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화

인천경기

포토뉴스

고양생태공원 정화지 ⓒ 고양생태공원
고양생태공원은 일산신도시를 조성할 때 버려졌던 나대지에 만들었습니다. 나대지는 이름 그대로 아무것도 없이 그냥 땅만 있는 곳을 의미합니다. 그런 곳에 생태공원을 조성하면서 12가지 주제를 선정해 풀과 덤불, 나무들을 식재했습니다. 나무는 작은 나무부터 큰 나무까지 다양한 종들을 옮겨 심었습니다. 야생화 군락지를 조성했고, 바위로 된 암석원도 조성했습니다.

어린 나무는 해가 갈수록 성장해 아름드리가 될 것이고, 풀과 덤불, 야생화들은 질긴 생명력과 함께 놀라운 번식력을 보여주면서 우리 공원을 풍부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가장 큰 걱정은 새들이었습니다. 새가 없는 생태공원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우리 공원에 텃새나 철새들이 찾아와 보금자리를 만들어 번식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말처럼 간단하거나 쉬운 일은 아닙니다. 새들에게 새로운 생태공원이 생겼다고 알릴 방법이 없어서 어떻게 하면 새들이 찾아오는 공원으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새들이 깃들 수 있을까, 참으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다가 주목한 것이 물입니다. 어디든 생명이 깃들려면 물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것도 그냥 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물이어야 합니다. 곤충이나 물고기들이, 수생식물들이 살 수 있는 생명을 담거나 담을 수 있는 물이어야 합니다.
고양생태공원 정화지 ⓒ 고양생태공원
나대지에 그런 물이 있을 리 없습니다. 없으면? 만들어야죠. 생태공원답게 최대한 자연과 가까운 인공 연못을 조성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고양생태공원에 정화지와 계류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정화지는 연못의 형태로, 계류는 흐르는 계곡의 형태로 우리 공원에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계류 중간에 작은 연못을 3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한 곳을 더 보탤 수 있는데, 바로 부들의 천국인 부들연못입니다.

우리 공원의 정화지와 작은 연못, 계류는 각기 독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물길로 이어져 있습니다. 부들연못도 마찬가지입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기 때문에 물은 끊임없이 흘러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안에 생명을 담을 수 있고, 생명이 그 안에서 삶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공원의 계류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를 수 있게 했고, 모양도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자연스럽게 물길이 구부러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최대한 자연 하천을 닮은 모양이 되도록 한 것인데 그 이유는 물이 흐르면서 자연정화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정화지 조류관찰대 ⓒ 고양생태공원
고양생태공원 정화지 ⓒ 고양생태공원
물이 흐르기만 한다고 자연정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수식물이 필요합니다. 부들, 갈대, 억새와 같은 정수식물을 식재하는 것은 물이 흐르면서 자연 정화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정화지와 계류를 흐르는 물은 지하수입니다. 하루에 일정량을 펌핑하여 정화지, 계류, 생태연못, 부들연못을 휘돌아 다시 정화지로 퍼 올려 흐르게 합니다. 물은 생명이고 자연은 순환이니까요.

비가 많이 오면 어떨까요? 정화지나 계류의 물이 갑자기 불어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지면 물이 불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렇다고 정화지나 계류가 흘러넘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공원과 연결된 대화천으로 불어난 물이 흘러 나가기 때문입니다. 대신 수량이 불어난 만큼 흐르는 속도가 빨라질 수는 있습니다.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정화지, 연못, 계류의 물 깊이는 다릅니다. 같은 정화지도 가운데와 가장자리의 수심이 다릅니다. 가장자리는 얕지만 중심은 제법 깊습니다. 정화지에서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은 2미터 남짓 됩니다.

물 깊이가 다르다는 것은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수생식물이나 생물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얕은 곳에 사는 식물이 있고 깊은 곳에 사는 식물이 있으며, 얕은 물에 깃드는 어류와 깊은 물에 깃드는 어류가 있습니다. 수생곤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다양한 종을 유치하려면 수심이 달라야 합니다. 그런 점을 고려해서 수심을 조정했습니다. 계류나 작은 연못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들 전용인 부들연못은 다릅니다. 깊이가 일정합니다.
수련 ⓒ 고양생태공원
정화지 등에 연꽃과 수련을 집어넣었고, 수초들도 옮겨 심었습니다. 부들, 억새, 갈대 등도 심었습니다. 물을 자연정화하면서 수생곤충들이 모여들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 것이죠.

