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올림픽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이정철 감독(현 IBK기업은행 감독)

리우 올림픽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이정철 감독(현 IBK기업은행 감독) ⓒ 박진철


올해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의 화두는 주전 선수 체력 관리와 장신 유망주 육성·발굴이다. 차해원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도 언론과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천명한 바 있다.

첫 국제대회인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아래 네이션스 리그)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자배구 대표팀의 행로는 더욱 주목되고 있다. 특히 장신 유망주 육성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대비하는 차원에서도 주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와 관련, 2016 리우올림픽 여자배구 대표팀을 지휘했던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의 생각을 들어봤다. 이 감독은 장신 선수 발굴과 활용 면에서도 안목을 자랑한다. 이 감독이 선택한 외국인 선수 대부분이 장신이면서 V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다. 알레시아(196cm), 카리나(192cm), 데스티니(195cm), 맥마혼(198cm) 그리고 메디(184cm). 모두 성공한 외국인 선수였다. 또한 메디를 제외하고 전부 장신 공격수다.

이 감독이 바라본 장신 유망주 육성 계획에 대한 관점이 궁금했다. 그는 최근 고교 대회를 찾아가 유망주들의 기량을 직접 살펴보기도 했다.

그는 "지난 17~18일 이틀 동안 태백산배 고교 대회가 열리는 태백시 국민체육센터에 가서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지켜봤다"며 "8강전 4경기도 모두 관전했고, 현재 거론되는 유망주들은 거의 다 살펴본 셈"이라고 밝혔다.

"대표팀 장신 유망주 육성 플랜, 잘한 결정"

이 감독은 먼저 여자배구 대표팀의 장신 유망주 육성 방침에 대해 높은 평가와 공감을 표시했다. 그는 "차해원 대표팀 감독이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위해 장신 유망주들을 주요 국제대회에 적극 기용하면서 육성하고, 진천선수촌 소집훈련도 기존보다 많은 18명이 참여하도록 한 것은 상당히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도 사실은 2015~2016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리우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며 "진천선수촌 소집훈련에 유망주를 포함해 18명보다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시도를 했었는데, 예산 문제 등 때문에 이뤄지지 않아 아쉬웠다"고 회고했다.

이 감독은 "학교·청소년 대표팀 경험과 성인 국가대표팀 경험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라며 "성인 국가대표팀 경기는 상대 팀들이 훨씬 장신이면서 빠르다. 그런 경험을 일찍 맛보고 공격 폼이나 블로킹 손 모양,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유망주 육성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이어 "네이션스 리그에서 고참급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는 과정에서 장신 유망주들이 주전으로 기용된다면, 설사 깨지더라도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맞대결하면서 어떤 것이 더 보완되어야 하는지를 직접 피부로 느끼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경험이 상당히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시야가 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어런 선수들이 김연경, 양효진 등 훌륭한 선배 언니들과 함께 경기를 치르면서 보고 배우는 장점들도 많다"며 "김연경은 세계 정상급 팀과 선수들을 상대하는 노하우와 기술들을 다 가지고 있다. 옆에서 유심히 보고 빨리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최고 타점' 정호영, 빠른 '발 배구' 장착해야

 정호영(왼쪽, 190cm)과 박은진(오른쪽, 188cm)

정호영(왼쪽, 190cm)과 박은진(오른쪽, 188cm) ⓒ 박진철


이 감독은 '현재 거론되는 장신 유망주들의 기량과 성장 가능성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탐난다"를 말을 여러 차례 거듭했다. 그만큼 고교 3학년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선수들의 기량이 출중하다는 의미였다.

특히 고교 최고 기대주로 꼽히는 정호영(190cm·선명여고)에 대해선 확신에 찬 어조로 평가를 했다. 정호영은 19일 끝난 태백산배 고교 대회에서 특유의 고공 타점으로 대역전극을 주도하며 선명여고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 감독은 "정호영의 공격 타점은 진짜 높더라. 공격 타점만 보면 김연경 못지않았다"며 "큰 키에도 불구하고 점프력까지 타고났다"고 극찬했다.

