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남극은 가장 특별한 여행지였다. 하얀 빙원, 눈 폭풍 블리자드, 혹독한 환경에 살아가는 펭귄들, 제자리로 돌아온 지금 여운이 오래 남는다. '남극에서 살아보기' 수첩 한켠에 적어놓은 버킷리스트 한 줄을 지웠다. 2015년 - 2017년 남극 장보고기지 하계 안전요원으로 생활한 파르밧(김진홍 대원)의 남극탐사, 극지의 일상으로 초대한다. - 기자 말

최상위 포식자로 성격이 사납고 잡식성이다
▲ 남극의 새 도둑 갈매기(SKUA) 최상위 포식자로 성격이 사납고 잡식성이다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남극의 새 도둑 갈매기, 매서운 눈초리는 긴장을 감돌게 한다. 어린 새들은 혹독한 현실에 놓여진다. 살아남아서 어른이 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꿈은 쉽게 오지 않는다.'

남극의 여름, 11월에서 3월은 생명 탄생의 시기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곳에서 초록의 이끼류들이 드러난다. 스멀스멀 얼음 위로 해표들이 올라와 햇빛을 즐긴다. 하늘을 지배하는 새 '도둑 갈매기'는 소리 없는 비행을 한다. 펭귄들은 이들 천적을 피해 먼 해안가에 숨어 집단 서식을 한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냉혹한 사투가 벌어진다.

새들은 호주와 뉴질랜드 대륙에서 서식하다 망망대해를 넘어왔다. 남극에서 번식을 마치면 다시 되돌아갈 것이다. 왜 이렇게 힘들고 먼 여정을 택했을까? 해빙기가 되면 꽁꽁 얼었던 바다 얼음이 서서히 녹는다. 쌓였던 눈이 녹아 해안가 주변의 땅이 드러난다. 장보고 기지주변 암석지대는 새들에게 가장 좋은 번식지다. 외부환경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된다. 새들은 바위 틈새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는다.

해안가에 위치한 장보고 기지 주변은 새들의 주요 번식지가 된다
▲ 장보고 기지 전경 해안가에 위치한 장보고 기지 주변은 새들의 주요 번식지가 된다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도둑이 된 갈매기 '스쿠아'

도둑 갈매기는 '스쿠아(SKUA)'라 불리는 남극의 최상의 포식자다. 천적이 없어 먹성과 번식력이 대단하다. 새끼들은 난폭하게 생긴 어미와 다르다. 귀여운 병아리 같다. 노란 털의 병아리를 회색으로 탈색한 듯하다. 작고 동그란 눈은 선해 보인다. 무딘 부리로 살을 쪼아대도 아프지 않다.

성장하면서 달라진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부리며 눈매가 사나워진다. 이름도 그렇지만 생김도 비호감이다. 호기심이 많아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펭귄과는 정반대다. 접근하는 상대는 싸움의 대상이다. 남다른 먹이 사냥을 한다. 부화되기 전의 알을 훔치고 갓 태어난 어린 펭귄을 사냥한다. 크릴새우, 물고기, 동물의 썩은 시체라도 발견하면 순식간에 모여든다. 잡식성이라 닥치는 대로 가리지 않고 먹는다. 대초원에서 썩은 고기를 찾는 하이에나 급이다.

부화기의 새는 공격적이다. 둥지에 가까이 가면 '까악 까악' 하늘을 선회하며 야단이 난다. 어디선가 호출 받은 무리의 새들이 몰려든다. 자기보다 몸집이 큰 사람에게 주눅 드는 법이 없다. 날개를 펴고 '하악' 하며 검은 부리를 크게 벌리고 몸집을 키운다. 끊임없는 공격을 받다보면 타협을 해야 한다. 접근을 그만 두고 돌아갈 것인지, 도둑 갈매기와 한판 뜰 것인지...