그 다음에 무엇이 필요할까요?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면서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와 같은 어족자원입니다. 텃새나 철새를 우리 공원으로 불러들이려면 그들의 먹이가 필요합니다. 먹을 것이 없는 곳에 새들이 모여들 리가 없습니다.

인공 정화지와 계류에 어족자원이 풍부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새들은 날개가 있어 어디든 마음대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먹이가 풍부한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단 자연 상태에서 강제이주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물고기들은 다릅니다. 지느러미가 있어서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지만 그것은 물속에서만 가능합니다. 물고기들은 살기 좋은 환경의 인공연못과 계류를 만들었다는 소문을 들어도 이동통로가 되는 물길이 없다면 마음대로 이주할 수 없습니다. 대신 강제이주가 가능합니다.

고양생태공원에 정화지와 부들 연못, 작은 연못, 계류를 조성한 뒤에 물고기 강제이주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물고기들을 데려와야 할까요?
꾀꼬리 ⓒ 조병범
고양시에서 가장 물고기가 많이 사는 곳은? 장항습지, 가까운 공릉천? 이런 곳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곳에 어족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함부로 물고기를 잡으면 큰일 납니다. 보호 어종을 잡다가 걸리면 경찰 아저씨가 보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은 꿈도 꾸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물고기를 떼로 데려올 수 있는 곳이 고양시에 딱 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일산호수공원입니다. 이곳은 일산신도시를 건설할 때 조성한 인공호수로 고양시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호수 면적이 300,000㎡, 담수량이 453,000천㎡인 일산호수공원은 어족자원이 풍부합니다. 붕어, 피라미, 몰개, 밀어 등등을 포함한 다양한 어족자원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를 우리 공원으로 강제이주 시켰습니다. 2012년이었습니다. 붕어 몇 마리, 피라미 몇 마리 이렇게 물고기 종류를 가려서 강제이주 시키면 좋지만, 그건 처음부터 불가능했습니다. 누가 몇 마리나 사는지 알 수 없기도 하거니와 호수 속은 수족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빽빽도요 ⓒ 조병범
뜰채로 뜨는 방법 외에는 없었습니다. 뜰채로 떠서 옮기면서 이주하는 물고기가 몇 마리인지, 몇 종인지 확인하지 못했고,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는 것만 기억합니다.

넓디넓은 호수공원에서 살던 물고기들이 좁은 우리 공원에서 적응하느라고 한동안 고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넓은 물에서 살다가 강제이주 당한 뒤에 좁다고 툴툴거리면서 불평하는 물고기들도 있었을 겁니다. 떠나온 호수공원을 그리워하는 물고기도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적응하고 살아야죠.

강제이주 당한 지 5년이 넘었으니, 공원 원년 이주 물고기 가운데 살아남은 게 그다지 많지 않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부는 새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일부는 지난겨울의 매서운 추위에 얼어 죽기도 했습니다. 일부는 살아남아서 정화지 가장 깊은 곳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왕성한 번식력을 보여줘 개체수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또 다른 놀라운 자연의 법칙이 있습니다. 새들은 물고기를 먹기 위해 사냥도 하지만 다양한 어류의 알들을 다리에 붙여서 이동시키기도 합니다. 먹이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이 물고기들의 이동을 도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찾아드는 새가 74종이나 되는 우리 생태공원 연못에서 물고기들이 번성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자연에서 생물종을 이렇게 다양하게 퍼트리고 늘리는 새들의 역할이 신비하고 경이롭습니다.

그렇다면 애초에는 이주 대상이 아니었던 참게는 어떻게 우리 공원에 올 수 있었을까요? 한강 장항습지와 연계되어 있는 대화천을 따라 영차영차 기어서 온 것입니다. 물길은 생명의 길이자 천연의 생태통로인 것입니다.

생태공원에 깃드는 새가 많아질수록 자연스럽게 이주하는 물고기가 많아지고 그 덕분에 찾아드는 새들이 늘어나는 것은 생명을 품은 정화지가 안겨주는 선물입니다.

