았다. 총을 들고 있었다. 어느 날 작은 책상에 사람들이 마주 앉았다. 웃지도 않고 악수도 하지 않고 심지어 서로 말도 안 했다.

이 무뚝뚝한 사람들은 한국어, 영어, 중국어로 인쇄된 휴전협정 조문을 주고받으며 서명했다. 딱 12분 걸렸다. 그리고는 각자 갈 길을 갔다. 여기는 모여서 술 마시며 하루의 고단함을 털어내던 곳이었는데 …. 전쟁은 서로의 말을 앗아가는구나. 서로를 눈도 마주치기 싫은 사람으로 만드는구나. 그 사람들을 보며 느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미루나무 판문점 제5초소에서 본 돌아오지 않는 다리. 왼쪽 UN측 초소 앞의 미루나무는 1976년 8월 18일 도끼만행 사건으로 인해 잘렸다. ⓒ 연합뉴스
고요한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8월, 더운 날이었다. 미루나무 한 그루를 두고 고성이 오갔다. 소매를 걷고 도끼를 들어 나무가 아니라 사람을 내리쳤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때다. 도대체 왜? 어떤 사람들은 나무 한 그루에서 시작했다고 하지만, 과연 미루나무가 문제였을까? 서로를 못 미더워하고 서로를 감시하고 서로를 노려봤던 그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폭발한 것 아닐까? 결국 이 나무는 잘렸다. 나무 하나를 자르려고 폭격기가 뜨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한 1m 되려나. 콘크리트 기둥 여러 개가 줄줄이 세워졌다. 군사분계선을 표시한다는 거 같았다. 서로를 향한 벽이 하나하나 많아지는 거 같았다.

벗어 던진 사람들

6월, 어느 날이었다. 모처럼 남쪽과 북쪽에서 사람들이 엄청 모여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려나, 서로 친하게 지내자고 약속을 하려나 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버스 한 대에서 8명의 사람이 내렸다. 좋아 보이는 양복을 빼입고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넘어갔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고기를 잡다가 배가 남한으로 넘어온 모양이었다. 서로 얘기가 잘 됐는지 다시 북으로 돌아가는 어부들이었다. 그렇게 8명의 어부가 군사분계선 상 남에서 북으로 한발 한발 걸어 나갔다.

어라? 사람들이 선물을 던졌다. 옷도 벗었다. 팬티만 빼고 모든 옷가지, 신발, 양복, 구두 모든 걸 남쪽으로 던져버렸다. 이상했다. 남쪽 사람이 '그 많은 선물을 가지고 갈 수 있겠냐'라고 물었을 때 '가족에게 선물로 가져다주고 싶다'라고 대답한 걸 내가 분명히 들었는데…그 사이 마음이 변한 걸까? 아까 슬쩍 본 장면이 마음에 걸렸다. 북한 장교 한 명이 어부들을 모아놓고 뭐라고 했는데, 그 말 때문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임수경 씨와 동행해 판문점을 넘어온 문규현 신부 89년 대학생으로 정부의 허락 없이 평양에 갔던 임수경 씨가 판문점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와야 할 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문규현 신부가 임수경 씨와 동행해 내려오도록 파송했다. 물론 신부는 자신이 보호하던 학생과 함께 옥에 갇혀야 했다.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자료사진
하나하나 되짚다 보니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빨간 티에 흰 바지를 입은 단발의 학생이었다. 한 신부와 손잡고 또박또박 한 걸음 한 걸음을 뗐다. 그렇게 북에서 남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울에서 출발해 일본 도쿄와 서독을 거쳐 북한으로 갔다는 이 여학생은 북에서 남으로 걸어왔다. 이름은 임수경이라고 했다. 공무원이나 예술단, 정부 관계자가 아닌 일반 사람이 이곳을 지나간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려면 일본과 독일을 돌아가야 하고, 바로 오려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 무엇이 이 사람들을 돌아가게 하는 걸까.

