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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거리  자유방임주의의 대표적인 나라 홍콩의 거리
▲ 홍콩의 거리 자유방임주의의 대표적인 나라 홍콩의 거리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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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빠의 대학원 동기에게서 메시지가 날라 왔어. 한국에 갈 예정인데 만날 수 있냐며 아빠의 스케줄을 물어 보기에 흔쾌히 좋다고 말했지. 홍콩계 캐나다인인 그 분은 나보다 형이고, 무척 유쾌한 사람이라서 만나면 기분이 정말 좋아지곤 했거든.

오랫동안 금융계에서 커리어를 쌓다가 무슨 마음이었는지 그만 두고, 스리랑카, 독일을 거쳐 러시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들어온 후, 거기서 한국으로 오겠다는 거였지.

아빠는 그와 함께 짧은 여행을 떠났어, 일반 여행객들이 보지 못한 곳을 보여주고 싶어서 DMZ 중에서도 철원 쪽을 택해서 그를 태우고 떠났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현대' 아파트가 벽면에 한자로 쓰여진 것을 보고, '신짜이'가 뭐냐고 물었지. 아빠는 '현다이 Hyundai'를 모르느냐고 물어봤지. 그랬더니 현대가 그 '현다이'냐며 몰랐다고 하더구나. 대기업 이름의 의미 자체가 '현재를 의미하는 단어'라는 사실을 특이하게 생각하더구나.

정주영과 리카싱 그리고 이병철

주유소 현대차를 타고 가다, 현대 아파트를 보면서, 문득 현대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게 되던 날
▲ 주유소 현대차를 타고 가다, 현대 아파트를 보면서, 문득 현대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게 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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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다이'가 아파트도 짓느냐는 질문을 했어. 아빠는 말했지. 현대는 거대 기업으로 자동차가 유명하긴 하지만, 아파트, 백화점, 조선소, 호텔 등 많은 사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했지.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주유소에 들어가게 되었는 데, 공교롭게 '현대 오일뱅크'였어. 이것도 그럼 같은 회사냐는 그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을 해주어야 했지.

그러면서 이제는 영국과 미국의 영어사전에 등록된 'Chaebol'이란 단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 정주영이라는 인물이 쌀 장사로 시작해서, 건설을 통해 사업을 일으키고 자동차, 조선 등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는 이야기를 했어.

홍콩에도 비슷한 인물이 있다며 그가 소개해주었지. '리카싱(리자청)'이란 인물이야. 어린 시절 가난했다가 플라스틱 조화(꽃)를 만드는 사업으로 자수성가 해서 지금은 홍콩의 수많은 사업체를 산하에 두고 있는 홍콩 제 1의 청쿵(장강)그룹의 오너가 되었지. 아시안 부자로 서양에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이기도 한단다.

주로 관광객들이 마주치게 되는 청쿵그룹의 기업은 약품과 화장품을 판매하는 '왓슨스'나 '파크앤숍' 슈퍼마켓 그리고 전자제품 매장 '포트리스' 같은 게 있지. 홍콩은 완전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라서 승자를 제어하는 최소한의 사회적인 제어가 없어. 부자는 정말 말도 안 되게 부자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정말 가난하다고 해.

그의 영향력이 얼마 만큼인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리카싱 효과'라는 단어란다. 바다에 면해 있는 홍콩은 태풍에 민감한 편인데, 일기 예보에서 태풍의 강도가 일정 수준 이상 되면 출근 및 등교가 아예 금지된단다. 그런데 대부분은 오전에는 금지 기준에 미치지 못하다가 출근을 하고 나면 기준치를 넘어 서는 바람에 퇴근 길에는 아주 난리가 나는 경우가 많다고 해.

그런데 사람들이 출근하지 않아도 월급은 똑같이 주어야 하고, 가장 큰 기업들을 소유하고 있는 리카싱 입장에서는 손해이기 때문에 그가 심술을 내는 거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거야. 물론 자연현상에 사람이 영향력을 미칠 수는 없을 테고, 그가 홍콩 경제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는 반증이 될 수 있을 것 같구나.(청쿵그룹의 시가총액은 홍콩의 26%를 차지하는 수준이라고 해)

홍콩 만큼 우리나라가 심하진 않겠지 싶어서 나중에 찾아봤는데, 2017년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전체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이고, 삼성은 물산, 생명, 화재, 카드, 전기 등 일일이 언급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회사가 있어.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아들 딸들이 분가하면서 다른 그룹으로 분가한 CJ, 보광, 신세계 등을 생각해보면 삼성이라는 하나의 그룹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정리해보게 되었단다.

사실 우리나라의 재벌 기업의 경제 비중이 홍콩보다 높지는 않을 거라고 무심코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아마, 현대, SK, LG 그룹 등 4대 그룹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보면 거의 경제 전체를 대표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 같아. 이것을 과연 나쁘다고 해야 할까? 좋다고 해야 할까? 고민이 들 때가 있단다.

