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공식 포스터

▲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공식 포스터 ⓒ 일본 TBS 방송국


일본 드라마를 볼 때 느낄 수 있는 재미 중 하나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문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일본뿐 아니라 어느 외국 드라마를 봐도 이색적인 재미를 느끼겠지만, 속칭 일드(일본 드라마)의 그것은 여타 미드·영드 등과 층위가 다르다.

미드·영드나 그 외 지역의 드라마 등을 볼 때는 우리와 그냥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에 묘미를 느끼는 반면, 일드를 볼 때는 얼핏 우리와 같은 것 같으면서도 막상 파헤쳐보면 실상은 미묘하게 다른 요소요소들을 즐기게 된다. 다른 나라 드라마가 마냥 이국적이라면, 일드는 '이질적'이다. 그리고 그것이 묘하게 우리의 관심을 끈다.

일드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2016년 10월~12월)도 우리나라와 같은 듯 다른 문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두 명이다.

일단 한 남자가 있다. 자칭 프로 독신남이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비혼주의자(非婚主義者)들이 늘고 있는 추세이지만, 아직 그 앞에 프로(pro)나 전문(專門)이라는 말을 붙인 사람은 못 봤다. 바로 이러한 점이 일본 문화와 우리나라가 같은 듯 다른, 즉 이질감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다.

한편 한 여자도 있다. 번번이 정규직이 되는 데 실패하다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프로 주부가 된다. 우리나라는 사회 분위기상 이미 전업주부라는 말이 생경해졌는데, 일본은 경우에 따라서 주부라는 명사에 프로(pro)나 전문(專門)이란 말까지 가미하나보다. 또 한 번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프로 독신남과 프로 주부의 역설적 계약 관계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공식 포스터

▲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공식 포스터 ⓒ 일본 TBS 방송국


처지나 상황이 다른 것 같아 보이는 이 두 남녀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부끄럽지만 도망친, 그래서 스스로를 도운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남자는 연애에 서툴다. 사랑도 두렵다. 그래서 그는 이성과 사귀는 일 자체를 스스로 원천 차단하며 산다. 그는 '프로 독신남'이란 이름을 방패삼아 결혼으로부터 도망쳤다. 부끄럽지만 그것은 나름대로 그의 정신 건강에 꽤 도움이 됐다.

여자는 자신이 늘 "주제넘게" 행동한다고 자책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할 때 상사나 관리자들의 비위를 건드려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프로 주부'가 되는 계약 결혼을 한다. 부끄럽지만 그것은 나름대로 본인의 생계유지에 꽤 도움이 됐다.

그렇게 이 두 남녀는 결혼을 한다. 비록 애정이나 사랑에 기반을 둔 결혼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동거 혹은 사실혼을 빙자한 고용계약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결혼 덕에 여자는 주부라는 '일'을 하여 남자에게 편의로운 가정생활 제공하고, 남자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계약서대로 지불한다. 그렇게 서로는 서로를 도피처로 삼는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것이 서로에게 무척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피하지 말고 한번 제대로 부딪혀보라

그러나 이 드라마는 극이 진행될수록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온갖 에피소드들을 통해 보여준다. 오히려 피할수록 더 손해가 되는 상황들이 전개된다. 그리고 그 손해를 극복하기 위해 두 남녀는 변하기 시작한다.

남자는 자신의 진심대로 사랑을 표현하는 데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여자는 주부가 한낱 남편을 보조하는 가정 내 부속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려 애쓴다. 결혼 초기에는 피상적인 관계를 해치고 싶지 않아서 가급적 서로를 불편하지 않게 만들려던 그들이, 어느덧 차츰 불편한 말과 행동일지언정 그것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일본 드라마답게 가끔은 에피소드 전개가 답답할 정도로 느리고, 때로는 등장인물들의 반응이 너무도 소극적이어서 지루한 감이 있지만, 그래도 극의 후반이 될수록 더 이상 도망치지 않으려는 그들의 모습들 덕분에 마음은 훈훈해진다(갈등 단계마다 내용이 조금 더 자극적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역시 난 토종 한국인 시청자다).

사실 두 주인공 외에도 이 드라마에는 도피성 선택을 한 주변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진심으로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두려워 가벼운 연애만 반복하는 미남자, 혼기를 놓쳐 쉰 살이 다 된 탓에 자신을 사랑하는 연하의 남자를 마음껏 사랑하지 못하는 성공한 커리어 우먼,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하지 못한 채 맘에 둔 남자에게 고백을 망설이는 중년 남자 등등. 모두 자신이 가진 요소 중 무엇인가가 부끄러워서 도망쳐놓고 그것이 본인에게 도움이 된다며 자위하는 사람들이다.

일본의 사회 이슈들을 총망라한 드라마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영상 캡처

▲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영상 캡처 ⓒ 채널w / TBS


이 드라마는 일본 내의 사회적인 이슈들을 스토리의 주요 소재로 삼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성에게 관심이 적거나 전혀 없는 '초식남(草食男)'과 '절식남(絶食男)', 주부의 생산성을 정확히 반영하여 이를 금액으로 환산한 '전업주부 임금 문제', 또 '만혼(晩婚)', '성적 소수자', '취업난', '정리 해고' 등등 각종 사회문제가 일련의 스토리 안에 짜임새 있게 설치되어있다. 이들 사회 문제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존재하거나 점차 대두되는 것들로, 이 드라마를 통해 한국의 사회 문제 상황을 예견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드라마의 결론은 명확하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기만 할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드라마의 원제,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반어(irony)다. 드라마를 완주하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내 안의 무엇으로부터 도망친 적이 없는가. 있다면 돌아가 되찾아야겠다. 그래야 비로소 내가 덜 부끄럽고, 그것이 내 삶에 한층 도움이 되어 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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