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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장지뱀
 줄장지뱀
ⓒ 고양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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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누구 솜씨일까요?

햇살이 눈부신 날입니다. 그 햇살을 고스란히 받으며 졸고 싶은 오후였습니다. 고양생태공원을 찾은 귀엽고 어린 탐방객들과 생태체험 탐방에 나섰습니다. 생태연못의 나무데크 길의 아카시 나무를 지나는데 아이 하나가 소리를 지릅니다. 선생님, 저게 뭐예요?

아이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등이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줄장지뱀 한 마리가 고개를 툭 떨군 채 나뭇가지에 꽂혀 있었습니다. 몸통 길이보다 긴 꼬리가 나뭇가지에 걸친 채 늘어 뜨러져 있습니다. 그걸 발견하다니, 눈도 밝아라. 줄장지뱀 상태를 보니 죽은 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누구 솜씨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공원에서 저런 짓을 할 생태시민은 딱 한 종 밖에 없습니다.

사진으로 보면 줄장지뱀이 꽤 커 보이지만 실제 길이는 5센티미터 남짓밖에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줄장지뱀은 보호색을 띠고 있고 움직임 또한 빨라서 육안으로 보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햇살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을 자세를 낮추고 자세히 살펴보면 가끔 운 좋게 줄장지뱀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조심해야 합니다. 인기척을 느끼면 관찰하기 전에 재빠르게 도망치기 때문입니다.

이런 줄장지뱀이 우리 공원에 사는데, 안타깝게도 천적도 같이 삽니다. 자연에서 천적은 절대로 떼놓을 수 없는 스토커와 같습니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생태시민과 잡아먹어야만 사는 생태시민의 관계는 먹이사슬로 표현되는데, 어느 한쪽이 죽어야 끝나는 관계입니다. 무서운 관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줄장지뱀
 줄장지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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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장지뱀의 천적은 줄장지뱀 한 종만을 먹이로 삼지 않습니다. 줄장지뱀 외에도 등줄쥐와 같은 포유류를 먹이로 삼기도 합니다. 메뚜기, 사마귀와 같은 곤충도 그의 먹이가 됩니다. 이런 것들이 풍부한 우리 공원은 줄장지뱀의 천적이 서식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입니다.

이쯤 되면 줄장지뱀을 잡아서 나뭇가지에 꽂아놓은 천적이 누구인지 무척이나 궁금할 것입니다. 그 천적은 다름 아닌 때까치입니다. 때까치는 툭하면 줄장지뱀을 잡아서 나뭇가지에 걸어놓습니다. 먹이를 잡으면 나뭇가지에 꽂아놓는 것이 때까치의 습성입니다. 이것을 먹이꼬지라고 부르는데, 때까치는 부리가 날카로운 고리처럼 생겨서 먹이를 찢을 수 있도록 발달돼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죠.

소형 맹금류인 때까치는 메뚜기, 개구리, 물고기, 쥐 등 다양한 먹이를 사냥해서 꽂아두는 습성 때문에 우리 공원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물종을 알려주는 역할도 합니다. 또 때까치는 양서파충류의 상위 포식자로 이들의 종류를 드러내주면서 생물종이 안정적인 생태계를 이루어 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참 고마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줄장지뱀 입장에서는 무서운 포식자이자 천적일 뿐입니다.

봄이 되면 우리 공원을 찾는 탐방객이 늘어납니다. 겨울에는 볼거리가 적고 춥기 때문에 탐방을 하지 않습니다. 탐방신청도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2월이 되면 탐방신청이 줄을 잇습니다. 신청은 2월에 받지만 본격적인 탐방은 3월이 되어야 시작됩니다.

때까치
 때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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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신청은 4월부터 터진 봇물처럼 밀어닥칩니다. 5월부터 10월까지가 우리 공원을 탐방하기에 아주 좋은 계절입니다. 자연생태를 공부할 수 있는 자연학습 자료가 공원 전체에 가득 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4월부터는 예약이 밀려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탐방을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가장 큰 이유는 탐방 인원을 하루에 200명으로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단체 탐방 180명, 자율탐방 20명입니다. 탐방객 인원제한은 생태공원의 특성을 지키기 위해 만든 원칙입니다.

자율생태탐방이라도 혼자 공원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습니다. 정해진 탐방로에서 절대로 벗어나면 안 됩니다. 탐방객들이 우리 공원에 사는 생태시민들의 서식지를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탐방객들 때문에 생태시민들이 놀라거나 놀라서 도망갈 수도 있습니다.

또 위험지역이라 접근을 제한하는 구역도 있습니다. 아무리 들어가지 말라는 팻말을 세워놔도 위험 경고를 무시하고 들어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탐방객들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생태해설사와 동행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공원 생태탐방 원칙입니다.

우리 공원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꼽히는 곳은 우리가 뱀밭이라고 부르는 구역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뱀들이 우글거리는 곳입니다. 뱀들의 집단 서식처인 거죠. 한두 마리가 아닙니다. 제법 많이 있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뱀들이 많아 위험하다고 주의를 주어도 일부 탐방객들에게는 그게 마음에 와 닿지 않은가 봅니다. 주의를 무시하고 이 금단의 구역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뱀에게 물린 분은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정해진 탐방로를 절대로 벗어나면 안 됩니다. 꼭 뱀밭에만 뱀이 있는 건 아닙니다. 뱀들이 뱀밭을 벗어나 공원 여기저기를 유유히 산책하기도 합니다. 뱀이 꼭 뱀밭에만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고양생태공원
 고양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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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나 했더니 갑작스러운 추위로 생태시민들의 활동이 움츠러들었습니다. 그래도 추위 속에 숨어 있던 봄기운을 감지했는지 뱀밭을 서식처로 삼고 있는 뱀들이 하나둘씩 꼬물거리면서 땅 위로 기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뱀밭을 지날 때면 땅 위를 스르르 기어가는 뱀들과 종종 마주칩니다. 가끔은 탐방로까지 기어 내려와 발밑을 유연하게 지나가기도 합니다.