새가 정면에서 날아온다. 부릅뜬 눈에 의기소침 하지만 여기서 질 수 없다. 얼굴을 심하게 찡그리고 무서운 표정을 한다. 결국 먼저 머리를 숙이게 된다. 바로 눈앞까지 속도를 줄이지 않으니 위협적이다.

날개를 펴면 상당히 위협적이다
▲ 둥지를 지키는 스쿠아 날개를 펴면 상당히 위협적이다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우리 친구하면 안될까?'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지만 더욱 기고만장해진다. 새들과 친해져야 하는 이유가 있다. 남극환경에서 야생의 새로 살아가는 과정을 모니터링하기 위함이다. 바위 틈에 숨어있는 둥지를 찾아 GPS 위치를 확인하고 일련번호를 부여한다.

70~80군데 알을 품은 둥지를 찾아낸다. 노란색 스프레이로 털에 표시를 해놓는다.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날개털과 피를 뽑아 검사한다. 어미 새는 배에 먹이를 채워 와서 새끼에게 토해낸다. 잡식성이라 가리는 것이 없다.
 
알에서 태어난 새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스프레이로 표시를 해놓는다
▲ 어린 스쿠아 알에서 태어난 새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스프레이로 표시를 해놓는다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둥지에 접근할 때는 만반의 준비를 한다. 머리에 헬멧을 써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쿠아에게 한 대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제일 높은 곳을 공격하는 습성이 있다. 갑자기 공격해 올 때를 대비해서 스틱을 준비한다.

스틱을 머리 위로 '휘이' 저으면 그 끝을 향해 공격한다. 보통 두 개의 알을 품는데 모두 생존하는 것은 아니다. 몸이 약한 새는 형제에게 먹이를 빼앗기거나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여름의 끝자락엔 한 마리의 새가 남게 된다.

남극을 떠나야 시기가 다가오면 어미새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살아남은 새의 영양을 위해 동종포식(같은 종을 먹이로 먹는 것)을 감행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약육강식의 서열을 정하기는 하지만 흔치 않은 일이다. 서로 포식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법이다. 강한 새들이 남아 종의 순환을 유지한다.

알에서 동생이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다
▲ 어린 스쿠아 알에서 동생이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다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알에서 갓 깨어난 동생을 보살피고 있는 스쿠아, 둘 중 강한 새가 살아남게 된다
▲ 생명의 탄생 알에서 갓 깨어난 동생을 보살피고 있는 스쿠아, 둘 중 강한 새가 살아남게 된다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살아남은 생명, 꿈의 비행

한동안 기상이 좋지 않다. 영하 20~30도는 기본이다. 눈보라 때문에 기지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남극의 생명체들에겐 생존의 갈림길이다. 한파가 휘몰고 간 다음 다시 둥지를 찾았다. 부화되기 전 알들이 여기저기 깨져있다. 형제가 많았던 가족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매섭게 공격하던 새들도 조용하다.

'혹독한 날씨를 피해가지 못했구나!' 자연은 냉혹하다. 아기새가 홀로 남았다. 바위틈에 겨우 바람을 피해 있지만 기력이 없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눈을 껌뻑이며 응시할 뿐 움직임이 없다. 날씨라도 나빠지면 큰일이다. 마음 같아서는 기지로 데리고 가서 보살펴 주고 싶다.

불쌍하지만 도리가 없다. 사람이 남극 생태계의 흐름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바위에 몸을 숨기는 일, 먹이를 삼켜 몸 안에 보관하는 법, 계절의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생존의 시간을 넘어 다시 이곳에 되돌아 왔을 때, 기억 할 것이다. 몸이 느끼는 어미새의 DNA를.

'꼭 이겨내야 해 
아무도 널 도울 수 없단다
시간은 지나갈 거야 
험한 계절의 끝에 푸른 하늘을 날고 있기를 
너의 꿈을 응원할게'
 
혹한의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기력없이 누워있다.
▲ 바위틈에 쓰러져 있는 스쿠아 혹한의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기력없이 누워있다.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어미새를 잡는 일은 쉽지 않다. 둥지의 새를 건드리면 흥분을 해서 사람에게 다가온다. 1미터 내외 반경에 들어왔을 때, 갈고리로 다리를 낚아챈다. 신체검사를 하기 위함이다. 날개와 부리의 길이를 잰다. 몸무게를 측정하기위해 몸 전체에 자루를 씌운다.