이렇게 고양생태공원 안에 있는 돌이나 꽃, 풀, 나무, 물고기들은 단 한 가지도 허투루인 것이 없습니다. 그냥 보기에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도 각각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특히 제게 그렇게 여겨집니다. 공원 조성단계부터 전부 지켜봤기 때문입니다.
중대백로 ⓒ 조병범
청호반새 ⓒ 조병범
공원을 조성한 뒤, 새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당연히 처음에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나대지에 만든 생태공원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갖출 수 없었으니까요. 나무는 아직 어렸고, 야생화 군락지는 들인 품에 비해 빈약했습니다. 정화지에 계류에 강제이주 당한 물고기나 수생생물들은 환경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고양시에서 최초로 만든 생태공원이라 기대가 컸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한 해, 한 해 세월이 흐르면 공원의 다양한 생물들은 무서운 복원력과 적응력을 보여주면서 차츰 자리를 잡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자연은 기다림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 공원 역시 온전한 생태공원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기다리는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풀이나 나무가 자라 꽃을 피우려면 시간이 필요하듯이, 어린 나무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듯이, 새들이 우리 공원을 찾아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새들이 찾아올까. 공원 조성이 마무리된 뒤, 기대감을 갖고 날마다 정화지를 기웃거렸습니다. 텃새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비둘기나 까치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소리는 많이 듣게 됐습니다. 텃새가 온다면 철새도 올 수 있다는 기대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습니다. 제가 기다리는 것은 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나 까치 같은 텃새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큰유리새 ⓒ 고양생태공원
우리 고양시에서 관찰된 적이 있는 텃새와 철새들이었습니다. 오색딱따구리, 원앙, 붉은머리오목눈이, 파랑새, 해오라기와 같은 새들을 볼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이런 새들이 깃든다는 것은 우리 공원이 생태공원으로 순조롭게 자리 잡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바람이 새들에게 전해졌을까요? 2013년인가요? 8월의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끈적거리는 더위가 살갗에 달라붙어 불쾌감을 주던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출근하자마자 산책에 나섰습니다. 정화지 근처로 다가가자 까치들이 요란하게 울어댔습니다. 정화지 앞에 서서 다른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정화지에서 온몸이 진한 녹색인 파랑새 한 쌍을 발견했습니다.

아, 왔다. 드디어 왔다.

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는 새들의 다정한 모습은 평온해보였습니다. 파랑새의 산호빛 붉은 부리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아침 햇살이 반사돼 몸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은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사진으로 그 순간을 남기지 못했지만, 그 모습은 제 가슴 속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파랑새 ⓒ 고양생태공원
그들이 우리 공원을 찾아온 첫 손님이 아닐지 모르지만, 제가 발견한 첫 손님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엄청나게 반가웠지만, 인사를 건네거나 가까이 다가가서 아는 체를 할 수 없는 게 아쉬웠습니다. 그랬다가는 기껏 찾아온 손님을 쫓아내는 결과가 될 테니까요.

그날 이후 관찰되는 새의 종류가 늘었습니다. 꾀꼬리, 물총새, 큰유리새, 청호반새, 후투티, 흰눈썹황금새, 밀화부리, 오색딱따구리, 원앙 같은 새들이 이따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새로운 새의 실루엣을 발견할 때마다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새들에게 소문이 났어. 우리 공원이 새로 생겼다고, 놀러가자고.

원앙을 처음 봤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소리를 지를 뻔 했습니다. 원앙은 천연기념물 327호입니다. 천연기념물이 드디어 우리 공원을 찾아왔다는 게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원앙 ⓒ 고양생태공원
정화지에 새들이 깃드는 것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려면 조류관찰대가 필요합니다. 조류관찰대는 새들과 새를 관찰하는 사람들의 사이를 나누는 경계 역할을 합니다. 새들에게 정화지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좋은 서식처라는 믿음을 안겨주려면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들에게는 조류관찰대가 새들에게 다가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공원에 조류관찰대가 두 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정화지에, 다른 하나는 우리 공원과 연결된 대화천 앞에 있습니다. 두 곳에서 관찰할 수 있는 새 종류는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생태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고양생태공원 바로 옆에 대화천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 공원이 생태공원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대화천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화천은 고양시의 많은 하천 가운데 하나로 북으로는 파주시, 남으로는 한강을 경계로 이어지면서 흐르고 있습니다. 수로의 길이는 5.58㎢입니다. 고양생태공원과 연결되어 고라니, 너구리와 같은 포유류의 생태통로이자 도심 속 징검다리 녹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태그:#고양생태공원, #정화지, #대화천, #생명, #조류관찰대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