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민중음악 창작 활동 30주년 기념 앨범 <사색 30>을 발표한 민중음악가 박종화. 광주 금남로에 있는 옛 전남도청 2층에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 펼침막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민중음악 창작 활동 30주년 기념 앨범 <사색 30>을 발표한 민중음악가 박종화. 광주 금남로에 있는 옛 전남도청 2층에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 펼침막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메일 사서함을 열었다. 겨우 이틀 확인하지 않았을 뿐인데 307개의 '읽지 않은 편지'가 밀린 숙제처럼 쌓여 있다. 지방선거 철의 월요일 아침을 실감한다.

선거 예비후보자들이 보낸 편지 다발 가운데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박종화, 민중음악가 박종화와 동명이인인가. 아니다, <투쟁의 한길로>  <바쳐야 한다>  <파랑새>  등을 작곡했던 그가 맞다. 얼마 전 그는, 민중음악 작곡을 시작한 지 30주년을 기념하며 앨범을 발표했다.

이번 편지에는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5월 4일부터 서예전을 연다는 소식을 담았다. 그리고 그에 앞서 <서예와 함께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 출판기념회를 광주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서 4월 28일 오후 5시 18분에 연다는 소식도 함께 담았다.

민중음악 창작 30주년 기념음반을 준비해서 발표하고, 서예전에 내보일 작품을 쓰고, 틈틈이 새 책을 집필하고... 보통사람의 부지런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그는 어떻게 해내는 것일까.

세 권 시집을 펴낸 시인이자 네 차례 전시회를 연 서예가인 박종화. 그래도 그의 이름 앞에는 '민중음악가'라는 소개가 붙을 때 더욱 매력적이다. 30주년 기념 앨범 만드느라 1년 6개월 동안 작업을 한 그는 "요즘 쉬는 시간을 갖고 있다"라고 했다.

하지만 쉬고 있지만 쉬는 게 아니다. "이제 어디에 눈을 돌려야 하나, 나의 음악진로는 어디에다 방점을 찍을까 서예전 준비하고, 책 내고 하면서 스스로 쉬어가는 시간을, 고민하는 시간을 벌고 있다"고 했다. 무수한 고민의 화두 중엔 '변화'라는 녀석이 제일 가까이 있다.

"세상이 변했으니 민중음악도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변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를 해야 한다. 변화가 무엇인가? 노래를 이쁘게 만드는 거? 세상 변했다고 민중가요 만들지 말고 모두 사랑노래만 불러야 하나. 그럼 '민중가요'라고 하지 말고 '대중가요'라고 하면 된다.

민중가요는 거리에서 만들어진 장르다. '민중'이 존재하는 한 민중가요, 민중음악은 영원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민중가요는 현장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광우병 사태 때 거리에서 불렀던 민중가요가 있고, 탄핵 촛불을 들고 불렀던 노래가 있다. 사람들은 현장이 생기면 현장에 맞는 노래를 찾는다. 그럴 동안 1년, 10년 또 20년, 30년 참으며 가는 것이다."

 민중음악가 박종화의 30주년 기념앨범 <사색30>.
 민중음악가 박종화의 30주년 기념앨범 <사색30>.
ⓒ 박종화 제공

관련사진보기


"우리 세대의 30년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사색 30>이라는 제목의 30주년 기념앨범을 만든 박종화. 그의 세대는 '반독재 민주의 시절'이었고, 그의 표현처럼 "굳건한 동지애로 의지할 데가 있던 시절"이었다. 그는 그렇게 그의 세대들과 함께 싸우고 의지하며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그때는 집회를 가더라도 눈빛이 달랐다. 그 당시를 담은 사진을 보곤 하는데 악착같이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사진으로도 다 보인다. 눈빛들이 살아 있다. 그런 눈빛의 사람들이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십만 명, 몇 십만 명이 함께 노래 부르면 그 노래가 민주화를 위한 무기이자 도구가 되었다. 그런 노래를 내가 만들었다는 정신적인 보람과 가치를 느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정신적인 보람과 가치를 느끼던 시절'은 오래 가지 않았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된 이후 그가 투쟁가를 만들라치면 '맨날 투쟁 타령이냐'는 힐난이 먼저 왔다. 또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물타기는 더욱 교묘해져 정작 그는 변한 게 하나도 없다고 느끼는데 사람들은 '민주화 됐다'고 말했다. 울컥해져서 혼자 노래하다가 우는 날이 많았다.

그의 노래로 위안 받고 힘을 얻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시절이 있었다. '민중음악가 박종화'는 누가 위로해 주었을까. 그 힘든 시절을 그는 어떻게 버텨냈을까.

