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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후원하는 '도서관 학교 숲노래'의 우편물을 받았다. 전남 고흥에서 최종규 작가가 운영하고 있는 '숲노래'는 개인 서재이지만 누구나 가서 책을 즐기도록 열어 놓았기에 도서관이기도 하다. 도서관, 배움터, 숲놀이터를 튼튼히 꾸릴 밑힘이 되도록 일반인도 1평, 2평, 평생 지음이(후원하는 사람을 이르는 최종규 작가 고유 표현이다)로 참여할 수 있다(아래 이미지 참고). 지음이가 되면 도서관에서 내는 소식지 <삶말>을 보내준다.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의 소식지
▲ 삶말 34호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의 소식지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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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온 소식지 서른네 번째 <삶말>에는 최종규 작가가 한 구미 삼일문고에서의 강의, 일본 도쿄 '책거리'에서의 강의 소식 등이 담겼는데, 이번에는 특히 책숲집, 숲노래의 평생 지음이가 낸 책이라며 한 권 보내셨다. 성균관대학교 앞에서 '책방 풀무질'을 운영하고 있는 은종복 대표님의 <책방 풀무질>(한티재, 2018)이다. 책방 풀무질의 모습은 최종규 작가가 촬영했다.

<책방 풀무질> 서두에서 '책을 내면서' 하고 저자가 쓴 회포를 읽다 보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1985년 여름에 문을 연 책방 풀무질은 올해로 33년째가 되었고, 1993년 스물여덟의 나이에 책방 일을 시작한 은종복 대표는 올해로 25년째 책방지기를 하고 있다. 20대, 30대, 40대, 50대 청춘을 모두 책방 일에 바쳤다는 그의 글에선 조금의 피로와 무안과 씁쓸함이 여전한 꿋꿋함과 함께 느껴진다. 또 담담하지만 뜨거운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한 사랑도.

그러고 보니 봄꽃 흐드러진 이 계절에 책방지기가 쓴 책 두 권이 거짓말처럼 같은 날에 독자들을 찾았다. <책방 풀무질>과 <아폴로책방>(펄북스, 2018)이 그 주인공. 거짓말처럼 발행일도 같고(2018. 4. 1), 연한 미색 바탕에 검은색 라인일러스트라는 표지 콘셉트도 같고, 무엇보다 지은이 두 분 모두 책방지기라는 점이 이 두 책의 공통점이다.

한 사람은 현실의 책방에서 고군분투한 25년의 기록인 논픽션을 썼고, 또 한 사람은 현실에는 없는 가상의 책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픽션을 썼다.

현직 책방지기들의 쓴 논픽션과 픽션
▲ <책방 풀무질>과 <아폴로책방> 현직 책방지기들의 쓴 논픽션과 픽션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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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풀무질>을 쓴 은종복 대표는 1993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책방 풀무질을 시작했다. 어느 대학교 앞이나 으레 한두 곳은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있던 인문사회서점들이 이제는 거의 사라져가는 지금까지도 성균관 대학교 옆에서 버티고 있는 책방 풀무질의 이야기는 '동네서점 아저씨 은종복의 25년 분투기'라는 부제처럼 '있는 힘을 다하여 싸우거나 노력'한 처절함이기에 자랑스러운 찬사의 노래가 아니라 고독하고 애타는 이야기이다.

20대부터 반백이 되기까지 온 청춘을 바쳐 책방을 지켜내었다며 무턱대고 존경과 찬사를 보태기엔 절대 녹록지 않았을 세월의 이야기가 무겁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쇠락하는 책방의 역사나 어려운 처지에 대한 넋두리는 절대 아니다.

책방 옆 학교의 학생들이 학교에 다닌 지 2년이 지나도 책방 풀무질을 모른다거나 이제는 더 이상 은행도 대출을 해주지 않고 언제 신용불량자가 되어도 이상할 것 없다는 이야기에 깊은 한숨을 같이 쉬게 될지언정, 그래서 "이런 칭찬과 격려조차 함부로 할 일은 아니라 말을 줄인다"는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의 김현우 공동대표의 말이 더 현실적으로 들릴지언정, 그럼에도 이 책을 읽다 보면 책방지기 은종복이 부러울 것이다.

그는 최소한 자신이 원하는 세상과 자신이 가치를 두고자 하는 일을 알고 있으니까. 세상에 몰리어 정신없고 원칙 없이 부유하는 삶이 아니라 최소한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나는 그 누구보다 부럽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무지막지함과 전쟁과 핵발전소를 반대하고, 조국이 통일될 것을 염원하며, 노동자, 책방지기, 농사꾼처럼 노동과 삶에 성실한 이들이 웃는 나라,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나라를 원한다.

그리고 도서정가제가 정착되고, 마을에 작은 도서관과 서점이 충분하고, 시를 읽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통해 책방이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진정한 동네 책방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가꿀 줄 안다. 그럼에도 현실은 여전히 각박해서 매 순간 분투해야 하지만.

