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2014년 7월 16일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서울 중구 서소문동 대한항공빌딩에서 열린 어린이 여행 동화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 출판 기념 간담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2014년 7월 16일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서울 중구 서소문동 대한항공빌딩에서 열린 어린이 여행 동화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 출판 기념 간담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서 회사 매출도 올리겠습니다."

2014년 세계적인 광고상을 국내 최초로 받은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수상 소감이다. 그러나 불과 4년 만에 논란이 된 광고 대행사 '물컵 사건'을 기점으로 그녀의 행적은 언론들이 파헤쳐 볼수록 가관이었다. 광고대행사뿐만 아니라, 대한항공 익명 게시판에도 욕설을 담은 미투 폭로가 이어졌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조현민 전무는 휴가 중 일요일 새벽 급히 귀국했다. 그리고 갑질이 아니었음을 호소하며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려 하지만, 정작 피해를 본 광고대행업계는 침묵중이다. 왜 그들은 침묵하고 있을까? 그들의 속사정을 파헤쳐 보았다.

"그 광고 대행사는 이제 클라이언트 못 만나겠네"

광고 대행사로 근무하고 있는 A(34)씨는 조현민 전무의 갑질이 워낙 업계에서 유명했던 터라, 터질 게 터졌다고 봤지만, 한편으로 논란이 된 광고 대행사를 내심 걱정했다. 클라이언트(의뢰인)의 어두운 면을 폭로한 것이 앞으로 광고를 물어와야 하는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갑을 관계에서 미투 폭로하면 자기 밥그릇을 끊겠다는 소리죠." 그러면서 "물을 뿌린 것은 분명 잘못했지만, 그것을 폭로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나 같아도 앞으로 그 대행사는 꺼리게 될 것"이라며 갑질이 폭로되고도 걱정할 수밖에 없는 대행사의 고민을 털어 놓았다.

A씨는 까다로운 클라이언트를 상대해야 하는 광고업계에서는 그러한 일이 비일비재한 일이라고 전했다. 자신이 쓴 기획서도 클라이언트가 갈기갈기 찢어서 얼굴에 던지는 경험이 흔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A씨는 무덤덤하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대한항공과 해당 광고대행사도 7년이나 밀월 관계를 이어 왔다. 조현민 전무가 아무리 비명을 지르고 모욕적으로 굴어도, 세계적인 상을 수상하는 등 그녀의 안목 하나는 확실했던 것이다.

확인 결과 해당 대행사가 자랑스럽게 내세운 13개의 대상 트로피 중에 8개가 조현민 전무가 있는 대한항공 트로피였다. 욕설과 갑질을 7년이나 당했음에도, "대한민국 광고대상 7년 연속 수상"이 그 모든 소리들을 가려 준 셈이다. 거기다 정작 이번 폭로 사건으로 인해 업계 관계자들은 논란이 된 대행사의 앞날이 자칫 더 어두워지지 않을까를 우려하고 있었다. 
 갑질 피해를 입었던 대행사에서 지난 대한항공 수상 업적을 홈페이지에 가장 크게 내세우고 있다.
 갑질 피해를 입었던 대행사에서 지난 대한항공 수상 업적을 홈페이지에 가장 크게 내세우고 있다.

얼굴에 음료수를 뿌린 것보다 그들이 더 두려워 하는 것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갑과의 밀월 관계인 것이다.

"우리 회사는 불똥 안 튀게"... 사내 게시판 자제 요청도

알만한 광고 대행사에 근무하는 B(31)씨는 클라이언트와 만날 때는 앞으로 녹음 등을 자제하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전했다. '물컵' 사건을 시작으로 대한항공 직원이 바톤을 이어 받으며 추가 폭로전으로 이어졌지만, 정작 광고업계는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새다.

오히려 내부적으로 사내게 시판 이용을 자제해 줄 것을 암암리에 요청하고 있다. 터질게 대한항공만 있는 게 아니라는 소리다.

 사건의 발단이 된 대행사 사내 익명 게시판
 사건의 발단이 된 대행사 사내 익명 게시판
ⓒ 정주영

관련사진보기


실제로 사내 익명 게시판을 일부러 없앴다는 H기업 관계자는 "사내 익명 게시판이 악성 루머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없애는 것이 낫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익명이 보장된다고 하기도 어렵고 로그(자신의 행적)가 남는다는 것도 알만한 직원들은 다 알고 있다"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물컵 사건 또한 논란이 되자, 익명으로 게시했음에도 대행사 직원들은 자신의 글을 빠르게 삭제했다.