새는 눈을 가리면 놀래서 꼼짝을 못한다.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치다가도 조용해진다. 날개를 모아 잡으니 험상궂은 모습은 어디 가고 순한 새가 되었다. '두근두근' 심장의 온기가 느껴진다. 두려운가 보다. 하기야 남극에서 사람을 흔히 보지 못했지.
 
어미새를 관찰하기 위해 어린새로 유인하고 있는 연구원
▲ 스쿠아와의 조우 어미새를 관찰하기 위해 어린새로 유인하고 있는 연구원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잠깐만 기다려, 다시 놓아줄 거야. '훨훨' 날아다니렴'

자유롭게 날게끔 놓아준다.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멀리 도망가다 다시 선회해 둥지 주위를 비행한다. 새한테 눈도장 제대로 찍혔다. 자기 둥지를 건드린 대원을 기억해 놓는다. 다음에 다시 오면 멀리서부터 알아보고 격하게 반응한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두 명이 다가가면 한 사람을 집중 공격한다. 새는 어떻게 사람을 알아보는 것일까? 냄새, 시각? 동물마다의 특별한 감각능력이 있다. 펭귄은 많은 무리 안에서 울음소리로 아기를 찾아낸다. 스쿠아는 사람을 형태로 느낀다고 한다.

사나운 새도 눈을 가리고나면 온순해 진다. 놀라서 뛰고 있는 심장의 온기를 느낀다
▲ 신체검사를 마친 스쿠아 사나운 새도 눈을 가리고나면 온순해 진다. 놀라서 뛰고 있는 심장의 온기를 느낀다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살아남은 새들은 하루하루 성장한다. '푸드덕 푸드덕' 서툰 날갯짓을 한다. 하늘을 선회하는 새가 부쩍 늘어났다. 땅에서 걸음마를 떼고 하늘을 날고 있다. 더 높이 날고자 했던 '조나단 갈매기'(리처드 바크 '갈매기의 꿈' 주인공 새)처럼 남극의 바다를 넘어 낯선 곳으로 긴 여정을 준비한다. 어른이 되어 날카롭고 무서운 얼굴을 하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또 다른 생명 탄생을 위해서.

이제야 알게 되었다.

'너의 둥지를 찾았을 때 포효하던 것은 두려웠기 때문이란 걸,
날개를 모아 가슴을 품었을 때 떨고 있던 심장의 온기,
가장 높은 곳을 공격하는 이유가 사실은 겁이 많아서였다는 것을' 

도둑 갈매기는 성격 사나운 척, 겁 많은 새였다.

여름의 끝에서 살아남은 새는 다시 먼 비행을 떠나게 된다.
▲ 비행하는 스쿠아 여름의 끝에서 살아남은 새는 다시 먼 비행을 떠나게 된다.
ⓒ 김진홍

관련사진보기


남극에는 많은 상주기지들이 들어서 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세상을 꿈꾼다. 우리는 그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남극의 생명들과 함께하며 서로 공존하는 법을 배운다. 인간이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그들의 터전을 지켜주어야 한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 순환하는 생명들, 먹고 먹히는 처절함 속에서 삶과 죽음은 하나이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남극 생태계는 유지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2015년 - 2017년 남극 장보고기지 하계 안전요원으로 생활한 파르밧(김진홍 대원)의 탐사경험, 남극의 일상을 소개합니다.



태그:#남극, #남극여행, #도둑갈매기, #오지여행, #남극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지, 트레킹 / 남극 장보고기지 안전요원. 해난구조대(SSU)대위 전역 / 산. 바다. 여행을 통해 삶의 가치를 배운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