책방 풀무질의 은종복 대표처럼 <아폴로책방>을 쓴 소소책방 조경국 대표도 부럽기는 매한가지다. 그는 경남 진주에서 헌책방 '소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책방지기인데, 헌책을 팔아 생활이 될 리는 만무하고 그래서 강의 자리로, 아르바이트 자리로, 글 쓰는 자리로 역할을 바꾸며 분주히 다닌다.

그런 일들로 자주 책방을 비우며 다녀야 하면 생활과 시간에 지칠 것도 같은데 희한하게 그는 탐을 낼 법한 것에도 무심하고 아주 조금만 욕심을 부리면 제 것이 될 만한 일에도 좀체 개의치 않는 '대책 없는' 삶의 자세를 유지할 줄 안다. 오로지 주체적으로 자신만의 삶을 산다고 할까. 그의 인생은 늘 그의 것이다(당연한 것 같지만 꽤 힘든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좀 알고 있지 않은가).

책방의 내부 풍경. 책방지기의 일손을 기다리는 책들이 쌓여있다.
▲ 소소책방 책방의 내부 풍경. 책방지기의 일손을 기다리는 책들이 쌓여있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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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이 무언지 아는 것만으로도 은종복 대표처럼 부럽지만 마찬가지로 각박한 현실에서 매 순간 분투해야 하는 건 그도 매한가지다. 분투하는 와중에도 즐길 것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잃지 않아 단편소설집 <아폴로책방>이 탄생했다.

조경국 단편집 <아폴로책방>은 어리석은 집착과 서늘한 의심, 안타까운 미련, 이루지 못한 사랑과 이루고 싶었던 꿈에 관한 열아홉 편의 이야기다. 고요하고 속절없는 헌책방의 시간은 깊고, 천천히 흐른다. 책방 문을 밀고 그 묵직하지만 따듯한 공간으로 들어가면 몽키치킨집 원숭이와 얽힌 <광리방>의 묘연함이 있고, 발레복 튀튀와 애기무당을 잇는 미셸 투르니에의 <뒷모습>이 꽂혀 있으며, <사가판 어류도감>에나 나올 법한 의사 선생의 기이함과 아내를 위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끊임없이 중얼거렸던 한 남자의 미스터리, 비 오는 날에만 책방을 찾던 모모 선생의 애처로운 비밀이 서가 곳곳의 책에서 튀어나온다.

<아폴로책방>은 책방지기 조경국이 지난 시절 무시로 드나들었던 책방과 그곳에서 인연을 맺었던 책 그리고 책방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오마주이자 팬픽이라고 하니 책과 책방을 사랑하는 분들은 그 애정까지 이 책에서 느꼈으면 좋겠다. "모든 이야기는 책방으로 흘러들어온 상처 입은 책들의 과거를 상상하는 데서 시작됐다"는 작가의 말처럼 열아홉 편의 단편소설마다 그 모티브가 되는 책들이 소개되니 그 책들을 함께 살펴보는 것도 <아폴로책방>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이다.

각각의 짧은 이야기 끝에 모티브가 된 책들이 소개된다.
▲ 《아폴로책방》과 모티브가 된 책들 각각의 짧은 이야기 끝에 모티브가 된 책들이 소개된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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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책을 준비하며 이제껏 쓴 글 중에 가장 행복하게 썼다는 말을 했다. 밥벌이와는 상관없는 글쓰기로 '이야기를 짓는 일'이 신났다는 것이 이유다. 행복하고 재미있는 일로 돈까지 좀 벌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담당 편집자는 아직도 내공이 있는 '땐땐한' 삶의 자세는 가지지 못한 유약한 인간이다.

어쨌거나 사람들이 책을 좀 많이 읽어주어서 책방 풀무질의 책방지기가 은행 대출을 좀 덜 알아보고, 긴 여행을 앞둔 소소책방 책방지기가 한 달에 열흘 정도는 샤워기 있는 호텔방에서 잘 수 있기를 바란다(작가는 '하루라도'라고 했지만, 나는 그가 좀 더 많이 안전하고 안락한 방에서 잘 수 있기를 바란다). 

'현직 책방지기가 쓴 최초의 본격 책방 소설'이라는 홍보 카피를 <아폴로책방> 조경국 작가에게 보여 주었을 때 그가 싱긋 웃으며 한 말이 생각난다. "가뜩이나 다들 책 안 읽는다고 난리인데... 책방지기가 책방 배경으로 쓴 책방 소설을 누가 궁금해할까요?" 그러게. 그래서 책과 책방의 이야기는 이토록 늘 외로운가 보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김은경은 도서출판 펄북스 편집장입니다.



책방 풀무질 - 동네서점 아저씨 은종복의 25년 분투기

은종복 지음, 한티재(2018)


아폴로책방

조경국 지음, 펄북스(2018)


태그:#아폴로책방, #펄북스 , #소소책방, #진주, #조경국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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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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