노인의 미소

북측지역에서 손 흔드는 정주영 명예회장 1998년 6월 16일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사무실을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땅을 밟은 정주영 명예회장 일행이 우리측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밝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정세영 현대차 명예회장, 이익치 현대증권사장, 정순영 성우명예회장, 정 회장, 남측 판문점 연락관. ⓒ 연합뉴스
금강산관광의 물꼬를 열은 소떼방북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001마리 소를 북한으로 보내면서 금강산관광의 물꼬를 열었다. ⓒ 현대아산
진귀한 풍경도 하나 있었다. 한 500마리 되려나. 50대의 트럭에 소가 가득했다. 충남 서산에서 경기도 파주까지 수백 마리의 소가 왔다. 할아버지 한 명이 소 떼를 이끌고 판문점(板門店)을 통과했다. 중절모를 쓴 이 노인의 표정이 묘했다. 환하게 웃었지만 어쩐지 눈물을 본 거 같았다. 노인은 뚜벅뚜벅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겼다. 15여 분 만에 수백 마리의 소 떼가 남에서 북으로 갔다. 언젠가 소가 아니라 수백 명의 사람도 서로서로 오갈 수 있을까.

미국 대통령이었다는 외국인 부부가 이곳을 거쳐 평양을 갔다 다시 이곳을 거쳐 서울을 갔다. 그리고는 한동안 잔잔했다. 평화는 아니었다. 언젠가 어디서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사람들은 총을 놓지 않았다. 자유롭게 이야기하거나 오가지도 않았다. 봄, 여름에도 따뜻하지 않았다. 이곳은 늘 살얼음판이었다. 

또다시 총소리가 들렸다. 지난해 겨울이었다.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았던 소리가 들려왔다. 탕탕탕 대여섯 번의 총 소리가 들렸다. 한 남자가 허겁지겁 남쪽으로 넘어왔다. 차를 타고 오더니 황급히 내리뛰다가 총을 맞고 쓰러졌다.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았다고 들었다. 무슨 이유가 있든 어느 쪽에서 살던 사람이든 일단 살아야 하지않겠나.

웃고 있었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판문점 현장점검 지난 4월 6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한 일행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인 판문점을 방문해 군사정전위회의실 내부 등 관련 시설들을 점검했다. ⓒ 청와대 제공
남북정상 산책로 '도보다리' 점검 지난 4월 6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인 판문점을 방문해 '도보다리' 등 각종 시설과 준비사항을 점검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사진 속 '도보다리'를 함께 산책할 예정이다. ⓒ 청와대 제공
봄부터 이곳이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봄맞이 대청소를 하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분주한 건 남쪽이었다. 공사를 하는 거 같기도 하고 조금씩 손을 보며 평화의 집이라 불리는 곳을 하나하나 고쳐 나갔다. 서로들 만나는 횟수도 늘어났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간간히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라? 꽃을 심고 물을 뿌리고 망치질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뭔가 들뜬 얼굴이었다.

이유를 알았다. 드디어 만난다고 한다. 남한의 대통령과 북한 위원장의 만남이다. 북에서 남으로 걸어오는지 차를 타고 오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곳에서 마주한단다. 남쪽 사람들은 계속 분주했다. 테이블을 닦고 또 닦고, 자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점심은 무엇을 먹는지부터, 카메라 각도까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웃고 있었다.

드디어 내 이름대로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임금을 강으로 건너가게 해줬든 술 한 잔으로 사람들을 이어줬든, 나는 늘 이어주고 싶었는데. 그게 참,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로를 겨눴고 고함을 질렀고 몇몇은 죽었다. 무엇을 위해? 이번에는 다를 수 있을까. 이 사람들의 웃음은 계속 될 수 있을까.

2018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 디저트 망고무스 ‘민족의 봄’ 추운 겨울 동토를 뚫고 돋아나는 따뜻한 봄 기운을 형상화한 디저트로 붐꽃으로 장식한 망고무스 위에 한반도기를 놓아 단합된 한민족을 표현하고 단단한 껍질을 직접 깨트림으로 반목을 넘어 남북이 하나됨을 형상화함. ⓒ 청와대 제공
정상회담 하루 앞둔 판문점 2018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나게 될 판문점에서 남북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2018 남북정상회담특별취재팀]
취재 : 황방열(팀장) 구영식 안홍기 유성애 신나리
오마이TV : 이승훈 김종훈 정교진 조민웅 김혜주
사진 : 권우성 유성호 이희훈
편집 : 박수원 김지현
그래픽 : 고정미

덧붙이는 글 | 참고서적 : <70년의 대화(새로 읽는 남북관계사)>(김연철 지음, 창비), (이문항 지음, 소화)

태그:#널문리, #판문점, #문재인,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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