이에 대해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신이 피해자 입장이면서도 범죄자가 된 것마냥 숨어야 하는 것"이라며 '을'로서 안타까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 "대한항공 사건은 갑질 중에서도 가장 악질"

고강섭 연구위원은 이번 물컵 논란이 "한국 사회에 '을들의 문화'가 여전히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대한항공은 "족벌경영식이다 보니 상하 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것"인데, "정작 우리나라 특성이 족벌 경영할 능력도 안되면서, 설립자 가족들이 권력만 다 차지하는 경향이 많은 것"이 문제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들에게 직원들은 '을'로서, 단순 고용인으로 구성권에 참여할 수 없게 하수인 노릇만 한다는 것이다.

특히 "조현아씨도 권력이 있다는 이유로 다시 복귀할 수 있는 것들을 보면서 한국 사회의 갑을에 대한 조직문화는 전혀 변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조현아 사장 경영 복귀를 이번 대한항공 물컵 논란과 함께 가장 악질적인 사례로 평가했다.

이지문 연세대학교 연구교수 또한 "지금 나온 갑질은 전체 피해의 1%도 안될 것"이라며, 더 많은 피해자들이 익명에 숨지 않고 연대해서 나올 수 있도록 제도적-문화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갑질의 피해자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또 다른 갑질의 피해자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정주영

관련사진보기


과연 더 많은 피해자들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기자가 직접 직장내에 불공정한 갑질을 바꾸기 위한 전문 법률가와 노무사들이 봉사하고 있는 '직장 갑질 119'에 들어가보았다.

조현민 전무는 사회 어디에서나 존재했다. 똑같이 고성이나 폭언을 당하는 피해자들에게 조은혜 노무사는 직장인들의 대처 방법으로 가장 먼저 '녹취를 해둘 것'을 주문했다.

 갑질에 대해서는 동영상이나 녹취가 있어야 증거자료가 된다는 노무사 답변
 갑질에 대해서는 동영상이나 녹취가 있어야 증거자료가 된다는 노무사 답변
ⓒ 정주영

관련사진보기


매일 직장내 수백여 명의 갑질 피해자들을 직접 상담하는 조은혜 노무사는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조 노무사는 "사실은 노동자보다도 사업주의 인식을 바꿔야 바뀔 것 같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번 사건처럼 노동자들이 '내가 목소리를 내서 바꿔야 한다'라는 게 필요하다"라며, 이번 폭로 사건들이 더 나은 직장 문화를 만드는 데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으로 바라 보았다.

그러면서도 "대한항공은 워낙 큰 대기업이라 폭로를 한다 하더라도 회사 이미지 차원에서 법적 보복을 안 걸 수도 있지만, 작은 회사는 손해 배상 등 법적 보복을 (괘씸죄로) 거는 편이다"며, 갑질을 당했을 경우 바로 행동에 나서지 말고, 반드시 사전에 노무사와 법률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하라고 당부했다.

"우리는 계속 입을 다물겁니다"

논란이 된 대행사 업계에서 클라이언트에게 또 다른 심한 갑질을 당한 사람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또 다른 대행사의 피해자 C씨는 "입을 다물거다"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사례가 본 기사에 노출되는 것을 반대했다.

왜 갑질을 당하고도 서로 쉬쉬 할 수밖에 없는걸까? 홍보 대행사 출신 한 관계자는 대행사 특유의 구조적 문제에서 답을 찾고 있다.

"대행사는 기본적으로 '을'의 입장입니다. 수익의 원천이 '갑(고객사)'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금요일 오후에 요청해놓고, 월요일 오전까지 부탁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클라이언트가 갑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지경이 되었다고 전했다.

 출퇴근 길에도 클라이언트의 안위를 걱정하는 모습을 한 대행사 직원이 담았다.
 출퇴근 길에도 클라이언트의 안위를 걱정하는 모습을 한 대행사 직원이 담았다.

C씨는 조현민 전무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회사 매출도 올리겠다"고 말할 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했다.

자신이 당한 것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녀는 이 말만은 꼭 실어 달라고 전했다.

"그들의 눈에는 막상 저는 사람이 아니었던 걸까요?"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