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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

기아자동차의 대형 세단 케이(K)9을 표현할 때 종종 쓰이는 단어다. 그렇다. 지금까지의 K9은 성공적인 모델은 아니었다. 기대만큼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일명 '카더라'에 의하면 K9은 현대자동차의 에쿠스를 감히 넘어설 수는 없도록 개발됐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사실 하나가 담겨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결국, K9이 소비자들을 매료시키지 못했다는 말이다. 절치부심한 기아차는 6년 만에 2세대 신형, 더 K9을 출시했다.

회사는 신형의 슬로건을 품격과 지능(Digninty&Intelligence)으로 정했다. 여기서 품격은 내-외관 디자인을, 지능은 각종 주행보조장치를 의미한다. 제품에 대한 기아차의 자신감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앞서 권혁호 부사장(국내영업본부장)은 "차에서 내릴 때 느낄 수 있는 자부감은 더 K9이 최고다"라고 자신했다. 최정호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개발팀 책임연구원은 "현시점에서 탑재 가능한 ADAS 기술은 모두 적용됐다"고 말했다.

대형 세단이지만, 더 K9은 차량의 소유주가 직접 운전을 하는 차량(오너드리븐)으로 개발됐다. 그래서인지 구매 연령대가 비교적 젊은 편이다. 회사에 따르면 사전 예약자 3200명의 70%가 40~50대다. 고객이 젊다 보니 밝은 색을 선택한 이들도 많았다. 은색(실키 실버)과 흰색(스노우 화이트 펄)이 10%를 넘는다. 대형 세단에서는 흔치 않은 색이다. 신형 K9의 단독 전시장을 찾는 방문객도 마찬가지다. 40~50대가 주를 이룬다.

"현 시점에서 넣을수 있는 모든 첨단운전지원 기술을 다 넣었다"
 
▲ 기아차 더 K9의 실내.  
ⓒ 최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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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기자 시승회를 통해 직접 만나본 2세대 신형은 확실히 밝은 색이 외장 디자인의 주요 특징들을 부각시켜준다. 주변부와 보닛 후드의 경계가 뚜렷한 아일랜드 파팅 기법, 빛의 흐름을 닮은 두 개의 선으로 이뤄진 전면등, 물결치는 쿼드릭 패턴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전체적으로 이전 세대보다 젊어진 느낌이다. 날렵하게 다듬어져 세련돼졌다. 올록볼록한 보닛은 힘이 넘쳐 보인다.  

차체가 더 커지고 길어졌지만 옆 태는 더 매끈해졌다. 조각칼로 파놓은 듯한 캐릭터라인은 자칫 무거워 보일 수 있는 차에 속도감을 부여한다. 그 아래, 가로로 길쭉한 크롬 장식은 시선을 아래로 끌어내려 보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후면부는 깔끔하게 구성해 긴장감을 풀어준다. 두 줄의 LED 후미등, 이를 감싸는 얇은 크롬 테두리가 꾸밈의 전부다.

내부는 나무, 가죽 등을 고루 배치해 지루함을 없앴고, 소재를 고급화 했다. 사람의 손길이 닿는 부분은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재료들이 쓰였다. 고무 하나에도 부드러운 천을 덧댔다. 공간감은 너르고 편안하다. 회사에서 그토록 강조한 파노라믹 뷰 디자인의 전면유리는 탁 트인 시야 확보가 가능하다. A필러가 얇아 정면의 양 옆을 바라볼 때 답답함이 없다.

아쉬운 점은 내외관 디자인에서 기아차 만의 독창성을 발휘한 흔적은 없어 보인다. 시승 내내 기자들은 저마다 더 K9과 경쟁 차종의 유사점을 찾아냈다. 두 줄의 전면-후면등부터 실내 구조, 센터페시아 버튼 등 국적 상관없이 고급차 업체들의 익숙한 면면들이 느껴졌다. 기아차 디자인 관계자의 "럭셔리는 경험에서 나온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각 업체의 특징들을 하나 둘씩 모은 종합 아울렛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K9, 기아차만의 독창성은... 럭셔리 자동차의 종합 아울렛?
 