처음 이들과 만났을 때만 해도 서로 소스라치게 놀라는 사이였습니다. 저는 놀라서 뒷걸음질을 치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뱀들은 잠시 멈칫하다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다리도 없는 친구들이 도망치는 게 어찌나 빠른지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찾아보면 흔적조차 남지 않기 일쑤입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또 만났네요. 잘 지내셨수? 이러면서 한 발 앞으로 다가가 제가 만난 뱀이 어떤 종류인지, 몸길이는 어느 정도 되는지 먼저 확인합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그만큼 뱀들을 많이 봐서 익숙해졌고 마음이 여유로워진 것입니다. 반가워하는 저와 달리 뱀들은 여전히 놀라서 도망치느라 바쁩니다.

무자치가 개구리를 잡아 먹고 있습니다.
 무자치가 개구리를 잡아 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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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치
 무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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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나뭇잎이 무성해지는 계절이 되면 탐방객들에게 뱀밭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합니다. 뱀밭 주변에는 뱀 그림이 그려진 팻말을 세워 위험을 경고합니다. 무성한 나뭇잎 때문에 그림자가 져 뱀밭을 기어 다니는 뱀을 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뱀밭에 산책로가 있을까요? 당연히 없습니다. 사람의 발길을 제한하고 아예 탐방로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덤불들이 자라서 길이 생길 여지를 막아 버렸습니다. 자연도 자연스럽게 위험을 경고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그래서 우리도 뱀밭에 뱀이 몇 마리나 서식하는지 모릅니다. 그걸 꼭 알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대신 몇 종의 뱀이 서식하는지는 관찰해 기록으로 남깁니다.

이곳에서 관찰되는 뱀은 줄장지뱀, 유혈목이, 누룩뱀, 무자치 등입니다. 살모사는 우리 공원이 아닌 대화천에서 관찰되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육안으로 확인한 것보다 더 많은 종류의 뱀이 살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시간이 좀 더 지나야 확인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뱀들이 나 여기 있소 하면서 존재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뱀밭 표지판.
 뱀밭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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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원에 사는 많은 뱀 생태시민들 가운데 제가 가장 관심을 갖는 뱀이 줄장지뱀인데, 안타깝게도 줄장지뱀은 살아 있는 상태보다 죽어 있는 상태에서 더 많이 만나는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나뭇가지에 꽂힌 채로 발견되는 때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때까치가 잡아 산 채로 나뭇가지에 꽂아놓은 것이죠. 때까치는 '새의 도살자'라는 의미의 학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은 것도 안타까운데 사체가 전시까지 되어야 하는 줄장지뱀의 슬픈 운명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요.

며칠 뒤에 줄장지뱀이 어떻게 되었나 보러 가니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때까치가 저장한 식량을 먹어치운 것이죠. 늘 그렇게 잘 찾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 나뭇가지에 꽂힌 줄장지뱀은 그대로 말라버리기도 합니다. 때까치가 잡아놓은 것을 잊은 채 돌아오지 않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위험을 감지하고 아까운 먹이를 포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장지뱀과에 속하는 줄장지뱀은 주로 햇빛이 품은 온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4월에 겨울잠에서 깨어납니다. 거미나 육상곤충을 주로 먹는데, 우리 공원에는 400종에 가까운 곤충들이 서식하고 있어 줄장지뱀이 살기에 아주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거미도 30종이 넘습니다.

봄에 겨울잠에서 깨어난 줄장지뱀은 배를 채우면서 번식을 준비합니다. 배우자가 될 만한 친구가 있나 없나 살피면서 돌아다닙니다. 햇살이 유난히 좋은 날에는 작은 바위 위에 엎드려 햇볕을 쪼이면서 한가로운 한 때를 즐기는 줄장지뱀을 볼 수 있습니다. 그건 줄장지뱀이 주행성이라 그렇습니다. 낮에 돌아다니면 그만큼 포식자 눈에 띌 위험이 크겠지만 그만큼 햇볕의 유혹이 강한 것이겠죠.

줄장지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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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산란을 하는 것은 배우자를 만나 짝짓기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줄장지뱀은 사람들이 쉽게 찾아내지 못하는 돌 틈이나 덤불 사이에 산란을 합니다. 우리 공원에서는 아마도 뱀밭 어딘가에 알을 낳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산란을 마친 줄장지뱀 가운데 몇몇은 포식자의 눈을 피하지 못해 나뭇가지에 걸린 채 세상에 전시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할 것이고, 몇몇은 살아남아 겨울잠을 자러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봄이 오면 다시 깊은 잠에서 깨어나 매년 반복했던 삶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이런 줄장지뱀의 삶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요? 이들이 영원히 살아남아 종을 이어갈 수도 있지만 지금과 같은 생태파괴가, 자연파괴가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저들이 지구에서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태그:#고양생태공원, #줄장지뱀, #때까치, #뱀, #고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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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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