가난한 집 맏아들

삼성 재벌에 대한 담론은 많으나 여전히 해법은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던 날
▲ 삼성 재벌에 대한 담론은 많으나 여전히 해법은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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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출장을 나가서 삼성이나 현대 같은 브랜드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애국심이 솟아날 정도로 우리 나라를 자랑스럽게 하는 기업이기도 하지만, 소량의 지분을 가진 주주들이 불법, 편법 등을 통해서 그룹을 지배하고 정치와 법까지 좌지우지 하려 한다는 뉴스가 들릴 때면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는 것도 사실이야.

우리 나라는 홍콩처럼 자유방임이 아니라 나름대로 규제가 많다고 기업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기사를 자주 보았던 것 같은 데, 그런 말을 하기엔 무색할 정도로 우리 경제에서 너무 높은 비중을 특정 기업들이 차지 하고 있는 건 일반적인 일은 분명 아닌 것 같아. 그러니까 재벌이라는 표현이 우리 나라만의 오너를 중심으로 한 기업 집단을 나타내는 고유 명사로 표기 되었겠지? (미국에서 가장 높은 시가총액의 비중은 2017년 기준으로 애플의 9% 수준이란다.)

사실 오너가 있는 기업을 한 번도 다녀보지 않고, 외국계 기업에서만 직장을 생활을 해온 아빠로서는 사실 재벌이라는 존재와 그들의 후계자 이슈가 신문에 나오면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단다. 사람이라면 자신이 가진 부를 자식에게 물려주려 하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본능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지분 이상의 것에 지나치게 욕심을 내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게다가 아빠 친구들 중에서도 친한 친구들이 삼성에 많이 다니고 있는데, 모두 똑똑한 친구들이지. 어찌되었던 한국 최고의 기업이고 세계에서도 통하는 곳이니 당연히 인재들이 몰려 들겠지.

그렇게 '인재의 삼성'이라고 하는 곳이지만, 결국 경영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은 '삼성이 키운 인재'가 아니라 혈연으로 정해져 '후계자'라는 상황을 외국인 친구에게 설명해주려고 하니 약간 민망하기도 하고, 그들의 지분이 너무 적어 논리적으로 무리도 가더구나. 그렇다고 순환출자라는 소량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한국식 지배구조를 설명하기에는 조금 창피하기도 하고 말이야.

<가난한 집 맏아들>이라는 유진수 교수의 책의 내용이 떠올랐어. 못 살던 시절 큰 아들이라도 교육을 시켜서 집안을 일으키려고 부모는 작은 아들이나 딸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큰 아들에게 투자해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좋은 직업과 위치를 가지게 하는 거야. 그 때, 부모는 그 큰 아들이 나머지 동생들을 챙기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거지.

하지만 예를 들어 의사 같은 경제적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지게 된 큰 아들은, 결혼을 하고 자신의 삶의 수준에 맞추어 더 큰 것을 원하기 때문에 부모의 기대와 달리 동생들을 챙기지 못하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더 투자를 하게 되는 거야. 이 상황을 경제에 빗대어서 설명을 해보면, 유사한 점들이 많단다.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은 후, 우리 나라는 빠른 성장을 위해서 일본이 남기고 간 재산(적산재산)에 대해 10%의 선금을 받고, 나머지는 15년 동안 저리의 이자로 갚을 수 있게 몇 개의 기업에게 혜택을 주었단다. 예를 들어, 미쓰코시 백화점은 이병철(삼성 창업주)에게, 선경직물은 최종건(SK 창업주)에게 넘겼던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란다.

그 후, 기대에 부응해서 기업들은 세계 유수의 회사들과 어깨를 견줄 만큼 성장했지만, 과연 그들은 맏아들이 동생들을 챙기기를 기대했던 부모의 바람에 응답을 했을까? 책에서 이야기하듯, 큰 아들도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자신의 삶의 수준에 맞게 더 큰 것을 추구하며 동생들을 챙기지 못했던 것처럼, 대기업도 더 큰 성장을 추구하며 오히려 서민들이 먹고 살던 사업들까지 손을 대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

부모의 기대 못지않게 국가의 기대도 잘못이었음을 현실에서 보여주고 있지. 가지지 못한 자 입장에서 가진 사람의 입장을 비난하는 건 쉽지만, 막상 그런 위치에 가면 달리 행동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는 사실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아. 자식에게 자신이 이룬 것을 최대한 많이 주고 싶은 심정은 부모로서 이해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사회적인 제어와 분배에 대한 정치가 필요한 게 아닐까? 

자유방임주의의 표준 모델이라는 홍콩보다 오히려 승자독식이 심한 것은 우리 나라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면서, 너와 함께 더 살아낼 미래에 우리 나라의 모습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즈음에 우리 나라 경제에서 소수의 재벌들이 차지하는 구조는 얼마나 되게 될까? 설사 여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해도 상관은 없겠지만, 그들의 존재가 사회에 얼마나 기여를 하고 있게 될까? 궁금해지는 구나.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중복 게재할 수 있습니다. electricjin.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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