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인종차별에 대한 감각이 굉장히 무딘 편이다. 외신을 통해 '아시아 인종차별 논란'을 볼 때는 분개하지만, 정작 우리가 차별의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인종의 특징을 유희로 삼는 경우 특히 그렇다.

지난 2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당시 MBC 중계를 맡은 개그우먼 김미화씨가 대표적이다. 김미화씨는 입장하는 선수단을 소개하며 가나 선수들을 향해 "아프리카 선수들은 눈을 구경도 못 해 봤을 것 같다"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특정 대륙에 대한 편견이 반영된 발언이었고 논란에 휩싸이자 김미화씨는 SNS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물론 이는 김미화씨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우리는 여러 번 비슷한 사례들을 겪었기 때문이다.

라이브 방송 중 "쿤타킨테 아니야?" 발언 논란

 지난 14일 그룹 엑소 첸백시는 컴백 기념 V라이브 방송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4일 그룹 엑소 첸백시는 컴백 기념 V라이브 방송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 논란에 휩싸였다. ⓒ 네이버 V라이브


최근에는 한 아이돌 그룹 멤버의 발언과 행동이 논란이 됐다. 그룹 엑소 첸백시(EXO-CBX)는 첸과 백현, 시우민이 속한 엑소의 유닛이다. 지난 10일 두 번째 미니앨범 < Blooming Days >로 컴백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14일 이들은 컴백 기념으로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V라이브 방송 '토요일은 첸백시'를 진행했다. 방송 도중 세 사람은 보드게임을 했다. 진 사람은 벌칙으로 분장을 하기로 했다. 첸이 게임에서 졌고 백현이 검붉은 립스틱을 입술에 발라줬다. 분장을 한 자신의 모습을 본 첸은 "이거 '쿤타킨테' 아니야? 쿤타킨테? 마이콜 같은데?"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생방송으로 그대로 전해졌고 '인종차별적 발언'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흑인 분장으로 인종차별 비판을 받았던 방송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개그우먼 홍현희는 tvN 예능 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에서 흑인 분장을 하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해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개그맨 황현희는 SNS로 홍현희를 옹호했다가 비판 받기도 했다. 당시 황현희는 흑인 분장 그 자체가 인종차별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어쩌면 첸백시도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하지만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면 답은 금방 도출된다. 외국인들이 눈을 양옆으로 찢는 시늉을 하면 우리는 아시아인 비하라고 비판한다. 인종의 신체적 특성을 유희거리로 삼는 것은 그게 어떤 것이든 인종차별이자 잘못된 행동이다.

첸이 말한 '쿤타킨테(Kunta Kinte)'는 감비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최초의 흑인 노예 이름이다. 감비아 지역의 '쿤타킨테' 섬 이름을 따 그렇게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흑인 노예의 삶을 다룬 알렉스 헤일리(Alex Haley)의 소설 <뿌리>(1976)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뿌리>는 영화,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만큼 흑인에게 '쿤타킨테'란 억압과 폭력의 기억이자 인종차별과 싸운 투쟁의 역사와 마찬가지다.

소속사는 여전히 침묵, 신속한 사과가 필요해

 그룹 엑소 첸백시는 지난 10일 미니 앨범 < Blooming Days >를 발표했다.

그룹 엑소 첸백시는 지난 10일 미니 앨범 < Blooming Days >를 발표했다. ⓒ SM 엔터테인먼트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입술에 검붉은 립스틱을 칠하고 '쿤타킨테'라고 칭한 것은 더욱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특히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 팬을 보유하고 있는 엑소이니만큼 좀 더 신중해야 했다. 18일 현재까지 엑소는 물론 이들의 소속사인 SM 엔터테인먼트 역시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분명 인종차별적인 제스처였고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빠른 사과가 필요해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사과하지 않고 실수를 반복한다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낙인을 피하기 어렵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이번 논란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인종차별 인식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우리는 손쉽게, 재미로 다른 인종을 흉내내고 비하하지는 않고 있을까. 우리 스스로 인종차별 행위를 묵인한다면, 외국인이 우리를 차별했을 때도 떳떳하게 비판할 수 없게 된다. 이 당연한 진리를 잊지 않아야 우리 사회가 한 발짝 더 성장할 수 있다.

#엑소 첸백시 #쿤타킨테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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