그는 "진짜 탐나는 선수"라며 "다른 감독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보통 키가 190cm대가 넘어가면 점프가 부족하거나 늘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정호영은 가볍고 높게 올라간다는 점에서 더 높은 점수를 주는 듯했다.

그러나 이 감독은 정호영이 큰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선 개선해야 할 점도 있다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정)호영이가 타점과 체공력에서 만족하지 말고, 발 배구를 해야 한다"며 "네트에 붙었다가 빨리 빠져 나오고, 빨리 들어가고 이런 거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몸과 발이 경쾌하게 움직여줘야 폭발적인 힘이 발휘된다. 그래야 스윙도 빨라지고 공격의 임팩트가 커진다"며 "그 정도만 되도 정말 좋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정호영이 하루 빨리 세계 최고 완성형 공격수인 김연경 옆에서 직접 보면서 스스로 습득해야 할 것이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연경 스텝을 배워야 한다"며 "김연경 스텝은 사실 남자 스텝이다. 항상 마지막 스텝을 스스로 만들어서 때린다. 그런 거를 정호영이 빨리 본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정호영은 가볍게 걸어다니다가 마지막 도움닫기를 잘해야 한다"며 "그게 공격의 진짜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정호영 성장, 도쿄 올림필 메달 도전 큰 힘 될 것"

이 감독은 정호영의 성장이 도쿄 올림픽 메달로 가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정호영이 현실적으로 김연경급이 되기는 어렵다. 기량뿐만 아니라 멘탈과 리더십 등에서 더욱 그렇다"며 "그러나 김연경 아래에 해당하는 급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연경 아래급만 되도 대성공 아니냐'는 질문에 이 감독은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타점과 점프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는 "(정)호영이는 앞으로 2년 동안 국가대표팀에서 잘 만들어가면, 도쿄 올림픽 예선전이나 본선에서 아주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급은 된다"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고교 2학년이니까 2020년 도쿄 올림픽 때는 프로 2년 차로 접어들 시기"라며 "그 때가 진짜 겁 없이 멋모르고 경기할 때"라고 말했다. 올림픽 같은 큰 무대에서는 경험 많은 선수도 중요하지만, 어리고 힘 있는 장신 선수의 겁 없는 활약이 있어야 높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감독은 "정호영이 라이트에서 공격과 블로킹 한 자리를 딱 차지해주면, 김연경 서포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고 대표팀 전력도 한층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라이트에서 대포가 하나가 더 생긴다면 그 시너지 효과는 엄청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연경 대각에 서는 레프트 한 자리도 최근 이재영, 강소휘가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기대할 만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희진의 활용폭도 커질 수 있다.

박은진·이주아도 특급 유망주... "여자배구 신생팀 창단 최적기"

이 감독은 양효진, 김수지 등 대표팀 센터진의 나이가 도쿄 올림픽 때는 30대를 훌쩍 넘기기 때문에 어린 장신 센터의 육성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은진(188cm·선명여고)과 이주아(186cm·원곡고)도 센터 공격수로서 신체적 조건과 기량이 좋고 미래가 밝다"며 "그동안 센터 공격수가 장신이면서 기량도 좋은 선수가 잘 안 나왔다. 이번에 정말 드물게 2명이나 나왔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레프트 포지션에 박혜민(181cm·선명여고), 정지윤(180cm·경남여고), 고의정(182cm)과 문지윤(181cm·이상 원곡고), 라이트 포지션에 나현수(186cm·대전 용산고) 등도 좋은 기량을 갖고 있다며 높이 평가했다.

이 감독은 "고교 팀 주선 선수들이 코트에 들어가는 걸 보는데, 높이가 프로 팀들보다 높았다"며 다시 한 번 장신 유망주 풍년에 감탄했다.

이 감독은 유망주들에 대한 애정과 격려도 당부했다. 그는 "배구계과 배구팬들도 유망주들이 경기에 투입됐을 때 성적에 지나치게 연연할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해 편안하게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격려를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며 "한 경기 결과 나올 때마다 너무 질타를 하거나 조급하게 평가를 내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신생팀 창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견해도 피력했다. 그는 "이렇게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왔을 때, 여자배구의 미래를 위해 신생팀이 창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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