▲ 기아차 더 K9의 후측면 
ⓒ 최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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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 성능은 반전이었다. 대형이기에 묵직하고, 마냥 느긋할 줄 알았다. 아니었다. 가속 페달을 밟으니 순식간에 고속-초고속으로 속도를 끌어올렸다. 그런데 편안했다. 불안한 모습은 없었다. 속도계를 확인해야 어느 정도로 달리고 있는지 인식할 수 있었다.   

폭발력이 넘치기보다는 매끄럽게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듯했다. 또, 실내로 유입되는 다른 소음이 적어 작은 바람 소리(풍절음)가 상대적으로 크게 다가왔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제법 그르렁거리기도 한다. 스티어링휠과 페달의 반응 속도도 더 빨라진다. 급격한 코너링에서는 차체의 무게가 느껴졌다. 차량의 뒷부분이 곧바로 쫓아오지는 않았다.

고속도로와 일반도로에서 ADAS 기능도 마음껏 써봤다. 장웅준 ADAS 개발실 이사대우에 따르면더 K9에만 적용된 차로유지보조(LFA) 장치는 도료가 희미한 곳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 앞 차와의 거리, 앞 차의 폭 등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또, 내비게이션과 연동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NSCC)는 입력된 데이터 덕에 알아서 곡선 구간에서 스스로 가속과 감속을 한다. 똑똑한 것은 맞지만, 아직 운전자를 따라가기에는 시간이 더 걸릴 듯 보인다. 급경사에서는 감속의 시점이 사람보다 늦어 약간 무서웠고, 속도도 겨우 시속 2킬로미터 줄여줬다.

일반도로에서는 완성도를 더 다듬어야 하지만, 고속도로에서는 아주 세밀하고, 부드러운 주행을 뽐냈다. 운전자의 개입이 전혀 없어도 주행은 충분했다. 후측방 모니터(BVM)도 똘똘하다. 양측 방향지시등을 켜면 계기반의 속도계와 엔진 회전계의 화면이 곧바로 변한다. 완전 사각 지대인 차량의 숄더 부분까지 보여준다. 

물론, 운전자가 직접 거울을 확인해야 하지만, 적응만 된다면 보다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듯싶다. 더불어 부분변경 때 센터페시아의 버튼 각도 조정이 필요하다. 크롬으로 마무리된 버튼들이 선글라스를 꼈는데도, 햇빛을 반사해 주행 중 여러 번 불편함을 느꼈다.

반전의 주행성능...고속도로 곡선구간에서도 스스로 감속과 가속
 
더 K9에 최초 적용된 후측방모니터 기능은 양측 방향지시등을 작동하면 계기반에 차량 옆을 보여준다.
▲ 더 K9의 후측방모니터 기능.  더 K9에 최초 적용된 후측방모니터 기능은 양측 방향지시등을 작동하면 계기반에 차량 옆을 보여준다.
ⓒ 최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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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가량 동료기자가 시승을 하는 동안, 뒷좌석에 동승을 했다. 뒷좌석 센터 콘솔의 레스트(REST) 버튼을 누르면 조수석 좌석이 저절로 당겨져 뒷좌석 공간을 최대한 넓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발을 놓을 곳이 없다.   

그래서 조수석의 등받이 위에 올리고 있었다. 허벅지를 받쳐주는 부분도 따로 없어 다리를 놓고 있기가 애매하다. 조수석 헤드레스트 뒤에 설치된 화면은 저절로 꺼지지 않으니 따로 전원을 꺼야 한다.

터널공조시스템이 상당히 획기적이었다. 터널을 지나기 전 일부러 창문을 열었다. 귀신같이 알고 알아서 창문을 닫고, 실내 공조 시스템을 조절했다. 동료 기자와 함께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만, 터널을 빠져나간 뒤 다시 창문을 열어주지는 않는다.

권혁호 부사장(국내영업본부장)은 신형 K9이 대형차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거라고 자신했다.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더 K9의 주무대가 대형 세단 시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번에 걸친 공식 행사에서 만난 회사 관계자들은 대체로 한 체급 작은 차종들을 경쟁자로 꼽았다. 플래그십(기함)이지만 가성비가 무기라는 셈이다. 같은 가격으로 더 큰 차를, 더 많은 첨단 기능이 담긴 K9 을 선택할 소비자들이 얼마나 될지, 그 결과가 궁금해진다.
 
▲ 기아차 대형 세단 더 K9의 전측면. 
ⓒ 최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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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기아차, #플래그십, #더K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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