"끊임없이 단순해지더라. 최면을 걸다시피 '오늘도 열심히 살자, 놀지 말자' 그렇게 하다 보니 1년, 10년, 30년이 되더라. 그래서 나이가 40대로 넘어가면서 내가 나를 치유하고, 내가 나를 위로하는 노래를 많이 만들었다. 기분이 좋더라."

이렇게 말하고선 그가 수줍게 웃었다. 수줍게 웃는 그의 모습이 그의 노래 <파랑새> 같았다. 사실 그의 노래는 매우 서정적인 노래가 많다. "반주할 악기가 변변치 않아서" 피아노 한 대로 끌고 간 노래가 <첫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파랑새>는 어떠한가.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 바쳐라(바쳐야 한다)" 하며 온 몸으로 포효하던 전사는, "푸른 하늘 좋다고 높이 높이 날던" <파랑새>의 접은 날개에 숨어 서럽게 운다.

 민중음악가 박종화는 네 차례 전시회를 연 서예가이기도 하다.   5월 4일부터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서예전을 연다. 사진은 출품작 가운데 하나.
 민중음악가 박종화는 네 차례 전시회를 연 서예가이기도 하다. 5월 4일부터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서예전을 연다. 사진은 출품작 가운데 하나.
ⓒ 박종화 제공

관련사진보기


학살자들과 싸우기 위해선 몸뚱어릴 내놓고 절규하는 수밖에 없었다. 투쟁가는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절규의 밑바닥엔 무엇이 있었던가. 소금보다 짠 눈물이 철철 흐르고 있지 않았던가. 말 머리를 돌려야 했다. <파랑새>는 남성인 그가 만들었지만 부르기는 여성 민중가수들이 더 많이 부른 걸 보면 노래 주인은 따로 있는 것 같다고 실없는 소릴 했다.

"민중가요에 주인이 어디 있나, 부르는 사람이 다 주인이지, 하하. 내 노래지만 <파랑새>를 부르는 사람마다 다 다르게 소화하더라. 가수마다 특성이 다 있으니까. 그래도 내 자식 같아서 다 나름대로 매력이 있더라. 하긴 주로 여성 가수들이 많이 부르긴 했다. 장사익 선생이 부른 후에 나도 가끔씩 불러본다, 하하."

자신의 노랠 함께 불러주고, 함께 시대의 질곡에 맞서 싸웠던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아따, 어렵다"는 대답이 먼저 돌아왔다.

"가끔씩 이런 이야기 많이 듣는다, '굳이 우리가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후회 아닌 후회의 말... 이 얘긴 꼭 해주고 싶다, 우린 정말 잘 살았다고. 열심히 살았고, 아낌없이 바치고 살았다고. 오늘 죽어도 후회 없다면 덤으로 사는 것이다. 악착같이 살고 내 나라, 우리 민중 위해 기술이든 예술이든 뭐가 됐든 거름이 되게 살면 그건 또 하나의 보람된 삶이 아닌가. 실은 이건 나에 대한 최면이기도 하고..."

다시 오월이 다가오는 금남로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진을 한 장 찍자고 부탁했더니 하필이면 그가 고른 자리에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를 옮겨 적은 펼침막이 걸려 있다. "사람들이 자꾸 웃으면서 사진을 찍으라는데 잘 안 돼"라며 어색해 했다. 몇 마디 말을 붙였더니 편안해지며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그리고선 꼭 덧붙일 말이 있다고 했다.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민중을 노래하는 민중가요, 애정 가져주면 좋겠다. 더 많이 들어주고, 더 자주 불러주면 좋겠다. 예전에 많이 불렀다고 너무 식상해 하는데 요즘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변한 것 하나 없이 절박하게 자기 심정을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토록 절박한 심정을 일일이 다 접할 기회가 없다. 그나마 그 절박한 심정들 대변하는 노래가 민중가요니 유투브에 민중가요 신곡 나오면 들어봐 달라. 또 책 사러 갔다가 민중가요 음반도 사주고... 이렇게 서로 힘을 얻으면 좋겠다."

유투브에서 민중가요 신곡 듣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오늘 밤엔 유투브에서 <파랑새>를 찾아 틀어놓고 소주 한잔 마셔야겠다. 첫 눈이 내리던 날 만나기로 했던 '꼬마'는 어느 별 아래서 '못 다한 사랑, 못 다 이룬 약속'에 울고 있을까. 갈 길 아직 멀다. 여전히 '나는, 나답게' 살아가야겠다.

덧붙이는 글 | 민중음악가 박종화는 4월 28일(토) 오후 5시 18분에 ‘광주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서 <서예와 함께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 출판기념회를 연다. 그리고 오는 5월 4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제 10옥사에서 <영상과 함께하는 박종화 서예전 - 임을 위한 행진곡> 전시회를 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